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희망 수명을 이야기하며 단지 오래 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얼마나 건강하게 오랫동안 살 수 있느냐가 진정한 의미의 장수인 셈이다.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단지 설립된 지 오래된 기업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산업발전을 이룩해온 기업만이 진정한 장수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제1호 명문장수기업으로 선정된 코맥스 변봉덕 회장을 만나 명문장수기업의 의미와 코맥스의 백년 비전에 대해 들었다.Interview 손홍락 발행인   Editor 박인혁   Photographer 권상훈

2017년 10월 17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제12회 전자․IT의 날’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는 산업 발전에 공헌한 40명의 유공자에 대한 포상이 이뤄졌다. 코맥스 변봉덕 회장은 최고상인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하며, 지난 반세기동안 대한민국 전자산업을 발전시켜온 공로를 인정받았다. 변봉덕 회장은 감사 인사와 함께 50년간 회사의 발전을 함께해온 임직원들에게 그 공을 돌렸다.


“이번에 받은 금탑산업훈장은 개인적으로도 뜻 깊은 큰 상이고 회사로서도 50년 역사를 기념할 만한 대단한 영광입니다. 오랜 시간 고난과 역경의 환경에서 도전과 창조의 길을 걸어온 직원 여러분께 가장 먼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변봉덕 회장은 1968년 4월, 세운상가에서 ‘중앙전자공업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법인을 설립했다. 코맥스의 전신이 된 중앙전자공업사를 통해 주로 만들어 판매했던 제품은 전화교환기였다.
“전화에 대한 수요는 많지만 공급이 제한되었던 시절이었죠. 백색전화 회선 하나 가격이 중산층 집 한 채와 맞먹는 가격이었으니까요. 건물을 한 채 지으면 전화번호 하나를 개통하고 교환기를 통해 연결하는 방식이 유행하면서 전화교환기에 대한 수요 또한 많았습니다.”


1970년대는 대한민국이 대대적인 산업 발전을 이룩하며 가발과 봉재, 완구 등 다양한 제조 공장이 생겨난 시기다. 공장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공장 내에서 원활히 의사소통할 방법이 필요했고, 변봉덕 회장은 인터폰 분야에 도전하며 다시 한번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73년 4월에는 대한민국에서 제조된 인터폰으로는 최초로 미국과 영국, 가나 등 해외에 수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1977년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미국에서 인터폰 UL 규격을 획득하며 제품의 안전성 및 품질을 인증받았다.

초인종, 혁신으로 진화하다


누구나 남의 집에 처음 방문할 때면 가장 먼저 초인종을 누른다. 초인종을 누르고 응답을 기다리는 시간은 약간의 긴장과 설렘의 감정으로 가득하다. 다른 제품들과 마찬가지로 초인종 또한 시대의 필요와 기술의 발전에 따라 그 역할과 기능이 진화했다. 1970년대에는 밖에 손님이 왔다는 사실을 내부에 알리는 일방향 알림 기능에서 인터폰을 통해 음성으로 소통하고 문을 열어주는 쌍방향 통신 방식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인터폰 진화의 중심에는 코맥스의 연구 개발 노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도어폰은 도시에 사람이 집중되던 1970년에 처음 개발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외판원들의 방문판매가 흔하던 시절이었고 걸인들이 벨을 누르는 일도 종종 있었기 때문이죠. 문을 열기 위해서는 마루를 거쳐 현관문으로 나가야 했던 고급 단독주택에서 음성으로 신원을 확인하고 버튼을 눌러 문을 여는 방식이었죠. 당시로써는 흔치 않았던 양방향통신과 자동개폐 기능을 주거공간에 도입해 생활의 혁신을 불러온 사례였습니다.”
1980년대는 음성 중심의 도어폰에서 영상 중심의 비디오폰으로 진화하는 과정이었다. 1987년도에 영상 정보 통신 시스템을 도입하며 비디오 도어폰(Vedio Door Phone)을 개발한 코맥스는 흑백 비디오폰과 컬러 비디오폰을 연달아 상용화하며 영상통신기기 시장의 발전을 선도했다.
이처럼 코맥스는 시대를 앞서가는 아이디어와 탄탄한 국산 기술력을 바탕으로 도어폰 분야의 혁신적인 발전을 이끌어 왔다. 변봉덕 회장은 지난 50년을 되짚으며, 수출로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는 한편, 고객들의 일상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값진 세월이었다고 회상한다. 코맥스는 1990년대에 들어서며 홈 오토메이션으로 다시 한번 통신기기 분야에 새로운 변화를 주도한다.
“홈오토메이션은 최근 들어 고도화되고 있는 스마트홈 사물인터넷(IoT)의 초기 버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방재, 방범 기능을 갖춘 코맥스의 홈오토메이션은 가정용 통신기기에 새바람을 일으켰죠.”
이 시기 코맥스는 전자산업대상을 받고 수출유망 중소기업과 품질경쟁력 우수 50대 기업에 선정되는 등 품질의 우수성과 수출에 대한 성과를 대외적으로 인정받았다. 1999년도에 마침내 대표 제품 브랜드인 ‘코맥스(COMMAX)’로 회사명을 변경했고, 이듬해에는 코스닥에 상장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코맥스는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과 더불어 ‘홈네트워크’라는 신조어를 처음으로 만들고 인터넷 기술을 접목한 제품들을 개발했다. 이 시기 코맥스는 수출 역량을 폭발적으로 키우며 2001년 수출산업포장 및 3,000만 불 수출의 탑 수상, 2004년 무역의 날 5,000만 불 탑 수상 등을 달성했다. Good Design Award와 IF Design Award 등 각종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하며 제품 디자인 또한 인정받았다.
이렇듯 코맥스는 정보통신기기 시장의 패러다임을 선도하며 항상 최초의 길을 앞장서 왔다. 실제로 1970년대~80년대 사이 지어진 고급주택은 대부분 코맥스 제품을 사용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도 코맥스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무려 34%에 달한다.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 가정집 세 곳을 방문해 초인종을 누른다면 그중 한 집은 코맥스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새로운 제품


오늘날 공상과학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묘사된 50년 후 미래의 모습은 너무도 낯설고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50년 전에 예측한 반세기 후의 모습을 살펴보면 이미 실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거나 가까운 미래에 구현할 수 있도록 개발 중인 기술이나 제품이 많다.
애플의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는 일찍이 ‘고객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 그가 만들어낸 아이팟과 맥북에어, 아이폰 등은 만들어지기 전에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았던 물건들이다. 코맥스가 개발해온 제품들 또한 시대의 수요를 예측하고 개발해서 히트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5G 시대의 도래를 앞두고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이미 목전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모든 기업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마음가짐임이 분명하다. 코맥스 또한 새로운 시대를 앞두고 미래 기술을 적용해 세상에 없던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
“음성인식과 서버 전송, 온도 습도 등에 대한 감지 센서는 물론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까지 연계하는 등 모든 기술을 총망라한 스마트 홈 IoT 제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신제품인 스마트 미러는 뒷모습까지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물론 매일 변화하는 기후와 온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것입니다. 여성들의 경우 어떻게 화장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조언받을 수 있겠죠. 코맥스 홈 IoT 시스템은 저희가 개발했던 도어폰이나 비디오폰처럼 새로운 제품이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사람들이 꼭 필요로 하는 제품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코맥스는 신제품에 미래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퓨처랩’을 신설하고 전문 연구원의 채용을 확대하는 등 적극적인 혁신 활동을 전개하며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소비자에게 친숙한 플랫폼 기업과의 콜라보래이션 또한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코맥스의 신사업 전략이다. 인공지능 분야에서 앞서 나가는 글로벌 기업인 아마존, MS, IBM, 국내 3대 이동통신사, 카카오, 네이버 등과 같은 서비스 플랫폼 기업, 삼성, LG와 같은 가전기업과 적극적인 IoT 협력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변봉덕 회장은 급변의 시대, 자기혁신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기업은 항상 자기혁신을 이뤄야 합니다. 제품이든 서비스든 기존의 수준에 만족하고 변화하기를 꺼린다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도태가 될 것입니다. 코맥스는 10년을 주기로 패러다임을 바꿔왔습니다. 제가 항상 직원들 스스로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코맥스는 성실함과 정직함 그리고 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장 중시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최선의 길은 있다
반세기. 강산이 다섯 번 바뀔 만큼 긴 세월 속에 대한민국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격변의 세월을 거쳐 왔다. 코맥스 또한 급변하는 산업환경 속에서 모진 풍파를 겪었다. 변 회장은 2008년 키코(KIKO·Knock In Knock Out) 사태를 가장 어려웠던 시기로 기억한다.
“키코 금융 사태로 900억 원대 매출 중 500억 원가량의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매출의 절반이 넘는 금액이었기에 회사에는 큰 위기가 다가왔죠.”
키코 사태는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환헤지(Hedge) 상품에 가입했던 기업들이 엄청난 타격을 입었던 사건이다. 환리스크에 대비하고자 했던 수출 중심의 중소․중견기업들은 시장 환율이 키코 상품의 약정 환율 상한선을 넘어가는 경우 계약금액보다 2~3배를 의무 거래해야 하는 조항에 따라 막대한 손실을 보았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기업과 직원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서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정리해고 등 인력감축을 먼저 생각했겠지만 기업을 위해 믿고 달려온 직원들을 차갑게 내칠 수는 없었죠.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위기였지만 제품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기에 꾸준히 길을 걷다 보면 결국은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변 회장은 기업의 존폐가 달린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도 단 한 명의 고용 감축도 없이 전사혁신 활동을 거쳐 위기를 극복했다. 직원들도 한마음 한뜻으로 회사를 정상화하기 위해 움직였다. 국내 대리점이나 해외 거래처 또한 코맥스의 사정을 알고 크고 작은 배려로 도움을 베풀었다. 코맥스가 그동안 대내외적으로 쌓아온 신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회사의 재정은 조금씩 회복되고 현재는 거의 모든 채무를 상환하면서 새롭게 도약할 힘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평소 직원들에게 ‘아무리 어려워도 항상 최선의 길은 있다’고 강조합니다. 코맥스는 언제나 크고 작은 위기와 맞닥뜨려왔습니다. 그러한 위기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다 보면 최선의 수가 나왔죠. 50년 가까이 기업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불굴의 정신을 지켜왔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코맥스 아카데미와 인재경영
변봉덕 회장은 기업을 경영하면서 꼭 지켜왔던 원칙, 즉 경영철학으로 인재경영을 꼽는다. 변 회장은 인재가 기업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다. 코맥스가 직원 교육과 육성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다.
“코맥스는 인재경영을 중시하는 기업입니다. 기업의 모든 작업은 전부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죠. 직원들의 교육을 장려하기 위해 코맥스 아카데미라는 자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든 것도 인재경영의 일환입니다.”
코맥스 아카데미에서는 기본 회사 업무에 관한 교육뿐 아니라 유명 대학의 교수님들을 초빙해 MBA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코맥스에서 매년 직원들의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은 무려 2억 원을 훌쩍 넘는다. 절대로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변 회장은 지출이 아닌 투자라고 생각한다.
또한, 직원들의 의견을 함부로 흘려듣지 않고 아무리 작은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도 코맥스의 독특한 조직 문화다. 매년 좋은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직원에게 포상을 통해 독려하고 실제 업무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코맥스 대리점을 운영하는 점장 대부분이 코맥스의 전(前) 직원이고, 그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꾸준히 지속하고 있다는 점도 코맥스가 가진 인재경영의 힘이다.

100년 지속 가능한 명문장수기업 제1호
변봉덕 회장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오랜 세월 성남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으며 상공인들의 화합과 친목을 도모하는 한편, 성남 지역의 경제 발전을 견인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성남상공회의소 박용후 회장은 변봉덕 회장을 탁월한 경영능력과 온화한 리더십을 겸비한 성남시의 대표적인 기업인으로 소개한다.
“변 회장님은 항상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인 결정을 도출하는 분이셨죠. 올바른 기업 경영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항상 좋은 인재가 좋은 기업을 만든다는 신념 아래 인재 경영에 앞장서오셨습니다.”
기업과 직원들, 그리고 산업 분야뿐 아니라 지역 경제까지 신경 써온 변봉덕 회장의 폭넓은 활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중앙회는 2017년 4월 ‘100년 동안 지속하는 명문 중소기업을 육성하자’는 취지 아래 ‘명문장수기업’을 선정했다. 코맥스는 수많은 경쟁 기업들을 제치고 제1호 명문장수기업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명문장수기업의 가치는 단지 기업이 설립된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에 있지 않다. 과거 ‘명문가’가 백성들에게 존경과 칭송을 받는 인물을 많이 배출했던 가문이었던 것처럼, 명문장수기업 선정은 창립자 한 사람이 아닌 대를 이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이 되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코맥스가 변봉덕 회장에 이어 대를 잇는 명문장수기업으로 선정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장남인 변우석 부사장의 경영 합류도 큰 몫을 했다.
서울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변우석 부사장은 2006년 당시 이탈리아 밀라노의 유명 오페라극장인 ‘라스칼라’ 정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10년 이상 성악가로 인정받으며 살아온 예술가가 하루아침에 진로를 바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해외 대기업에서 코맥스를 거액에 인수하겠다는 제안이 연달아 들어오는 상황에서 변봉덕 회장은 코맥스를 대를 잇는 명문장수기업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결국, 변 회장의 간곡한 설득에 아들은 마음을 돌려 경영인으로서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었다.
최근 변우석 부사장은 코맥스 벤처러스 대표직을 수행하며 스타트업과의 동반성장을 이끌고 있다. 코맥스 벤처러스는 홈 IoT와 A.I. 등 미래기술 분야에서 스타트업 기업들과 중소기업이 함께 시너지를 내는 새로운 성장 생태계를 구성하는 역할을 하고자 2017년 4월에 설립되어 7월에는 중소기업부 인정 액셀러레이터로 선정되었다. 코맥스 벤처러스는 앞으로 체계적인 육성 프로그램을 제공해 스타트업 기업과 협업 모델을 만들고, 스타트업이 4차 산업시장에 진입해 독립적으로 자생하고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거듭할 계획이다.
변봉덕 회장이 코맥스의 전신인 중앙전자공업사를 자본금 200만 원으로 세운상가에 설립한지 올해로 꼭 50년이 지났다. 앞으로 50년 후 100주년을 맞아 명실상부한 백년기업으로 거듭날 코맥스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50년 후 코맥스는 글로벌 탑 브랜드 기업으로 세계 시장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겠죠. 기술적 변화가 워낙 빨라 비록 50년 후 제품의 모습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그 철학은 항상 같습니다. 고객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주거문화를 제공한다는 것이지요. 모든 가정에 코맥스 브랜드가 구축되어 있고 전 세계인 누구나 자연스럽게 코맥스의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곤 합니다.”
아직 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언젠가는 변봉덕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명예롭게 은퇴할 날도 있을 것이다. 변 회장은 은퇴 후에 그저 ‘최선을 다한 경영자’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다.
“코맥스와 함께 숨 가쁘게 달려온 50년이었습니다. 기업을 운영하면서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노력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밤낮없이 24시간 회사만을 생각하며 일을 해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은퇴하는 그 날까지 더욱 열심히 일하며 우리 직원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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