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대한민국은 혼돈의 한복판에 서 있다. 시민들은 주말마다 광화문에 모여 시국을 규탄하고, 현 정부에 대한 탄핵 가능성이 높아지며 정치권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경제 역시 상황은 좋지 않다. 가계 부채가 1,300조 원에 이르고 실업자 수가 역대 최초로 100만 명을 돌파했다. 추운 날씨와 혼란한 정세에 몸과 마음이 얼어붙은 1월의 어느 날, 동반성장 전도사를 자처하며 양극화 해소를 향해 묵묵히 길을 걸어온 정운찬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최근 저술한 책을 통해 희망적인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렸다. 비정규직 문제와 가계부채를 해소하고, 국민휴식제를 시행해서 가정의 행복을 지키겠다는 내용이다. 이상적인 내용이지만 어떻게 실현해나가야 할까? 정운찬 이사장의 이번 책 제목에서 그의 방법론을 엿볼 수 있다. Interview 손홍락   Editor 박인혁 Photographer 권상훈 Where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 호텔

  

 

<우리가 가야할 나라, 동반성장이 답이다> 

동반성장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 전면에 등장하며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한 시기는 2010년이다. 당시 국무총리직을 수행하던 정운찬 이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동반성장위원회를 만들 것을 건의했고, 그해 9월 청와대 경제회의를 거쳐 12월에 정식으로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했다. 정운찬 이사장은 어느 날 중견기업 CEO가 찾아와 푸념을 늘어놓았던 일화를 들며 발족을 건의할 당시를 회상했다.

“하루는 중견기업인이 찾아와서 다짜고짜 이민을 가야겠다고 이야기하더군요. 30년을 거래해온 대기업이 일명 ‘납품가 후려치기’를 너무 심하게 한다는 게 이유였어요. 중소기업도 아니고 중견기업 CEO가 이민을 생각할 정도로 고통스럽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어 자세히 조사해봤더니 생각보다 심각하더군요. 특히, 1998년 외환위기 이후에 대기업에서 중견, 중소기업에 대해 불공정거래를 행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을 찾아가 이대로는 우리 사회가 파탄 날 수 있으니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죠.”
정운찬 이사장은 세종시 개선안이 부결된 후 총리직을 사퇴하고, 동반성장위원회의 초대위원장을 맡아 1년 4개월간 동반성장위원회의 기틀을 닦았다. 동반성장위원회는 민간단체를 표방하지만 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반관반민(半官半民) 단체로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동반성장위원회를 청와대 직속 위원회로 출범해야 한다고 건의했어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의견을 받아들여 지금의 형태로 출범했습니다.”

이후 정운찬 이사장은 순수민간단체인 동반성장연구소를 설립하며 대한민국의 더욱 포괄적인 동반성장을 위해 노력했다. 동반성장위원회와 동반성장연구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동반성장의 범위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지칭하는 동반성장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으로 제한된다면 동반성장연구소는 빈부 간, 도농 간,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지역 간, 남녀 간, 세대 간, 남북한 간, 국가 간의 동반성장을 모두 추진한다.

 

중소기업 숨통 트인 적합업종 제도

그렇다면 2017년 현재, 대한민국의 동반성장은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었을까?
“제가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 정책은 세 가지였습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과 정부발주 사업의 중소기업 직접 발주, 초과이익공유제죠. 그중 앞의 두 사례는 이미 많은 사례와 함께 정착되었지만 초과이익공유제는 여러 반대에 부딪히며 아직 실현하지 못한 과업입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정운찬 이사장이 동반성장위원회 초대 위원장 시절 추진해 적극적으로 수용된 대표적인 동반성장 사례다.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합의해 대기업의 무분별한 진출을 막고 중소기업의 경영 악화를 막기 위한 제도다. 그렇다면 실제로 중소기업은 적합업종 제도를 통해 얼마나 많은 발전을 이룩했을까? 정운찬 이사장은 아직도 종종 중소기업 CEO들에게 감사 인사를 받는다며 일화를 들려주었다.

“광주에서 KTX를 타고 오는 길이었어요. 뒤쪽에서 어떤 일행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는데 ‘정운찬 덕분에 살았다’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죠. 그저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저를 봤는지 다가오더니 함부로 이름을 입에 담아 죄송하다는 거예요. 궁금한 마음에 대화 중에 제 이름이 언급된 이유를 물어봤더니 중소기업 적합업종 덕분에 사업이 번창해서 고마운 마음에 그랬다고 하더군요.”

열차에서 “정운찬 덕분에 살았다”고 외쳤던 승객은 광주에서 LED 조명을 생산하는 기업의 CEO였다. 그 업체는 2010년에 매출 30억 원 정도를 기록했는데 대기업에서 LED 분야에 진출하는 바람에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2011년 매출을 20억 원 정도로 예측하던 상황에서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LED 분야를 선정했고 매출이 점점 올랐다. 그 CEO는 2012년에는 30억 원, 2013년에는 40억 원가량의 매출을 달성했다고 한다. 대기업으로 들어갈 돈이 중소기업으로 들어가 발전을 이룩한 사례다.

 

할리우드에서 100년 전에 시작한 초과이익공유제

또 다른 동반성장 정책인 ‘정부 발주 사업의 중소기업 직접 발주’ 또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과거에는 정부 발주가 대기업을 통해 이뤄지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대기업에서 발주를 받으면 수수료만 떼고 그대로 하청을 주는 경우가 많아졌고 많게는 3차, 4차 하청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실제 일은 하청업체가 하는데 정작 돈은 대기업이 벌고 정부는 필요 이상의 예산을 지출해야 하는 불합리한 구조였다. 정부의 직접 발주는 부분적으로 시행되며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월간 <CEO&> 오찬 모임에서 KCC정보통신 이상현 부회장이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KCC는 대기업 1차 밴더로 일하면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IT 쪽 매출이 늘지 않아 수입차 사업을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중소기업 직접 발주제도가 시작 되고 나서 IT 매출이 급증해 수입차 사업 매출보다 높아졌다고 하더라고요. 이보다 확실한 동반성장 우수 사례가 어디 있겠습니까?”

중소기업 적합업종과 정부 발주 중소기업 위주가 어느 정도 실현된 동반성장의 예시라면 초과이익공유제는 처음부터 대기업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아직 실현되지 못한 과업이다. 간단히 말하면 대기업이 목표로 한 금액을 초과하는 이익이 났을 때, 납품업체들과 그 이익을 나누자는 이야기다. 

“초과이익공유제라는 단어만 듣고 제도에 대해 오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종의 좌파 정책이고 자본주의에 어울리는 제도가 아니라는 건데 사실은 미국 할리우드에서 100년 전에 시작한 개념이에요. 영화를 제작할 때 일류 배우와 감독이 필요한데 성공을 확신하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최소한의 비용을 보장해주고 영화가 흥행하면 초과하는 이익금을 나누는 방식입니다. 일반 기업으로 치면 성과급 제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일반 직원들이 아니라 하청업체에 이익을 분배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죠.”

정운찬 이사장이 비유한 러닝 개런티(Running Guarantee) 제도는 현재 우리나라 영화 산업에서도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초과이익공유제의 요지는 대기업 이익을 빼앗아서 중소기업에 주는 것이 아니라 전체 파이를 크게 하되 분배율을 바꾸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비율은 99%를 넘고 전체 노동자 중 중소기업종사자는 80%에 육박한다. 

“더불어 성장하자는 말에는 찬성하면서도 분배하자는 주장에는 발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기업의 초과 이익은 하청업체의 희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아요. 수출단가를 낮춘다는 명목으로 납품가를 후려치면서 희생을 강요하는 식이죠. 초과이익공유를 통해 중소기업에 투자가 된다면 양극화 해소는 물론이고 또 다른 성장의 밑거름으로 작용합니다. 또한, 소비가 늘어나고 경기가 활성화되면서 저성장의 늪을 빠져나갈 힘을 갖출 수 있죠.”

 

스코필드 박사와의 인연

자본주의는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기로에 들어섰다. 세계화의 뿌리가 된 신자유주의는 복지의 축소와 함께 성장만을 추구하게 된다. 1970년대부터 40여 년간 진행된 신자유주의의 여파로 전 세계에서 분배 상황은 악화되었고, 양극화 현상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은 점점 높이 쌓여갔다. 분배에 대한 갈증은 자츰 심화되어 있었다. 세계적으로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 등 각종 사회 갈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정운찬 이사장이 동반성장을 외치기 이전에도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동반성장의 개념은 늘 존재했다. 정운찬 이사장 또한 처음 동반성장 정책을 추진하기 전에 이미 그 개념을 체득했다고 이야기한다.

“초등학교 3학년에 아버지를 여의고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집안 환경이 어려워졌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 바로 일을 하며 돈을 벌려고 결심했었죠. 그런데 중고등학교 등록금은 물론 생활비를 지원하며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게 도와준 은인을 만났습니다. 바로 스코필드 박사님입니다.”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 교수였던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 박사는 영국 태생의 캐나다 의학자로, 국내에서는 ‘푸른 눈의 독립운동가’로 더욱 유명하다. 3·1 운동 당시 사진을 찍어서 세상에 알렸고, 제암리와 수촌리에서의 일제 만행도 사진으로 찍어 기록으로 남겼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58년에는 대한민국 정부의 초청을 받아 국빈 자격으로 한국을 찾았고, 1960년대에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기도 했다. 

“스코필드 박사님은 제가 전공을 정할 때 가장 결정적인 조언을 해준 분입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진행되며 우리나라 경제가 많이 성장하고 전체적인 생활도 나아진 때였지만 양극화가 심했죠. 스코필드 박사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 격차는 당연한 결과지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너무 부족하다고 하셨어요. 양극화를 줄이는 방안을 생각하며 평생을 살라는 박사님의 조언에 경제학 전공을 결심했습니다.”

2016년은 스코필드 박사가 한국 땅을 처음 밟은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정운찬 이사장은 ‘스코필드 박사 내한 100주년 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아 장학문화사업단을 출범하고 특별전시를 개최하는 등 왕성한 기념 활동을 추진했다. 스코필드 박사가 칠순의 나이에 처음 만난 13살의 소년 정운찬이 어느덧 같은 나이가 되어 기념사업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스코필드 박사의 권유로 경제학을 전공한 정운찬 이사장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후, 마이애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과정과 프린스턴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를 졸업하는 등 착실히 학업의 길을 걸었다. 경제학자로서의 학문적 성취도 대단하다. 정운찬 이사장이 1982년에 집필한 <거시경제론>은 2015년에 11판을 펴냈다. 경제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아직도 ‘정운찬 표 교재’로 공부하고 있는 셈이다.

  

모든 것을 바쳐 동반성장을 이루겠다

정운찬 이사장은 월례포럼과 심포지엄 등 1년에 40~50번의 특강을 진행한다. 미래창조연구원과 협력해 ‘정운찬 창조혁신 최고경영자과정’을 개설하는 한편, 본지 CBA 3기 과정에 참석해 강연을 진행하는 등 CEO에 대한 교육에도 부지런한 모습이다. 그가 최고경영자와의 소통에 주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반성장 문화의 조성과 확산을 위해서 CEO에게 아이디어를 주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어디 있겠습니까? 대기업 CEO에게는 마음을 열라고 당부합니다. 중소기업 CEO들에게는 대기업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 당당하게 발언하라고 부탁합니다. 불이익을 당할까 두렵다면 각종 협회를 통해서라도 소신있게 할 말은 하라는 조언이죠.”

정운찬 이사장은 1월 1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우리가 가야할 나라, 동반성장이 답이다>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는 공식 선언에 앞서 대선 출마 동기를 묻는 말에 “역시 동반성장이 답”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른바 빅텐트에 합류하는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추측에 대해서도 확실한 입장을 밝혔다.

“힘을 합치는 게 좋은 선택이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역시 첫 번째 조건은 동반성장입니다. 우리 사회의 동반성장을 추진하고자 하는 뜻이 저와 같다면 함께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말로만 관심을 보이고 진정성이 없다면 차라리 혼자 길을 걷겠습니다.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패를 가르는 세력과는 결코 함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2월 중에 동반성장을 위한 정치결사체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른바 동반성장국가혁신포럼(가칭)이다. 

 “지난 세월 동반성장 전도사 역할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결국 경제도 정치로부터 시작되고 정치에 의해서 마무리된다는 것이죠. 정치 결사체와 함께 좌고우면하지 않고, 당당하게 헤쳐 나가겠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양극화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하지만 정운찬 이사장이 동반성장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젠가 그 꿈에 도달할 것으로 믿는다.

저작권자 © 월간 CEO&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