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원 코리안리 사장은 공공연히 ‘야성의 리더십’을 표방한다. 부드러운 스타일이 미덕으로 존중받는 시대에, 흐름을 역행하는 ‘마초’적 발언이 아닌가. 그러나 이 같은 반응은 죽어가는 기업을 되살려 다섯 번이나 CEO에 연임된 ‘경영계의 화타’, 박종원 사장을 표피적으로 ‘오독(誤讀)’하는 결례다.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진화하는 생명체의 신비 자체가 ‘야성’이라는 것이 박 사장의 지론이다. 그가 추구하는 ‘야성의 리더십(Animal Spirits)’, 그 진정한 실체를 만나보았다.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은 공공연히 ‘야성의 리더십’을 표방한다. 부드러운 스타일이 미덕으로 존중받는 시대에, 흐름을 역행하는 ‘마초’적 발언이 아닌가. 그러나 이 같은 반응은 죽어가는 기업을 되살려 다섯 번이나 CEO에 연임된 ‘경영계의 화타’, 박종원 사장을 표피적으로 ‘오독(誤讀)’하는 결례다.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진화하는 생명체의 신비 자체가 ‘야성’이라는 것이 박 사장의 지론이다. 그가 추구하는 ‘야성의 리더십(Animal Spirits)’, 그 진정한 실체를 만나보았다.

 

현대 경제학과 기업경영 현장에 ‘소통’이 가장 큰 화두로 던져졌다. 내부 구성원은 물론, 고객과 파트너 그리고 전체 시장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발전을 도모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러한 흐름의 배경과 원인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과 이들을 이끄는 CEO들은 소통을 위한 저마다의 전략을 세우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실제로 시장과 소통하는 데 성공한 애플은 기존의 허약한 모습을 벗어 던지고 시가 총액 세계 1위 기업으로 확실하게 도약했고, 구글 역시 소통의 중요성을 세상에 널리 알린 신흥 강자로 등극했다. 반면에 자사의 영역에 안주한 채 공급자 위주 마인드를 버리지 못했던 소니, 모토로라, GM 등 기존의 강자들은 허무하게 추락하며 다른 기업들의 ‘반면교사’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있다. 최근 소통의 중요성이 강조되자 많은 CEO들이 몸을 낮추고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내부 구성원들과 고객들을 대하는 스타일로 변화하고 있다. ‘최적의 소통’을 위해 화합의 리더십을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이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 깔려 있다. 한편 시대적 추세와는 별개로 강한 외형을 추구하는 CEO들도 존재한다. 박종원 코리안리재보험주식회사 사장이 그 대표적인 인물로, 박 사장은 오히려 ‘야성경영’이라는 새로운 경영 기법을 진정한 소통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후회 없이 살려면 목숨을 걸어라

“매 순간 목숨을 걸고 하지 않으면 진정성이 없습니다. 저는 1998년 코리안리 CEO에 취임한 이후 지금까지 다섯 차례 임기를 수행하는 동안 모든 경영 사안을 판단하면서 형식적으로 얼버무린 적이 없습니다. 치열한 생존의 현장에서 CEO가 먼저 목숨을 걸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야 리더다운 모습이 아닐까요?” 첫 마디부터 독한 모습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박종원 사장은 취임 직후부터 혹독한 환경을 경험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박 사장의 마음 밑바닥에 잠자고 있던 야성을 결정적으로 각성시킨 것은 당시 코리안리가 처한 기업 상황이었는지도 모른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후 엘리트들만 모인다는 재경부에서 탄탄대로를 달려오던 그에게 당시 코리안리의 상황은 해병대 시절 이후 처음 겪는 인생의 시험대였다. “코리안리 자체가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던 기업이고 재경부 출신이 사장으로 많이 가던 것이 당시까지의 관행이었지만, 저는 더 좋은 환경의 기업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코리안리를 선택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재경부 시절 제가 공부한 금융 계통의 노하우를 펼칠 수 있었고,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는 성격 탓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낙천적인 성향의 박 사장도 CEO로 부임하고 나서 아쉬운 탄성을 피할 길이 없었다. 당시 코리안리의 상황이 안 좋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까지 나쁜 상황인 줄은 전혀 몰랐다’는 것이 당시의 회고. “이것도 다 제 운명이라 생각하고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여러모로 궁리하고 연구한 끝에 생존을 위해서는 원칙에 근거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밖에 길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박 사장을 더욱 실망케 한 것은 당시 코리안리 직원들의 마인드였다. “관료들보다 더 관료적인 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 이 회사 구조였기 때문에 사고가 경직되어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관련 법규상 경쟁이 거의 없던 독점기업이나 마찬가지여서 독자적인 경쟁력이 전혀 길러져 있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7년 민영화 이후 감독권을 금감원에서 회수해가고 IMF 이후 해외 재보험 회사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들어왔으니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지요.” 박 사장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며’ 그레샴의 법칙을 충족시키고 있던 코리안리를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서 초강수를 두기로 했다. “재경부의 똑똑한 친구들과 일하다 여기 와 보니 한숨이 절로 납디다. 하지만 신세 한탄만 하고 있을 정도로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어서 직원들과 진솔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박 사장의 표현을 빌리면 “너희들이 공부를 잘하냐? 술을 잘 마시냐? 영업을 잘하냐? 한마디로 무미건조한 놈들 아니냐?” 하며 남자 대 남자로 시작했다는 것(당시에는 여직원들의 수가 적었다고 한다). 회사가 살고 직원들도 살기 위해서 대화를 하다가 간부들과 하루에 폭탄주 50잔까지 마셔 보는 진기록(?)도 세웠다. 막연하게 기만 살아 있는 직원들을 제압하기 위한 박 사장만의 방식이었다.  

 

 

청탁? 외압? 아는 것은 원칙 뿐!

회사의 생존을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밖에 길이 없다는 것은 박 사장도 알고 당시 직원들도 공감하는 바였기 때문에 실천만 남은 상태였다. 하지만 대상의 범위가 가장 큰 문제였다. 물론 이미 머리와 가슴을 생존의지 가득한 ‘야성’으로 채운 박 사장이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을 리 만무하다.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30% 감원이 불가피했습니다. 하지만 힘없는 말단직원, 계약직, 하위직 여직원 순으로 정리하는 것은 얄팍한 인원감축일 뿐이지, 진정한 의미의 구조조정이 아닙니다. 구조조정이란 말 그대로 조직을 가장 효율적인 상태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자신하건대, 아마 대한민국에서 당시 저만큼 원칙대로 구조조정을 한 사례는 없을 것입니다.” 그의 원칙에 대한 뚝심은 당시 ‘다른 언어(?)’를 구사하고 있던 노조위원장과의 담판에서 절정을 보여 주고 있다.  

 

박종원 사장 : 망한 회사다. (방법을, 구체적 회생 방법을) 어떻게 할 것이냐?

노조위원장 : 남은 파이를 나눠 갖자. (파산/정리 방법)

박종원 사장 : (정리는) 안 된다. 살 길이 있다. 혁신이 필요하다.

 

박 사장은 확고하게 원칙을 세우고 이를 안팎으로 천명한 뒤 구체적인 절차에 들어갔다. 담당 부서가 작성한 구조조정 대상 명단에는 정권 실세와 막역한 부장도 있었고, 예의 노조위원장도 들어 있었다. 절차가 진행될 무렵, 인사담당 상무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사장실로 찾아왔다. ‘정권 실세 라인 부장’과 ‘힘 있는 노조위원장’ 문제로 곤혹스러웠던 상무로서는 박 사장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재고를 진언했다. 이에 노한 박 사장은 “당장 당신부터 사표를 내라”고 호통을 쳐 실무팀의 의지를 굳게 다지고, 애초의 원칙대로 구조조정을 마무리지어 나갔다. “당시 여러 경로로 전화가 빗발쳤습니다. 그중 구조조정 대상인 노조위원장을 살리기 위해 전화한 정부 관계자는 왜 노조를 탄압하느냐고 따져 묻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노조를 탄압한 적이 없다. 구조조정명단에 노조위원장이 들어 있다고 노조를 탄압한 근거가 되느냐?’라고 반문했습니다. ‘그 사람을 살리려면 다른 사람이 내보내야 하는데,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도 했지요.” 박 사장의 간접적인 ‘으름장’에 기가 질린 관계자는 그 뒤로 전화를 하지 않았고, 노조위원장은 결국 두 달 뒤에 사표를 제출했다. ‘정권 실세 라인 부장’도 당시 고위 정부관계자를 통해 박 사장에게 압력을 넣었다. 하지만 야성을 통해 이미 태풍도 두려워하지 않는 수준으로 진화한 박 사장의 원칙에 대한 일관성이 ‘잔잔한 미풍’에 흔들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 회사를 살려야 한다. 내 발목을 잡지 말라”며 일갈하는 박 사장에게 어느 누가 외압을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 “원칙은 흔들리지 않아야 원칙입니다. 특히 CEO의 리더십은 항상 일관된 원칙을 지키는 것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리더가 갈피를 못 잡고 시류에 흔들리거나 입맛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면 리더의 자격이 없지요. 제가 서두에 목숨을 건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모두 알고 있는 내용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리에 연연하는 CEO는 조직의 미래를 발전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구구(句句)이 명문이요. 절절(節節)이 절창’이라는 말은 이처럼 절대불변의 진리를 설파할 때도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우여곡절의 구조조정 끝에 박종원 사장은 코리안리재보험주식회사의 성공적인 회생을 자신했고, 이는 고스란히 실천으로 옮겨져 현재 아시아 재보험업계 1위의 강한 기업을 만들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냉철해야 얻는 것이 ‘야성’, ‘쉽게 끓는 야만’은 No!

박종원 사장이 ‘야성의 리더십’을 추구한다고 표방하니, 외향적인 강경 일변도의 모습을 연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표현의 상투적 고정관념에 지나치게 매몰된 흔적이다.하지만 박 사장은 살아남기 위한 최적의 방식으로서 ‘야성’을 지향하는 것일 뿐, 무질서한 맹공 일변도의 ‘야만’은 결연히 거부한다. ‘야성의 리더십’을 주창하는 그를 세간에서 혹시 ‘마초’로 오독(誤讀)할 우려가 있어 박 사장 자신의 육성으로 ‘야성’과 ‘야만’의 구획을 정리해 본다. “야만은 교양 없고, 사납기만 하고 제멋대로라는 점에서 야성과 구분됩니다. 자연에는 자연의 질서가 존재하며, 동물의 세계에서도 그 질서는 지켜지고 있습니다. 잘 살펴보면 먹이사슬 속에서 모든 동물들은 고유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 영역을 침범하면 다툼이 생겨 생존이 불투명해집니다. 각각의 생명체가 자기 영역을 지키면서 상대의 영역을 인정하는 것, 그 자체가 생존을 위한 질서입니다. 야만은 이러한 질서에서 벗어나 있기에 싸움과 화를 초래하기 마련입니다.” 결국 박종원 사장이 지향하는 ‘야성’은 그 자신과 그가 속한 기업이 냉정한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적의 생존방식에 다름 아니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은 사람에게 먹이를 받아먹으며 의존형 삶을 누려 왔기 때문에 자연에 버려진다면 며칠 못가 굶어죽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온실 속에서 온도와 습도조절을 받으며 자라던 화초가 들풀의 질긴 생명력을 당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야성이란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를 거듭하는 데에서 자연스럽게 길러지는 것인데, 박 사장이 미덕으로 추구하는 것은 이러한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그가 처음 코리안리에 부임하던 당시만 하더라도 이 회사는 ‘편안하게 먹이를 받아먹던 온실이나 축사 속 환경’과 다를 바 없었다. 1997년 민영화 당시 수재보험료 기준으로 세계 28위였던 코리안리는 지난해 아시아 1위, 세계 13위 재보험사로 초고속 성장했다. 2020년에는 수재보험료 15조원을 달성하며 세계 5위로 도약하는 것이 장기 목표다. 박종원 사장이 그 자신부터 솔선수범해서 코리안리의 ‘야성’을 일깨우지 않았더라면, 코리안리의 현재는 말할 것도 없고, 당장 정글 속에 던져진 상태에서 삶조차 보장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밀림에서 살아가는 원시부족은 창과 화살, 그리고 간단한 식량만으로도 먹잇감을 구할 때까지 사냥을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먹잇감을 잡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뒤쫓는 열정과 근성이 있어야 사랑하는 가족들을 먹일 수 있는 것입니다. 끈질긴 생존본능, 그것이 바로 야성입니다.” 박 사장의 말을 차분히 듣다보면 ‘야성’은 적에게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며, 나아가 살아남기 위한 최적의 변화를 위해서 냉철함을 주 무기로 삼아야 한다는 역설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공공연히 상대방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야만은 오히려 편안한 문명의 산물이라는 깨달음에 소스라친 이가 기자 한 사람만일까. 일가(一家)를 이룬 사람들은 이처럼 늘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하우와 ‘소름’을 함께 선사한다. 

축제를 통과한 우리는 ‘동반자’, 이보다 끈끈하랴

‘시련’이라는 단어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회생과정을 겪으며 아시아 1위의 재보험 회사로 우뚝 선 코리안리재보험주식회사는 CEO인 박 사장부터 능력 있는 인재를 갈구한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경험하며 능력 있는 인재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회사에 들어가려는 이들은 다른 기업들보다 몇 배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것은 물론, 통과한 이후의 성취감과 만족도도 역시 같은 양으로 맛보게 된다. “우리 회사 직원 한 명은 다른 대기업 직원 3명과도 안 바꿉니다. 뽑는 과정 자체도 엄선에 엄선을 거듭해 최고의 인재를 가려내지만, 입사한 이후에도 선후배의 끈끈한 정과 업무 협조로 동종업계 최고의 전문가를 양성하지요. 물론 보수도 국내 1위 대기업과 비교해 전혀 부럽지 않을 수준으로 대우합니다.” 박 사장의 자부심 섞인 직원 자랑이다. 실제로 이 회사의 입사면접은 ‘축제’라고 부를 정도로 중요한 사내 행사 중 하나다. 1차, 2차, 3차 면접을 치르는 동안 입사지원자들은 회사 채용에 응한 것이 아니라 축제행사나 캠프에 참여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독특하다고 부를 밖에 달리 길이 없는 이 회사의 선발 방식은 1차 서류전형부터 지원자의 출신대학 선배들이 담당한다. 설명회에 나갔던 선배들이 서류접수와 서류전형, 면접전형에까지 직접 참여하고 면접에는 사장과 노조위원장, 전년도에 입사한 신입사원들까지 참여한다. 학교의 명예가 달려 있기 때문에 선배들은 경쟁력 있는 우수한 후배들을 발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되고, 후배들 역시 선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받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다. 하지만 결국 당락을 가르게 되는 것은 인성과 리더십, 미래발전 가능성을 테스트하는 2차, 3차 면접이다. 면접 방식도 다양해 면접관과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실내면접 외에도 정신과 육체건강을 테스트하는 캠프 성격의 야외면접, 식사를 함께 하는 예절면접도 치른다. 가장 독특한 것은 역시 야외면접인데, ‘축제’라는 타이틀을 붙일만한 근거가 되는 것도 이 방식 때문이다. 조를 편성해 등산과 축구 등 야외활동을 펼치며 인성과 리더십 등을 평가하는데, 박 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지(知), 덕(德), 체(體)’가 덕목인 우리와 달리 ‘체(體), 덕(德), 지(知)’의 순서를 따르는 영국의 명문 이튼스쿨 방식이다. 여기서의 ‘체(體)’는 물론 단순한 육체적 건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인성, 교양 등 정신건강을 함께 일컫는다. 식사 시의 예절면접도 가볍게 생각해서는 낭패를 보게 된다. 일례로 모든 부문에서 1위를 달리던 한 응시자가 마지막 식사예절 면접 자리에서 폭탄주를 마시고 인사불성으로 취해 탈락한 예도 있었다고. “소수정예를 지향하는 코리안리는 일당백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또 하나의 생존방식입니다. 이 때문에 직원 채용방식을 다양하고 엄격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들어온 사람들이 자신의 업무에 소홀할 수 있을까요? 선배들 역시 자신과 후배들이 어렵고 힘든 과정을 함께 한 동반자라는 의식으로 똘똘 뭉쳐 적극적인 멘토링을 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채용방식을 만들어 지원자들을 ‘생고생’시키고 있는 박종원 사장은 설명하면서 넉살좋게 웃고 있다. 하지만 떨어진 사람이라면 몰라도, 범접치 못할 자부심의 원동력을 만들어 준 자신들의 CEO에게 “왜 우리를 고생시켰느냐?”며 원망의 눈초리를 보낼사람은 없어 보인다. 야성을 추구하는 코리안리와 박종원 사장의 경영 스토리는 고지를 정복하는 산악탐험대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아니나 다를까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백두대간 등정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 2003년 직원들에게 내년부터 백두대간 등정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동안의 성공 분위기에 취해 안주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직원 잡는 데에는 ‘도가 튼’ 박 사장이다. 선언한 대로 2004년 여름 지리산 등정을 출발점으로 백두대간 대장정이 시작됐다. 좀 편할 만하면 ‘야성’의 이름 아래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는 CEO 때문에 이 회사 직원들은 좀처럼 긴장이 풀어질 틈이 없다. 

 

“코리안리 직원 여러분, 도전하시겠습니까?”

“애초부터 적당히 홍보용 이벤트로 시작할 마음은 없었습니다. ‘좀 하다 말겠지’라고 착각한 직원들은 암담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즉흥적인 것이라고는 찾아볼 길 없는 박 사장이 시작한 만큼 회사 차원에서 준비도 철저히 했다. 등정 1년 전인 2003년 봄 전 직원을 대상으로 정신력 강화 합숙훈련을 실시했는데, 이것이 사실상 백두대간 등정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도전정신과 진취적인 사고를 배양하고 주어진 책임과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는 인재육성’이라는, 다소 길지만 알맹이는 다 들어 있는 목표로 실시한 정신개조 훈련 프로그램이었다. 40명씩 다섯 개조로 나누고 임원들이 팀장이 되어 2박 3일간 경기도 유명산의 한국행동종합학교에 입소해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군대 유격훈련을 방불케 하는 체력단련 프로그램과 등반 과정을 소화하면서 직원들 사이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났고, 이듬해부터 시작된 백두대간 등정의 성공적인 시작을 가능케 만들었다. 2004년부터 지리산에서 시작해 2009년 진부령까지 장장 6년간 진행된 코리안리의 ‘백두대간 종주 성공신화’는 그동안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또 한 번 야성을 일깨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새로운 출발의 도약점이 되기에 충분했다. “성공이란 자기가 원하는 바, 자기가 추구하는 바를 충분히 펼칠 수 있는 무대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와 코리안리의 직원들은 그러한 무대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성’은 정글 속에서 팽팽하게 긴장을 유지하고 있어야 잠들지 않는다.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은 우리 시대 가장 생생하게 삶을 누리는 CEO의 전형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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