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의 시계를 온라인으로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못했던 시절, 한 청년이 더욱 싸게 구매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당시 20대였던 서대규 대표는 현재 만 32세의 나이로 11년차 국내 최대 규모 시계 쇼핑몰 CEO가 되었다.Editor 박인혁   Photographer 한희    

삶의 방향을 바꾸는 중요한 일들은 때로 매우 사소한 계기에서부터 시작된다. 트랜드메카 서대규 대표는 군 제대 후, 복학해서 차고 다닐 시계를 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알아보았다. 당시에는 시계를 알아보려면 백화점이나 전문 매장을 방문해야 했지만, 복학생이 가진 예산으로는 마음에 드는 브랜드를 구입하기 턱없이 부족했다.
“당시 사고 싶었던 시계 브랜드의 해외 본사에 지인이 있었어요. 해외에서 가격을 비교해보니 국내 구입 가격이랑 많은 차이가 나더군요. 제 시계를 사고 나서 주변에 지인들 구매를 대신해주다 보니 저처럼 시계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죠.”
지금처럼 해외 직구나 시계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지인들 시계를 알음알음 구매해주던 서대규 대표는 차츰 모르는 사람들과의 공동구매를 주선하게 되었고,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쇼타임’이라는 이름의 온라인 동호회를 개설했다. 당시 유행했던 싸이월드 클럽을 기반으로 하는 동호회였는데, 싸이월드의 대대적인 홍보 지원을 받으며 1년 만에 약 4만 명의 회원을 확보하며 시계 부문에서 손꼽는 커뮤니티로 거듭났다.

시계를 구입하는 새로운 방법
커뮤니티 ‘쇼타임’을 거점으로 시계에 많은 관심이 있지만 싸게 사는 방법을 몰랐던 시계 마니아들이 온라인에 집결했다. 그렇게 시작한 서대규 대표의 사업은, 간이사업자를 내고 시계를 병행 수입하던 시절부터 올해까지 11년이 지났다. 2011년에 쇼핑몰 ‘타임메카’로 법인 전환 이후에는 첫해 매출이 8억 원이었고, 이듬해에는 28억 원 매출을 달성했다.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온라인 시계 쇼핑몰로 거듭난 트랜드메카는 2017년 기준 부가세 포함 500억 원 매출을 올렸다.
트랜드메카가 법인 전환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몸집을 키워나가던 2011년은 국내 전자상거래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던 시절이었다. 요즘은 침대 매트리스나 대형 전자제품도 해외에서 직접 구매하고 사소한 생활필수품도 온라인으로 주문해 현관 앞까지 배달받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고가의 시계를 온라인으로 구매한다는 발상 자체가 파격적이었다. 트랜드메카가 시계 병행수입 문화를 정착시키며 매년 급격한 매출 상승과 함께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시계라는 품목 특성상 정품 여부와 애프터서비스가 가장 중요합니다. 확실한 정품 시계를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면서 사후관리까지 철저하니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어요. 늘 백화점에서 시계를 구입하셨던 고객들도 타임메카에서 한 번 구입하면 만족하고 재구매를 하시더라고요. 그만큼 기존 고객들의 재구매율이 높고 입소문이 퍼지며 신규 고객도 늘어나고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초반에는 진품 여부에 대한 고객들의 의구심도 높았다. 항간에는 가품을 판다는 루머도 돌았다. 하지만 서대규 대표는 루머에 대해 애써 해명하지 않고 묵묵히 일을 진행했다.
“저희가 가품이나 문제 있는 제품을 판매하는 게 아니니까 언젠간 알아주시겠지 생각했어요. 초기에는 오해가 있었는지 조사도 받곤 했지만 당연히 모두 무혐의였죠. 묵묵히 노력하다 보니 어느 순간 고객들에게 진심이 통했다고 생각합니다.”
시계는 고가 제품이 많고 고장에 민감한 제품이기에 고객들에게 사후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트랜드메카의 애프터서비스 시스템은 유통 구조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특정 브랜드는 본사와 협약을 통해 본사에서 직접 수리하고, 병행수입 제품은 트랜드메카의 자체 AS센터나 협력업체에서 수리를 진행한다. 트랜드메카 AS센터는 한국시계산업협동조합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관세청 공식 AS센터로 지정되었다.

기본을 지키는 회사
창업 원년부터 성장만을 거듭해온 트랜드메카지만 어려웠던 시기는 분명 있었다. 서대규 대표는 창업 초기 자본금이 어디에 썼는지도 모르게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사무실 보증금에 천만 원, 집기 구입에 천만 원을 쓰고 직원들 월급 두 달 지급하니 타임메카를 정식 오픈하기도 전에 자본금으로 준비했던 6천만 원이 사라졌죠. 어린 나이에 사업도 처음이라 투자 받는 방법을 모르고 지인들에게 조금씩 돈을 빌렸어요.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트랜드메카도 아마 없었을 겁니다.”
서대규 대표의 지인들은 흔쾌히 쌈짓돈을 빌려주었다. 투자 목적도 아니고 지분을 요구하지도 않은 순수한 도움이었다. 서 대표는 당시 지인들에게 빌렸던 자금을 은행 이자 이상으로 계산해 돌려주었지만, 아직도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트랜드메카는 평균연령이 28세 정도로, 작년까지만 해도 일절 경력직을 뽑지 않았다. 다른 회사에서 업무 방식이 고착화된 직원을 재교육하는 것보다는 트랜드메카의 방식으로 제대로 가르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직원들 평균 연령이 낮아서 최신 이슈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등 장점이 많습니다. 그런데 연령대가 높은 다른 회사 관계자와 미팅할 때 대외적인 부분에서 다소 아쉬운 부분도 생기더라고요. 최근에는 시계 수리의 장인을 모셔오는 등 경력직과 신입 직원들의 조화를 이루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젊은 대표와 젊은 직원들이 함께 일하며 만드는 시너지 효과는 굉장하다. 작년까지 3개월에 한 번씩 전 직원을 면담했다는 서 대표는 사원들에게 회사의 비전을 설명하고 그들이 회사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가감 없이 듣곤 한다. 신입직원이 입사 후에 자신이 하는 일과 맞지 않는다고 느끼면, 면담을 통해 6개 사업부 내 원하는 직무로 옮길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한다. 무엇보다도 서 대표는 직원들을 위해서 기본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야근 없이 정시퇴근을 원칙으로 하며, 창립 이래 주말 출근이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은 트랜드메카의 큰 자랑거리다. ‘이메일 30분 답변제’라는 이례적인 시스템도 고객 만족과 직원 만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구축되었다. 트랜드메카에는 고객이 상담할 수 있는 전화번호가 없고, 모든 상담을 이메일로 답변한다. 단, 영업시간 내에 고객이 메일을 보내면 무조건 30분 이내에 답변하는 것이 원칙이다.
“누구도 물건을 사고 만족스러울 때 콜센터에 전화를 하지 않잖아요. 콜센터에 전화를 거는 이유는 무언가 불만족스럽기 때문이죠. 따라서 고객과 직원이 모두 감정을 상하지 않고 차분히 대응할 수 있는 이메일 시스템으로 구조를 바꿨습니다.”
성격이 급한 고객들은 ‘30분 답변제’에 불만을 가지기도 한다. 특히, 추석이나 설날 등 명절 연휴가 지난 다음 영업일에는 문의가 폭주해서 30분 이내 답변제가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아직 30분 답변제를 고수하는 이유는 전담 직원들이 불필요한 감정노동을 조금이라도 피함으로써 더욱 고객들의 불만을 원활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온라인 시계 구입의 성지로 거듭나다
서대규 대표는 법인 설립 당시 기업 이름으로 ‘성지’를 뜻하는 ‘메카’를 원했지만, 워낙 흔한 단어이기에 다른 기업에 선점된 상태였다. 결국, 트렌드의 성지로 거듭나자는 의미에서 ‘트랜드 메카’로 이름을 정하고 그럴 듯한 슬로건도 만들었다. ‘상상하는 게 트랜드다’ 트랜드메카 본사 사무실에 크게 붙어있는 이 문장은 서 대표가 처음 회사를 설립할 때 만든 회사 자체 슬로건이다.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유행을 따라가지 말고 우리가 트렌드를 만들자는 의미를 담아 기업명과 슬로건을 만들었습니다.”
언어의 힘은 대단하다. 서대규 대표가 이끄는 트랜드메카는 상상하는 대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트랜드의 성지’로 거듭났다. 2013년 소셜커머스 업체들이 국내에서 상품 판매를 준비하면서 트랜드메카에 제휴를 제안했다. 그 결과, 소셜커머스에서 판매되는 시계 매출 상위권을 모두 트랜드메카가 차지하면서 판매 루트가 다각화되었다. 백화점 몰과 종합몰, 오픈마켓과 편집샵 등에서도 러브콜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트랜드메카는 30곳 정도의 판매 루트를 통해 시계를 판매하는 기업으로 거듭났다.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트랜드메카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습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작은 시계 매장, 신발 매장, 의류 매장 등에서도 연락이 오면서 B2B 사업을 시작했던 계기가 되었죠.”
오픈마켓과 소셜커머스 등을 총괄하는 온라인사업부에서부터 B2B 도매까지 사업 분야가 다양해졌지만, 하루 10만 명 페이지뷰를 기록하는 자사몰 타임메카의 매출 비중 또한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가장 잘 아는 분야에서 안정적으로 확장을 거듭해온 트랜드메카는 B2B 사업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면서 2015년에 브랜드사업부를 신설했다.
“트랜드메카만의 독점 브랜드를 들여오자는 생각이었죠. 바젤 페어를 비롯해 전 세계 시계 박람회를 다니며 신선한 브랜드를 찾아 나섰어요. 에테르노와 오바쿠 등의 브랜드를 발굴해서 함께 성장해나가는 전략을 취했죠.”
이탈리아 브랜드 ‘에테르노’와 덴마크 브랜드 ‘오바쿠’ 등 우리나라에서 생소한 브랜드를 국내 독점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서 대표는 트랜드메카 광고사업부도 신설했다. 회사에서 지출하는 광고비용을 줄이기 위해 자체적으로 만든 광고영업부에서는 광고 콘텐츠를 만들거나 페이스북 광고를 집행하는 등 일반적인 대행사에서 취급하는 광고는 모두 처리할 수 있다. 서대규 대표는 올해 프로덕션 사업부를 만들고 온라인 시계 매거진을 발행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이처럼 트랜드메카의 사업 다각화는 단순히 품목을 늘려나가는 횡적 성장에 그치지 않는다. 시계라는 아이템에 집중하면서도 유통 사업부를 다각화하고 광고와 프로덕션 등 관련 분야를 확장하는 서 대표의 경영 방식은 트랜드메카라는 나무가 더욱 견고하게 업계에 뿌리내릴 수 있게 만들었다.
최근, 서 대표는 특유의 기업관과 창의력을 기반으로 시계산업 발전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2018 모범중소기업인’ 표창장을 수상했다. 젊지만 오랜 경력을 쌓아온 베테랑 CEO가 만들어나가는 젊은 기업 트랜드메카의 앞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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