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이 짧은 기간에 근대화, 산업화를 겪으며 경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대한민국은 이제 고착화된 구조의 부작용을 치르고 있다. 이른바 진입장벽이 높아지면서 경제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총리 재임시절부터 경제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는 대책으로 동반성장을 주창했던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에게 동반성장의 진실과 오해를 들어본다.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하자 반드시 필요해진 것이 창고다. 농사의 결실인 수확물을 저장하는 장소가 필요해진 것이다. 그래서 고대 인류는 땅을 파거나 나무를 얽어 저장고를 만들었고 이를 지키기 위해 강력한 무기를 만들고 무리를 규합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무리의 수장과 그 측근들에게는 창고를 열고 닫는 권리가 생겼고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모든 이에게 개방되지는 않았다. ‘창고를 열고 닫는 권리’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무리의 중심으로 편입되는 까다로운 검증과정을 거치거나 새롭게 창고를 짓는 수밖에 없었다. 인류 역사에서 편가르기와 전쟁이 시작된 이유다. 내 창고와 남의 창고를 비교하며 우월감에 젖거나 자탄에 빠지는 ‘인간의 독특한 감정’이 여기서 비롯됐고 지금도 그 현상은 지속되고 있다.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창조적인 상생

“동반성장은 쉽게 말해 함께 성장하고 합리적으로 나눠 더불어 잘살자는 개념입니다. 일각에서는 여기에 정치적인 해석을 덧붙여 다른 의미로 변질시키곤 하는데, 오해는 벗겨지고 진실은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전국을 누비며 강연을 하느라 시간이 모자라는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은 월간<CEO&>의 지면을 통해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동반성장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가 주창하고 설파하며 확산시키려는 동반성장의 진실은 아직까지 많은 이들에게 막연한 개념으로, 혹은 추정의 의미로 머물고 있다. 지난 정부 시절 일부 정치권 인사들과 몇 몇 경제 전문가들이 소모적인 논쟁으로 팩트(Fact)를 가린 결과다.  정치적인 덧칠을 벗기면 ‘동반성장’은 ‘더불어 성장하자’는 매우 건전하고 긍정적인 슬로건이다. 우리 말 ‘더불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둘 이상의 사람이 함께하다’, ‘무엇과 같이 하다’, 그리고 ‘어떤 일이 동시에 일어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누구와 무슨 일을 같이 할 때 어떤 일이 동시에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돼 의미심장하다. ‘더불어’의 한자 동의어가 ‘동반(同伴)’이다. 뒷단어가 무엇이 오느냐에 따라 뜻과 맥락이 달라질 뿐이다. 

“동반성장은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나눠주자는 것이 아닙니다. 더불어 성장하고 분배를 공정하게 하자는 방법론의 큰 그림이지요. 단순히 경제적 재화를 대상으로만 하는 개념도 아닙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양극화 현상이 매우 심합니다. 대-중소기업간, 업종간, 지역간, 세대간, 그리고 성별에 이르기까지 여러 양극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를 해소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마인드가 동반성장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무한경쟁을 하다보면 기득권 세력과 그렇지 않은 쪽의 결과가 매우 다르게 나타납니다. 분배를 공정하게 하자는 게 아니라 경쟁하는 룰 그 자체를 공정하게 만들자는 게 동반성장의 진정한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표심을 의식한 정부의 포퓰리즘 경제정책과 복지정책을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기업 CEO들의 어록들과 정 이사장의 발언이 얼핏 겹쳐 보인다.

“경쟁의 룰이 공정해야 한다는 의미는 자칫 침해받을 수 있는 약자의 권리를 보장하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거래에서 구두로 계약하거나 결제기일이나 조건, 남품 단가를 발주자 입장에 유리하게 정하면 이를 공정한 경쟁이라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대기업의 수출실적과 영업이익의 그늘 속에는 협력업체들의 아픔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대학생과 초등학생에게 달리기 시합을 시킬 때 같은 선상에서 출발시키면 불공정하다는 얘기라 쉽게 공감이 간다. 미국 같은 자본주의 천국에서도 대학 입학시 소수인종 쿼터제 같은 제도를 통해 약자들의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동반성장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 경제의 밝은 면은 더 밝게, 어두운 면은 덜 어둡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밝은 면부터 짚어볼까요? 우선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가 세계 어디에 내놔도 기죽지 않을 정도로 덩치가 커졌습니다. 인구 5천만 명 이상이면서 국민소득 2만 불을 넘는 국가는 일본,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 그리고 우리나라까지 모두 7개뿐입니다. 그리고 무디스, 스탠다드앤푸어, 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들 모두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해 신용도도 올라갔지요. 일본이나 중국과 같거나 그보다 높게 평가해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유리한 면이 늘어났습니다.”

정 이사장은 이같은 밝은 면을 더 밝게 하려면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경제가 활기를 띠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많은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투자가 필요한데 투자가 안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매스컴에서는 과도한 규제, 경제의 불확실성, 부 축적에 대한 부정정인 여론 등을 요인으로 분석하지만, 저는 대기업은 돈은 있지만 첨단 핵심기술이 부족하여 투자대상이 적고 중소기업은 투자 대상이 있지만 반대로 자금이 부족한 데에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단기적으로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에 자금이 수혈되고 또 첨단 기술의 개발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R&D도 지금까지처럼 단기적인 개발 중심 대신 중기적인 연구 중심으로 무게의 추가 조금 이동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교육 혁신으로 연구의 토대가 마련되어야

정운찬 이사장은 동반성장의 완성을 위해서는 특히 장기적인 관점에서 교육의 혁신이 있어야 국가와 기업의 비전이 밝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입시 위주의 교육정책이 지속되면 연구를 통한 첨단기술 개발은 어렵습니다. 첨단 기술개발은 창의적인 마인드를 젊은이들에게 오랜 기간 심어주어야 가능한 것인데, 체육시간에 자습시키는 지금의 교육 풍토에서는 요원한 일입니다. 우리가 교육을 혁신하려면 영국식의 모델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1693년 출간된 존 로크의 저서 <교육에 관한 몇 가지 생각>에서는 건강과 인성교육에 관한 내용들이 중요하게 취급되고 정작 지식 학습에 관한 내용은 20장에서야 언급되지요. 이러한 마인드가 창의적인 교육을 가능하게 만들고 이렇게 길러진 창의적 인재가 창의적 발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정 이사장은 장기적 관점에서 교육 혁신, 중기적 관점에서 개발 위주에서 연구 중심으로의 기업 역량의 이동이 필요하다면 단기적인 대책으로는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조달이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경제구조가 커지고 복잡해져서 유망업종과 업체를 정부가 직접 선정해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어렵지요. 그래서 정부 발주 사업을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는 방안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초과이익공유제 시행 등을 대안으로 제안하는 것입니다.”

정 이사장의 동반성장 개념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인 초과이익 공유제가 등장했지만 그의 표정은 온화하기 그지 없다. 세간의 오해는 팩트를 가리고 소문으로 부풀려서 만들어진 것일뿐이라는 자신감이다. “초과이익공유제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산업에서 시작됐고 토요타, 크라이슬러, 애플 등 기업에서도 시행한 바 있습니다. 국내 기업들의 경우에도 연말 성과급 등을 통하여 일부 사내이익공유제를 시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를 협력업체로 확대하여 시행하자는 것입니다. 사실상 대기업에서 목표치를 초과하여 발생하는 이익의 적지 않은 부분은 협력업체로부터 납품단가를 낮춰 발생하고 있습니다.” 정운찬 이사장은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의 경우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인식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납품단가 조정의 유혹을 쉽게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가장 손쉬운 길이기도 하지요. 시장에서 절대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술개발에는 막대한 자금과 시간이 소요되지만, 납품단가 조정은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정 이사장에게 듣는 동반성장에 대한 브리핑은 그의 가슴속에 불타오르는 열정과는 별개로 격정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 출신의 튼실한 이론적 무장 덕분인지 에둘러 가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비판할 부분은 거침없이 비판한다는 태도가 바탕에 깔려있다.  “세간에서 저를 과거에는 진보적이니 혹은 정부 입각 후에 보수적으로 변했다느니 이러쿵 저러쿵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스스로 한결같이 중도의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합니다. 어느 한 쪽에 치우쳐서 편을 들거나 반대한 적은 없습니다. 제 소신을 당당하게 밝혔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중도의 고집이란 이런 것인가, 그의 논리에는 바탕이 있었고 확신이 있었다. 학자의 길을 걷다가 입각해 논쟁의 당사자가 된 총리 시절에도, 퇴임 후 사회에 봉사하는 마지막 수단으로 동반성장 전도사로 달리는 지금도 자신의 옳은 길을 위해 비판을 기꺼이 감수한다. 그를 잘 아는 지인들도 정 이사장의 소신에는 객쩍은 충고를 곁들이지 않는다. 그의 순수성을 훼손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학 동창인 이영선 연세대 명예교수(전 한림대총장)는 정 이사장의 철학과 스타일을 잘 이해하는 가까운 벗이다. 

“정 이사장과는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와서 서로에 대해 잘 알지요. 너무 순수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 그 길을 갑니다. 겉으로는 온화해보이지만 마음속에는 굳은 심지를 품고 있지요. 친구지만 저도 이렇다 저렇다 충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소신대로 하라고 격려하지요. 성품이 따뜻하고 진정으로 주변 사람들을 아끼는 휴머니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사의 유훈, 사회에 도움되는 일을 해야 

‘동반성장의 전도사’로 불릴 정도로 자나 깨나 동반성장을 입에 달고 사는 정운찬 이사장의 오늘은 학창 시절에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운명에서 두 명의 특별한 은사를 만났기 때문이다. 한 명은 벽안의 외국인이었고, 또 한 명은 그처럼 경제학자 출신의 관료였다.   어린 시절 숱하게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경기고, 서울대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정 이사장이지만 한 선각자의 도움이 없었다면 학업조차 제대로 마칠 수 없었을지 모른다. 일제 치하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적극 지원한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박사가 그로서는 잊을 수 없는 평생의 은인이다. 스코필드 박사는 세브란스의전에서 교수 및 선교사로 재직 중이던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한국인의 비참한 처지에 동조,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한 인물이다.  

일제에 의해 반강제로 추방된 이후 모교 캐나다 온타리오 수의과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하면서 전 세계에 한국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알리는데 앞장섰고, 퇴임 후 1958년 한국에 돌아와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외래교수로 근무하며, 1970년 서거할 때까지 후학을 가르치고 한국의 고아와 어려운 학생을 돌보는 일에 여생을 바쳤다.  정 이사장도 중·고등학교 시절 학비와 생활비를 그에게 지원받으며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동숭동 방 한 칸에서 여섯 식구가 생활했는데, 그마저도 집세를 못내 이리 저리 이사를 다녔지요. 형편이 좋을 때 수제비 같은 특식을 먹었어요. 굶는 게 일상이라 학교 다닐 때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 제게 스코필드 박사님의 도움은 가뭄의 단비 같았고 지금도 그 은혜를 잊을 수 없습니다.” ‘은혜를 잊을 수 없는’ 정 이사장은 스코필드 박사의 가르침 하나 하나를 가슴에 새기며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다.  “제가 전파하는 동반성장의 정신은 스코필드 박사님의 유훈과 다름없습니다. ‘부익부 빈익빈’은 국가적으로 큰 문제이니 경제학을 공부해 해결방법을 찾으라 하셨지요. 제가 경제학을 전공하고 경제 양극화 현상의 근본적인 대책을 탐구하는 데 전념한 것은 박사님의 당부에서 출발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정운찬 이사장은 매년 스코필드 박사 서거일이면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는 박사의 묘를 찾아 은인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이어가자는 다짐을 한다.  정 이사장의 또 다른 은사는 서울대 경제학과 시절의 은사 조순 전 경제부총리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숱한 경제학자들을 길러내 우리나라 경제학의 대부라 불리는 인물이다.  “조순 선생님은 항상 균형을 강조하셨습니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침이 없는 중도적 판단과 식견을 갖추라는 가르침이었는데, 경제학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이 말은 매우 중요한 지침이었지요.” 그래서 정운찬 이사장은 자신을 늘 중도라 생각했고 행동했으며 진보나 보수의 편을 가르는 행태에 알레르기 반응까지 보인다.  “지금이 도대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이념의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고 현상을 재단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이념의 시대가 지난 지 이미 오래이고 세계 어느 나라도 이데올로기가 국민들을 지배하지 못하지요. 국익이나 실용의 키워드가 지금 시점에서 가장 적당한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총리 시절 편을 가르는 시선 때문에 불편했던 정 이사장은 정부에 입각한 동기부터가 세간의 오해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사람들은 제가 보수적으로 가치관이 바뀌어서 총리로 입각한 줄 압니다. 하지만 저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노선에 적극적으로 동조해서 총리를 맡은 게 아니에요. 당시 대통령께서 여러 번 청하는데 거절하기 미안한 마음이 든 것도 있지만, 당시 정부 경제정책이 너무 친 대기업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이를 바로잡아 보겠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또 경색되고 있던 대북문제에도 기여할 바 있는 것 같아서 참여했지요. 입각한 이후 고생도 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소신대로 부자감세도 막았고 대기업 일변도의 정책도 유화시켰고, 취업시 학력여건 완화에도 노력했습니다.”  정 이사장은 다양성을 중시하는 리더다. 다양성의 토양 위에서 많은 가능성이 싹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서울대 총장 시절에도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하여 경기고 출신 교수들을 보직교수로 덜 뽑기까지 했다고.

“당시 서울대 교수 5분의 일이 경기고 출신이었는데, 보직교수 30명 중 단 3명만이 경기고 출신이었지요. 다양한 목소리를 행정에 반영해야 치우치지 않는다는 지론은 지금도 그때나 다름없습니다. 여성 교수를 처장에 임명한 것도 제가 처음이 아닌가 싶어요. 지역균형선발제도 제가 총장 시절 도입했습니다. 고착화되고 정형화되지 않으려면 서울대가 서울대를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강남 출신 서울대 졸업생들만이 득실댈 것 같았거든요.”  갈수록 전통에 빛나는 창고 소유주와 창고지기가 늘어가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다양한 가능성의 개방과 역동적인 진화를 꿈꾸는 정운찬 이사장 같은 이는 그리 많지 않다.   

Interview 손홍락 발행인 | Editor 이종진 편집장 | Photographer 김수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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