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정장에 갖춰 신는 구두는 품격을 위해 다소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패션 아이템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점점 구두 선택 기준에서 기능성이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우리나라에서도 편안한 구두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 바이네르 김원길 대표는 기능인 출신으로 국내 컴포터블 슈즈 (Comfortable Shoes) 시장의 초석을 닦고 트렌드를 선도해온 장본인이다. 바이네르는 국내 컴포트화 1위 브랜드인 동시에 각종 사회 공헌 활동과 기업문화로 유명한 브랜드다. 경기 고양시에 위치한 바이네르 본사에서 김원길 대표에게 브랜드 성공 스토리와 경영 철학에 대해 들었다. Interview 손홍락   Editor 박인혁   Photographer 권상훈 


“저는 바이네르의 오너인 동시에 기능인 출신 CEO입니다. 다양한 현장 경험 덕분에 제품개발부터 고객관리까지 모든 것을 직접 지휘할 수 있죠. 다른 브랜드가 바이네르의 품질 경쟁력을 따라올 수 없는 이유입니다.”
구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브랜드 ‘바이네르’에 앞서 ‘김원길’이라는 이름이 더욱 익숙하게 떠오를 것이다. 김원길 대표는 중학교 졸업 후 충남 당진에서 상경하여 영등포의 작은 구둣가게에서 일하며 구두 기술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견습공인 만큼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성실성을 기반으로 참스제화, 케리부룩 등 당시 유명한 회사를 거치며 실력을 점차 인정받았다. 김원길 대표의 행보는 독특하다. 여화(女靴) 기술자에서 남화(男靴) 기술자로, 그리고 생산관리직으로 직무를 바꾸면서 그는 구두 제작과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도와 전문성을 높여갔다. 꼼꼼한 품질관리로 회사 내에서 인정받았으며, 전국기능경기대회 동메달을 수상하는 등 대외적으로도 검증된 실력자였다. 구두를 만들고 판매 관리를 하면서도 항상 ‘어떤 구두가 좋은 구두일까?’라는 질문이 김 대표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대답은 언제나 ‘편안함’이라는 단어로 귀결됐다. 김원길 대표는 1994년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구두’를 모토로 안토니오 제화(2008년 ‘안토니’로 변경, 이하 안토니)를 설립했다. 안토니 구두는 발 모양을 형태로 한 미드솔(Midsole)을 적용해 발의 압력을 분산시켜 피로감을 덜어준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김원길 대표는 구두의 활동성에 비중을 두면서도 모던하고 세련된 스타일과 퀄리티를 포기하지 않았다. 2011년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바이네르를 인수하고 2015년에는 사명을 바이네르로 바꾸는 등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지만, 김원길 대표에게 편안한 구두를 만들겠다는 신념만큼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였다.

 

창업주 바이네르와의 소중한 인연
사람들이 편안한 구두를 원한다는 김원길 대표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가 만든 구두를 한 번 신어본 사람은 그를 다시 찾곤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소비자들의 구매 결정에서 브랜드 네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컸다. 편안하고 완성도 높은 구두를 빛내줄 브랜드가 필요했다.
“구두의 품질에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고로 편안한 구두를 만들어내더라도 안토니의 브랜드 파워가 약했기에 판매량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기는 쉽지 않았어요. 구두의 메카 밀라노에서 열리는 구두박람회를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브랜드 콘셉트가 비슷하고 건실하면서도 국내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를 찾아냈죠. 바이네르와의 첫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바이네르(Vainer)는 1961년 이탈리아에서 출시된 구두 브랜드로, 1990년대까지 세계에서 구두를 가장 많이 만드는 브랜드였다. 1994년 당시 바이네르의 하루 생산량이 1만 2천 켤레였을 정도이니 한국의 작은 회사에서 판매권 계약을 요구했을 때 시큰둥한 반응이 나올 법도 했다. 김원길 대표는 우선 이탈리아 바이네르 본사로부터 3,000켤레의 구두를 한국으로 들여와 팔겠다고 약속했다. 3천 켤레면 당시 돈으로도 1억 5천만 원어치였다. 부담스러운 물량이었지만 바이네르 라이선스를 따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몇 번의 거래를 성사한 후, 한국에서 자체 생산한 제품에 바이네르 브랜드를 달고 판매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그동안 꾸준히 안토니 구두 품질을 향상시켜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김원길 대표가 지금의 구두 신화를 완성하기까지 바이네르 브랜드가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창업주인 바이네르 데 피에트리(Vainer De Pietri)에게 배운 가치가 더욱 값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창업주 바이네르는 항상 즐겁고 재밌게 사는 분이셨죠. 그분의 경영철학이 저에게 끼친 긍정적인 영향이 많습니다. 저희를 아껴주는 고객들에 대해 각별히 생각하고 받은 것을 고객들에게 돌려준다는 마음가짐을 항상 잊지 않고 있습니다.”


로열티 주는 회사에서 받는 회사로 전환
바이네르 데 피에트리는 1994년 김원길 대표와의 라이선스 체결 당시 패기와 열정을 높이 평가해 로열티를 감면해주었다. 라이선스 만기일이 다가오면 일부 한국인 사업가들이 바이네르 본사를 찾아 ‘김원길 대표와 같은 조건으로 계약해달라’고 막무가내 고집을 부릴 정도로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김원길 대표는 바이네르 브랜드의 외형을 키우는 한편, 토종 브랜드 안토니도 함께 성장시켜왔다. 특히, 2002년 바이네르 데 피에트리가 세상을 떠나고 전문경영인이 들어오면서 새롭게 책정된 로열티 및 의무수입량은 김원길 대표에게 위기로 다가왔다. 과도한 로열티 때문에 구두가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문제가 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시기적으로는 이탈리아 바이네르 본사 측이 유럽발 금융 위기의 여파로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김원길 대표는 2011년 유럽과 아프리카를 제외한 모든 대륙의 바이네르 상표권을 인수했다.
“유럽의 금융 위기로 인한 이탈리아 바이네르 본사의 재정 상황이 어쩌면 저에게는 기회가 되었던 셈입니다. 바이네르 상표권을 인수하면서 로열티를 주는 회사에서 받는 회사로 거듭나게 된 것이죠.”
바이네르는 국내 시장에서의 성공을 경험 삼아 세계무대로 진출하기 위해 명품구두기업 15년 계획을 수립했다. 앞으로 해외 시장에서도 바이네르 구두의 편안함과 높은 품질이 인정받으며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거듭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원길 대표는 한 달에 한두 번씩, VIP 고객들의 생일파티를 직접 챙긴다. 그밖에도 2007년과 2008년에는 바이네르 고객 및 독거노인, 지역주민 등 1,400명이 넘는 사람을 초대해서 바이네르 사랑나눔 효 콘서트를 펼쳤고, 2009년부터는 지역 주민 및 독거노인 1,000여 명을 초대해서 매년 효도잔치를 진행해오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광주와 부산, 서울, 고양 등에서 전국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처럼 바이네르가 현재의 500억 원 매출을 달성하기까지는 품질만큼이나 제품 외적인 부분도 한몫했다. 지금의  바이네르의 명성을 만들어 준 고객을 위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고객에게 받은 사랑, 그대로 돌려주고파
“지금의 바이네르가 존재하는 것은 고객 덕분입니다. 마케팅 차원에서 제가 문자를 보낼 수 있는 고객이 약 50만 명 정도인데요. 바이네르를 지켜주는 것이 고객들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만큼, 받은 사랑을 그대로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고객을 위한 행사뿐만이 아니다. 김원길 대표는 바이네르 장학회를 설립해서 장학금을 지원하는 활동을 계속해왔다. 2011년부터 경북대학교와 10년간 일정 금액의 장학금 지급을 체결했다. 그 밖에도 바이네르 장학회는 여러 초·중·고·대학교 학생들에게 매년 4천만 원 이상 장학금을 주고 있다. 학업 성적보다도 인성과 봉사 정신을 기반으로 장학금 대상을 선정하는 것도 바이네르 장학회의 특징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싶지만 열악한 환경에 있는 학생들이 오롯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지금의 바이네르를 있게 해준 지역사회에 보답하기 위한 김원길 대표의 신념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아들 같은 장병들을 위한 후원과 강연
“아들이 군 복무 중일때 제대 후 살아갈 날을 생각하며 70년 인생 설계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군 생활을 좀 더 알차고 지루하지 않게 보내라는 의도였지요.”
군대에서 시간이 너무 안 간다고 투덜거리던 아들에게 김원길 대표는 앞으로 남은 날들의 인생 설계를 과제로 주었다. 군 생활 동안 70년 동안의 계획을 다섯 번 설계해보라는 과제. 아들은 제대 후, ‘남은 삶에 대한 계획을 세우느라 군 생활이 지루할 틈이 없었다’며 아버지의 혜안에 감사를 표했다. 김원길 대표는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사회 공헌 중에서도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활동에 많은 애착을 가진다. 군인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기 시작한 계기는 다름 아닌 아들의 입대였다. 각종 체육용품을 지원하고 반기(半期)별로 3명씩 우수사병을 선출해 유럽여행을 보내주는 등 2016년 현재까지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아들의 입대를 계기로 군부대에 대폭적인 후원을 해왔던 김원길 대표는 아들이 제대한 후에도 지원과 강연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군 생활을 시작하는 신병교육대에 방문해 꾸준히 강연을 진행해왔다. 몇몇 부대에는 김원길 대표의 강연이 매 기수 고정 프로그램으로 있을 정도다.
“이제는 군인들이 모두 아들처럼 느껴집니다. 갓 입대한 신병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이 바로 선배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구두를 만들던 시절 팔리지 않는 구두를 선배들에게 한 켤레씩 선물했어요. 그러면 저한테 어떤 부분이 좋고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 한 마디씩 해주더군요. 결과적으로는 구두의 품질이 좋아지고, 선배들이 입소문을 좋게 내줘서 잘 팔리게 되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김원길 대표는 강연을 통해 군대와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전달한다. 후배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거나 시간이 날 때마다 인생을 되돌아보고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50명이 강연을 들으면 30명은 팬으로 만든다고 자신하는 김원길 대표. 그에게 젊은 청춘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커다란 기쁨이자 보람으로 다가온다.



한국인 CEO 최초로 베이징대학교 대강당에 서다
김원길 대표는 최근 중국 베이징 대학교에서도 강연을 진행했다. 재학생 및 연구원을 대상으로 한 원포인트 강의로 지금껏 베이징대학교 대강당에 선 한국 CEO는 처음이었는데, 그 열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서는 자리에서 강연했으니 영광일 따름입니다. 곧 중국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는데 중국 소비자들의 반응을 알아보고도 싶었어요. 지금까지의 도전과 시련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했는데 생각보다 호응이 좋아서 놀랐습니다. 관계자가 다음에는 칭화대학교에서 강연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할 정도였으니까요.”
한편, 활발한 강연 활동을 하다 보니 뜻하지 않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모(某) 대학교에서 창업 관련 강연이 끝난 후, 한 학생이 문제를 제기했던 것. 김 대표는 부적절한 발언임을 인정하며, 앞으로의 소통과 변화를 결심했다.
“남성들은 무심히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라도 여성들은 충분히 문제라고 받아들일 만한 발언이었습니다. 제가 미처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간과했어요. 그리고 제 성공스토리를 강조하다 보니 요즘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들의 고통을 상대적으로 가볍게 인식하며 그들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소통의 자세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성공을 향해 달려오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가지게 된 아집을 깨고 변해야겠다는 인식도 하게 됐습니다.”

 

KPGA 후원과 프로골프단 창단
날카로운 시장 분석과 과감한 도전 정신으로 컴포터블 슈즈 1위 기업으로 거듭난 바이네르. 오늘에 이르는 동안 오직 일에만 몰두한 나머지 다른 즐거움을 모르고 지냈을성 싶지만, 김원길 대표는 자신은 언제나 즐겁고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열 여섯살부터 구두를 만들었지만 사업을 진행하면서 힘든 과정이 많았죠. 자금난에 휘말리면서 자동차를 몰고 그대로 한강에 돌진하려했던 적도 있어요. 하지만 요즘은 나쁜 생각을 했던 그 한강에서 오히려 수상스키를 즐깁니다. 자칫했으면 오늘날 바이네르가 탄생할 수 없었겠지요.”
실제로 김원길 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레포츠 마니아다. 여름이면 수상스키를 타고 겨울이면 스노보드와 스키를 즐긴다. 본인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수상스키나 스노보드를 가르치는 것 또한 큰 낙이라고.
이 밖에도 계절별 신선한 원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해서 사람들과 친교의 시간을 나누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도 김원길 대표의 취미다. 그는 직접 작사한 노래를 음반으로 취입하기도 했다.
“노래 제목이 ‘힘들어도 괜찮아’입니다. 힘든 건 모두 추억이고, 시련은 모두 빛나는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죠. 제 경험을 토대로 만든 노래이기에 애착이 많아요. 흥을 돋워야 하는 자리에서 직접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골프 또한 김원길 대표가 좋아하는 취미 활동으로 둘째 아들인 김우현 프로 골퍼의 영향이 크다. 바이네르는 2014년부터 3년째 아마추어 골프대회를 열고, KPGA 프로 골프대회를 2번이나 개최했다. 이 밖에도 바이네르는 2015년 KPGA와 KLPGA에서 활동하는 프로골퍼 5명과 계약하며 골프단을 창단했다.
“언젠가 아들에게 우승하면 대회를 하나 만들어주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우승을 하더라고요. 저희 매출 규모로 보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아들과의 약속이기에 실행에 옮겼습니다. 하지만 연속 개최는 무리가 따르더라고요. 앞으로 매출 1천억 원이 넘으면 다시 대회를 개최할 생각입니다.”

바이네르의 금기어, 불경기
김원길 대표는 뒤늦게 창업을 시작한 후배 CEO들에게 늘 ‘일확천금을 노려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한 방에 크면 한 방에 쓰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업을 과일나무에 비유하자면 묘목이 거목이 되어 열매를 맺기까지는 뿌리를 단단히 내리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죠. 기존 고객을 보호하면서 차근차근 키워나가다 보면 언젠가 거목이 되어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내실을 키워온 바이네르에는 금기어(禁忌語)가 있다. 다름 아닌 ‘불경기’다. 구두가 팔리지 않는다고 불경기라는 핑계를 대기보다는 연구개발과 품질 향상 등 자체적인 노력으로 고객들이 구매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취지다.
“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불경기가 아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불경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회사에서는 불경기를 금기어로 정했습니다. 열심히 구두를 연구하고 개발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제품을 만들면 불경기가 멀리 달아나지 않을까요?”
구두 명장(名匠)에서 로열티를 받는 명품 브랜드 바이네르 CEO로 거듭난 김원길 대표. 불타는 열정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지닌 그에게 하루 24시간은 부족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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