대한민국 문화예술계에서 ‘이상봉’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한 명의 디자이너로 한정되지 않는다. 현존하는 국내 디자이너가운데 가장 많은 컬렉션을 치른 인물. 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은 물론 뉴욕패션위크 등 세계 패션의 심장부에서 늘 ‘패션피플’들의 주목을 받는 인물. 무엇보다 한글을 모티브로 선보인 그만의 디자인으로 세계 속 ‘K-패션’을 선도하며 우리나라 패션계의 위상을 드높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상봉 디자이너는 자신의 이름에 부여된 막중한 책임감이 끊임없는 도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밝혔다. 여전히 자신을 사랑해주는 이들이, 해야 할 일들이 있음에 늘 감사한다.  

 

Interview 손홍락   Editor 박우현   Photographer 권용구 

 

“패션은 살아있으며 늘 변화합니다. 당장 한 시즌만 지나도 본래의 가치에서 절반 이상이 소멸하죠. 때문에 창조를 위한 저의 노력은 언제나 진행형 입니다.”

이상봉 디자이너는 패션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거대한 흐름’이라고 표현한다. 자신은 작은 나무 이파리에 몸을 맡겨 함께 흘러가는 존재. 거친 소용돌이에 휩쓸거나 정체되어 고인 물웅덩이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 젓기를 멈출 수 없다. 디자이너의 숙명이다.

패션은 시대와 공존한다

디자이너 이상봉은 늘 바쁘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항상 무언가를 준비한다. 올해에도 연초부터 대형프로젝트를 잇따라 수행하며 숨 가쁘게 달려왔다. 1월에는 중국 하얼빈 국제 패션위크에 초청돼 오프닝쇼를 화려하게 장식하는가 하면 2월에는 2016 뉴욕패션위크에 참여해 그의 F/W 컬렉션을 선보였다. 지난달 16일에는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며 경기도 광명시에서 개최된 ‘프랑스 라스코동굴벽화 국제전시 광명동굴전’에서 ‘어둠과 빛, 시간과 흔적’이라는 주제로 개막식 직후 행사의 총연출을 맡았다.

오랜 세월 현역에 몸담고 있음에도 여전히 국내 어떤 디자이너보다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상봉 디자이너. 그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아직 진행형이라는 사실입니다. 저에게 주어지는 일들이 있고 이를 수행할 수 있음에 감사하죠. 또 여전히 저를 사랑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있다는 것이 저에게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과 미국, 한국 등 다양한 세계무대에서 펼쳐지는 이상봉 디자이너의 활동들에서 일련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하얼빈 국제 패션위크의 오프닝 쇼와 뉴욕패션위크에서 선보인 그의 컬렉션은 민족 영웅 안중근 의사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을, 광명동굴에서 진행된 이상봉 패션컬렉션에서는 환, 한글, 산수화, 무궁화, 드림로드, 단청, 창살 등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소재로 한 다채롭고 눈부신 의상들을 선보였다. 특히 행사가 진행된 16일은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은 날로, 그는 디자이너를 꿈꾸던 단원고 고(故) 이장환 학생의 사연을 모티브로 꾸민 ‘드림로드-하늘로 가는 길’이란 패션을 컬렉션에 공개해 눈길을 모았다.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무대에서 이상봉은 단순히 한국의 아름다움만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패션은 시대와 공존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 과거와 현대, 미래가 공존하고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세상 속에서 현대생활을 디자인으로 표현하고 우리 것을 세계화하는 게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이상봉 디자이너는 ‘가장 한국적인 소재를 미래적 방식으로 만들어온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적인 주제에 눈을 뜨고 많은 사랑을 받게 되면서 디자이너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을 실감하게 되었어요. 역사 속 순간을 현실로 가져오는 작업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알리고 세계와 소통을 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실제 하얼빈 국제 패션위크를 통해 공개된 안중근 영웅 모티브의 디자인은 ‘안중근-하얼빈’으로 공유되는 한중 양국의 역사의식을 다시금 일깨우며 깊은 울림을 전해주었다.

 

세계가 인정한 한글 디자인

디자이너 이상봉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바로 ‘한글 디자인’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한글을 디자인에 활용한 것은 2005년부터다. 한글 서체의 아름다움에 가장 먼저 매료된 이들은 오히려 한글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었다고. 그 열광적인 호응은 우리에게 사뭇 낯설게 다가왔다.

“당시 국내 기자들에게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들이 ‘정말 한글을 좋아해요?’, ‘한글을 팔아 봤나요?’ 등이었습니다. 한글을 직접 사용하는 우리조차도 믿기 어려운 반응이었으니까요. 아니라면, 시즌 하나하나에 성패를 거는 작은 회사에 불과한 저희가 한글 디자인을 고수할 이유가 있을까요?” 

잦은 해외활동으로 한국의 전통문화에 더 많은 관심이 생겼다는 그는 가수 장사익, 화가 임옥상 등 지인들이 보내준 친필 편지를 보며 한글을 의상 디자인의 요소로 사용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내부에서는 상품화에 회의적인 반응들이 주를 이루었다고. 이에 작게나마 안감에 한글무늬를 넣는 정도로 시작한 것이 오히려 해외 바이어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2005년 파리 전시 때부터 본격적으로 한글 디자인을 선보인 그에게 프랑스 현지 언론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라는 호칭을 부여했다. 이후 뉴욕 FIT박물관, 영국 빅토리아알버트뮤지엄 등에 한글과 단청을 소재로 한 그의 의상이 전시된 것은 물론, 전 미국 부통령 앨 고어, 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인 크리스틴 라가르드 등 세계 유명인들이 직접 입어 큰 화제가 되었다. 우리의 고유한 문자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었던 과거와 비교하면 놀라운 성과이다.

해외에서 먼저 유명세를 탄 그의 한글 디자인은 뒤이어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얻게 되었다. 휴대폰, 침구, 주방용품, 담배, 아파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상봉의 이름으로 한글 디자인이 가미된 상품들이 출시되는가 하면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 출현해 대중적인 인기를 쌓게 되었다.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행사에서 그가 만든 한글 옷은 빠질 수 없는 상징물이 됐다.

“한글은 우리나라의 국민은 물론 한류와 함께 세계와 공유하는 언어로 발돋움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언어에 대한 관심이 그 시작일 수 있지만 결국 우리의 문화와 직접적으로 연결 되거든요. 한글로 많은 사랑을 받은 제가 이를 보답하는 길은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더욱 널리 알리고자 노력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진화하는 ‘K-패션’

이상봉 디자이너는 2002년부터 프랑스 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에 나서며 한국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렸다. 2014년부터는 뉴욕패션위크에 참가하며 뉴욕 맨해튼에 그의 단독숍도 열었다. 

지난 2월 뉴욕에서 열린 LIE SANGBONG의 2016 F/W 컬렉션에서는 지지 워드(ZZ Ward), 저스틴 스카이(Justine Skye), 레이첼 브로스나한(Rachel Brosnahan) 등 미국의 유명 연예인은 물론 뉴욕패션위크 창시자 펀 말리스(Fern Mallis), 세계적 패션블로거 사만다 안젤로(Samantha angelro), 그리고 ‘아메리칸 넥스트 탑 모델’의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미스 제이(J Alexander)등이 참석해 세계 패션계에서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패션의 변방’으로 취급받았던 시절을 뒤로하고 이제는 세계가 ‘K-패션’을 주목하고 있다. 그 선봉에 이상봉 디자이너가 서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 패션은 생존에 후차적 가치를 가진다면 개발도상국가는 ‘일자리창출’, ‘생산’ 등 산업의 개념으로 접근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본격적인 디자인 경쟁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아시아 문화의 대표성을 선점했던 일본의 뒤를 이어 한국, 중국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 특히 중국은 빠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이다.  

“한류와 더불어 K-패션은 사회 문화는 물론 경제적 파급력을 크게 가져올 수 있는 아이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세계인이 주목하는 ‘K-뷰티’의 경우 넓은 범위에서 패션의 일부라 할 수 있죠.”

단지 ‘옷’이라는 개념을 넘어 악세사리, 귀금속, 화장품 등 광범위한 분야를 포괄하는 것이 바로 패션이다. 생활에 밀접한 가구, 전자제품, 전자제품까지 패션화 바람이 불고 있다. 우리산업에 패션의 역할이 더욱 커지면서 단지 디자인 분야만이 아닌, 경제 산업 전 분야로 확대·재생산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상봉 디자이너의 지론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요소로 최근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융·복합’을 들 수 있다. 그 역시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융·복합 시도를 통해 창조의 영감을 얻는다고 밝혔다.

“한류로서 사랑받는 여러 가지 요소들은 각각의 개별적인 현상이 아닌, 서로가 복합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재생산되고 새로운 창조의 근원이 되면서 더욱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때는 협업의 조건으로 ‘Made in Korea’ 만을 원칙 삼았다는 이상봉 디자이너는 세계가 더욱 긴밀하게 연결된 지금의 사회에서 무의미함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한계를 두지 않고 도전하는 자세야 말로 디자이너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이라고. 

“패션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 흐름에 대처하는 발 빠른 순발력과 열려있는 마인드를 갖는것이 중요합니다. 수학, 과학과 같이 정답이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므로 고정적인 관념은 디자이너에게 가장 무서운 적이 될 수 있어요.”

최근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 K-패션의 발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이상봉 디자이너는 긍정적인 자세로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고속성장의  포만감 때문에 정체되어 있는 현 상황이 더욱 힘들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10년 전에도 한류의 지속에 대한 우려와 고민들이 존재했지만 여전히 견실한 발전을 이어나가고 있죠. 그 때 고민을 해 왔던 것들이 모여 지금 한류의 밑바탕이 되었듯, 앞으로도 각계각층이 꾸준한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패션이 세계화되고 발전하는데 밑바탕을 만드는 것이 선배들의 책임이라면 이를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우수한 상품들을 만들고자 하는 후배들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상봉 디자이너는 선후배 세대간  존중과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진실된 열정의 가치를 위해

그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한글 패턴 디자인을 통해, 때로는 예능 프로그램에 모습을 나타내며 어느새 대중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인지도가 높아지며 뜻하지 않은 논란에 휩싸인 적도 있었다. 

“유명세라는 것이 덧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제가 쓴 책의 제목(Fashion is Passion)이자 평소 강조해왔던 ‘열정’이 부메랑처럼 돌아왔죠. 한때는 그 글자만 봐도 손이 떨리고 아찔해지곤 했어요.”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상봉 디자이너는 이를 경험삼아 보다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기로 결심했다.

“오해도 있었지만 이를 변명하거나 회피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대신 ‘좋아, 앞으로 어떻게 소통해 나갈 것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업계의 리더로서 그동안 패션산업의 성장과 경쟁력 향상 등 거시적 발전에 매진해왔다면 이 사태를 통해 소외된 이들의 아픔을 보살피는 것 또한 리더의 본분임을 깨닿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진실된 열정의 가치를 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패션디자이너를 향해 순수한 꿈을 키워가는 어린 친구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열정을 응원하고,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교육·지원 방법이 무엇인지 찾고 있습니다.”

대를 이어 패션업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들 이청청 디자이너에 대한 솔직한 심경도 털어 놓았다. 현재 이청청 디자이너는 독자브랜드 ‘LIE’를 통해 세계가 주목하는 유망 디자이너로 발돋움 하고 있다.

“미안한 마음도 크죠. 때로는 대중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 자신의 노력과 고통, 성과들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이청청이라는 디자이너가 자신의 브랜드를 이끌어가고자 한다면 한계를 극복하고 스스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겠죠.”

대를 이어 가업을 잇는 전통을 존경하는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유독 ‘세습’이라는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곤 한다. 그러나 물질적인 부(富)가 아닌 전문 직업으로서의 계승은 철저히 그 결과물을 통해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저 또한 마찬가지로 젊은 시절 2세의 길을 걷는 동료 선후배들에게 좋지 않은 시각을 가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이 왜 꿈을 더 펼치지 못했을까’에 대해 이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요. 저의 이름이 자식에게는 실로 무거운 짐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어요. 이 역시 이청청 스스로가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아버지로서 느끼는 미안함, 우려를 뒤로하고 디자이너 이청청은 아버지와는 다른 패션세계를 선보이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선배 디자이너로서 어떠한 조언들을 해주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상봉 디자이너는 “다름을 인정 할 뿐”이라고 간략히 대답했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최고의 디자이너

끊임없이 샘솟는 새로운 아이디어, 젊은 디자이너를 뛰어넘는 참신한 결과물을 통해 30년 넘도록 현역에서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상봉 디자이너는 그 비결을 ‘공부’라 밝혔다.

“일을 놓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숙명입니다. 한 두번의 행운을 통해 반짝 주목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금방 한계에 부딪히게 되죠.”

기술의 숙련은 기본, 그러나 감성을 다루는 디자이너는 오감(五感)을 통해 접하는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될 수 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공연을 보는 행위 하나하나가 감성을 자극하고 작품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여가’로 받아들여지는 이러한 활동들이 디자이너에게는 ‘작업’ 과 다름없는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고. 그러나 이상봉은 즐거움이 바탕이 되어야 좋은 창작의 결과물이 태어난다고 밝힌다.

“즐길 수 있는 것들에서 자신과 연관된 것, 작업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내는 과정. 이 또한 공부가 될 것입니다.”

왕성한 활동을 자랑하는 이상봉 디자이너를 향후 얼마나 더 만날 수 있을까? 조심스레 은퇴 계획을 물으니 “길게는 5년을 내다보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생각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다.

“은퇴 이후에는 오롯이 저를 위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 전까지 진행해 왔던 일들을 정리하고 목표했던 것들을 실행에 옮겨볼까 해요.” 

이상봉 디자이너는 자신의 세 번째 저서 ‘Moments, 기억의 순간들’의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사람들의 이목이 비켜가는, 그의 패션쇼 백스테이지에서 일어나는 순간의 기록들이 있는 그대로 공개될 예정이다. 특히 미래의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더욱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이 책을 준비하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 패션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 고등학교가 20여 곳, 대학교는 100여 곳이 넘는다고 해요. 어린 고등학생들이 갖고있는 꿈을 응원하기 위해서는 대학과 다른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이 현역에 있을때 어린 학생들과의 소통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계에서 당장 1~2년 전의 경험도 ‘옛날 것’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수익이 생긴다면 학생들의 꿈을 지원하기 위해 기부하고 싶다는 소망도 밝혔다.

이상봉 디자이너의 영원한 소재인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도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고자 한다. 우리의 전통무예인 ‘태권도’와 같이 무형의 것들을 패션을 통해 형상화 시키는 작업을 구상하고 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디자이너 이상봉. 정상의 자리에서도 늘 도전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K-패션의 밝은 미래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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