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의 분야에서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만, 막상 새로운 아이디어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1인 기업 이장우브랜드마케팅그룹을 설립해 브랜드 자문과 강연을 활발하게 지속해온 아이디어 닥터 이장우 박사는 조직이 유연하게 변화하고 개인이 창의력을 얻기 위해서는 ‘몰랑몰랑’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Editor 박인혁   Photographer 권상훈   장소 빈앤클랑 

아이디어 닥터, 트렌드 몬스터, 다중언어자, 강연 여행가까지. 이장우브랜드마케팅그룹 이장우 회장을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는 한두 개가 아니다. 별명이 다양한 만큼 학문적 성과도 남다르다. 이장우 박사는 학부 시절 영문학을 전공하고 석사 시절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박사 과정은 경영학, 공연예술학, 디자인학에 모두 도전했다. 학문에 대한 편식 없이 다양한 영역에서 폭넓은 도전을 시도해온 것이다. 그중에서도 이장우 박사는 학부 전공이었던 영문학에 대해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영문학은 문학이고 언어이며 인문학입니다. 인문학이나 문학에는 정답이 없죠. 현재 직업과 관계된 학문은 경영학과 마케팅이지만 정답이 없는 세상에 살다 보니 인문학적인 사고가 가장 큰 도움이 되더군요.”

문과라서 황송합니다
학부 시절 전공한 영문학은 이장우 박사가 여러 분야에 도전하고 지식 간에 융합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그는 만약 처음부터 경영학을 전공했다면 그 후에 여러 분야에 도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문학을 깊게 공부했기 때문에 다른 학문에 심취했다가도 또 다른 학문에 도전할 수 있었고, 다양한 카테고리가 확장하며 서로 연계되었다는 이야기다.
“세상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하지만 그 연결고리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 또한 너무 일찍 여러 우물을 팠다면 죽도 밥도 안 되었을 거예요. 처음에 인문학으로 주춧돌을 단단히 쌓아두었기 때문에 그 후에 여러 학문이 연계되고 확장되었죠. 지식이 깊어지며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었던 건 모두 인문학의 힘입니다. 한마디로 말할게요. 문과라서 황송합니다.”
문과 계열 전공자들이 취직할 곳이 줄어들고, 실제로도 취업률이 낮아지면서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의미의 ‘문송합니다’라는 씁쓸한 표현이 유행한다. 하지만 이장우 박사는 ‘문과라서 황송하다’는 해석으로 문과와 인문학과 인문학 전공자들을 적극 독려한다. 그가 아이디어닥터(Idea Doctor)라는 퍼스널브랜드를 가지고 통찰력과 특별한 안목으로 브랜드마케터로서의 깊이를 드러낼 수 있는 근원도 다름 아닌 인문학의 황송한 힘이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가 내가 사는 세상의 한계’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 반론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이장우 박사는 깊이 공감한다. 이장우 박사는 전공인 영어와 중국어와 일본어, 불어, 이태리어, 독일어, 힌두어 등 정식으로 배운 언어만 10가지에 달한다. 최근에는 스웨덴 여행을 앞두고 스웨덴어도 공부하고 있다. 정식으로 스무 개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이장우 박사의 인생 목표 중 하나다.
“처음에는 다중언어자가 아니었는데 졸업하고 회사에 근무하면서 계속 언어를 배웠어요. 고등학교 때 배운 독일어도 까먹지 않고 계속 공부했고 새로운 언어를 학습했죠.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이유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더욱 넓게 사고의 폭을 확장하기 위해서입니다. 단언컨대 아무리 자주 방문했던 여행지라도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가면 여행의 즐거움이 백 배 정도 높아집니다.”

브랜드 정체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장우 박사는 한국3M에서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39세에 이메이션코리아 CEO를 맡았다. 이메이션코리아는 3M에서 분사한 스토리지(Storage) 전문 업체로, 당시 디스켓과 CD 국내 점유율이 80%에 달했다. 이후 이장우 박사는 인문학을 기반으로 한 학문적 깊이와 트렌드에 대한 통찰력으로 1인 기업 ‘이장우브랜드마케팅그룹’을 설립해 지금까지 기업 자문과 강연을 지속하고 있다.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만큼 브랜딩에 대한 신념 또한 확고하다. 이장우 박사가 말하는 브랜드 성공 제1원칙은 무엇일까? 바로 브랜드의 기준이 되는 교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담당자 성향에 따라 브랜드가 변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교본은 일종의 매뉴얼입니다. 브랜드 교본이 없으면 모든 관계자가 자기 마음대로 브랜드를 바꿔버려요. 들쭉날쭉하죠. 하지만 기업이 지구라면 브랜드는 태양입니다. 태양을 마음대로 휘저으면 지구가 멸망하듯이 브랜드를 멋대로 건드려 바꿔버리면 기업이 망합니다. 브랜드를 바꾸고 싶다면 교본을 고치면 됩니다. 교본을 고치기 전에 브랜드에 변화를 주는 일은 기업 회장에게도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이장우 박사의 브랜딩 철학은 확고하다. 이장우 박사는 브랜드 마케팅은 너무 열심히 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는 분야라고 소개한다. 브랜드 정체성의 확립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고 오랜 시간 길게 두고 보아야하는데, 담당자들이 소비자 반응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주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지속적인 단타로 주자를 쌓아야 하는 시점에 홈런을 노려 배트를 길게 잡는 행위다.
“브랜드는 눈사람 만드는 일과 마찬가지로 생각하면 됩니다. 큰 변화 없이 꾸준한 스노우볼링이 필요하죠. 눈 폭탄 한 방으로 절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애사심 많은 사람이 브랜드를 맡으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농담도 뼈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기업명을 죽여야 브랜드가 산다
브랜드 마케팅을 세일즈와 동일하게 보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이장우 박사는 에어비앤비의 독특한 프로모션을 성공적인 브랜딩 사례로 들었다. 에어비앤비는 시카고 미술관 인근에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아를의 침실’을 재현해서 빌려주거나 상어가 있는 아쿠아리움에서의 숙박을 대여 상품으로 내놓는다. 고객들은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통해 에어비앤비의 정체성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공고히 한다.
반면, 국내에서는 기업들이 마케팅 전략으로 단순히 가격을 낮추는 식의 판촉 활동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 비수기를 정해 판매되는 만 원짜리 비행기 티켓은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될 만큼 순간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지만, 결코 소비자들의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 국내 기업이 브랜딩 작업에 있어 조급하다는 점은 브랜드 네이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기업에서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할 때 브랜드 이름 앞에 기업명을 넣는 것을 좋아합니다. 기업 자체의 인지도가 높으니까 이용하려는 거죠. 하지만 저는 그때마다 결사적으로 반대합니다. 앞에 기업명을 붙일 거면 브랜드를 만들 이유가 없다고 말하죠. 아무도 애플 아이폰이라고 굳이 붙여 말하지 않잖아요. 브랜드를 진정 살리기 위해서는 기업 이름을 오히려 숨겨야 합니다. 브랜드가 뜨면 기업 이미지는 저절로 높아지니까요.”

샘솟는 아이디어의 비밀, 몰랑몰랑
흔히 브랜드라는 단어를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이나 고가의 제품에 한정해서 생각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찾아보면 브랜드는 수없이 많다. 점심을 먹기 위해 찾아간 설렁탕집이나 책상 위에 놓인 메모지 등 온 세상이 브랜드로 이루어져 있다. 이장우 박사는 브랜드를 공부하는 방법보다도 몰랑몰랑한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가볍고 귀여운 어감의 ‘몰랑몰랑’은 말 그대로 젤리와 같이 부드럽고 유연한 느낌을 주는 의태어다. 그리고 그동안 디자인과 브랜드 마케팅, 커피 등 다양한 분야의 저서를 출간해온 이장우 박사의 신간 제목이기도 하다.
“창의력 도서를 본다고 무조건 창의력이 샘솟나요? 아니죠. 오히려 다른 분야의 도서를 읽었을 때 창의적인 사고가 확장될 수 있습니다. 창의력 도서도 읽을 필요가 있지만, 시집이나 소설, 철학책 등 다양한 책을 읽었을 때 사고가 확장되고 몰랑몰랑해질 수 있죠.”
류시화 시인과 최영미 시인, 소설가 파울루 코엘류 등은 이장우 박사가 사랑하는 문학가인 동시에 창의력의 원천인 뮤즈다. 영감을 얻기 위한 또 다른 방법으로 이장우 박사는 ‘몰랑몰랑’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몰랑몰랑’은 아이디어닥터라는 퍼스널 브랜드 아래 항상 새로운 생각을 찾아다닌 이장우 박사가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를 창안할 수 있는 비법을 한 단어로 축약한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정답에 충실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사회나 조직이 원하는 목표에 맞추어 그저 열심히 일하는 삶이었죠. 새로운 발상이 떠올라도 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대세를 따르고 때로는 아니다 싶은 일에도 침묵으로 일관해왔죠. 그런 조직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리 없습니다. 아이디어는 부드러운 토양 위에서 솟아나는 새싹과 같아요. 우리는 경직된 분위와 굳은 머리를 몰랑몰랑하게 바꿔야 합니다.”
조직이나 단체에서 의사를 결정할 때 만장일치에 도달하려는 분위기가 압도적이고, 그 분위기가 다양한 의견을 억압하려는 경향이 강한 상황을 우리는 집단사고(Groupthink)라고 말한다. 조직이 집단사고에 빠져버리면 결코 신선한 결론이 도출될 수 없다. 하나의 질문에 대한 의견이 모두 같다면 문제가 있는 조직이다.
“다양한 시선을 가지고 서로를 존중하며 토론하는 문화가 중요합니다. 유연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CEO의 역할이기도 하죠. 정답이 하나인 상황이라도 해답은 여러 개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정답보다는 질문이 더 중요합니다. 질문이 잘못되면 아예 해답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죠.”
이장우 박사는 최근 포춘에서 발견한 CRU라는 약어가 ‘몰랑몰랑’의 영어적 표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Creative(창의적인), Resilient(탄력 있는), Unconventional(인습에 얽매이지 않는)을 뜻하는 CRU는 최근 미국의 새로운 인재상으로 떠올랐다. 몰랑몰랑이 세계적인 트렌드인 셈이다.
브랜드가 확고한 기준과 철학이 정립되어 있다는 전제 아래, 브랜드마케팅은 끊임없는 창의력을 요구하는 분야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나이가 젊을수록 창의적일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오히려 창의력을 많이 발산합니다. 나이가 많음에도 창의력이 많지 않은 사람은 인풋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게 경험이든 지식이든 말이죠. 최대한 많은 환경을 접하고 새로운 경험이 늘어난다면 창의적인 생각이 샘솟게 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도 그동안 쌓아놨던 경험과 지식 안에서 쥐어짜다보면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겠죠.”

익숙한 것들과 거리 두기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사람보다 적응력이 뛰어난 적은 드물었다. 역시 경험의 차이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모바일 소셜 플랫폼 환경이 젊은 사람 위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기성세대의 노력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이장우 박사는 말한다.
“이른바 역영향력의 시대(Reverse Influence)입니다. 기성세대는 어려서부터 스마트폰을 들고 유튜브를 감상하는 세대에 비하면 디지털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CEO들은 조직 내에서 2030 세대가 기를 펼 수 있도록 문화를 조성하는 한편 스스로 몰랑몰랑한 마음가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끌어내기 위한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이장우 박사는 자신의 일상과 최대한 멀어질 것을 권한다.
“사람의 사고가 굳어지는 이유는 생활이 단순 반복되기 때문이에요. 평소 익숙한 것들과 잠시 결별을 선언할 필요가 있습니다. 매주 가는 골프장 대신 홍대 앞을 찾는다거나 평소 절대 읽지 않던 분야의 책을 사서 읽어보는 식이죠. 엉뚱한 곳을 가고 엉뚱한 체험을 하고 때로는 엉뚱한 행동을 하는 거죠. 온라인 환경이 익숙하지 않은 CEO가 있다면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직접 포스팅해보고 남이 올린 게시물을 보면서 타인의  생각을 읽는 것이죠.”
몰랑몰랑한 사고를 위해 이장우 박사가 제안하는 행동들은 결코 큰 비용이 들거나 큰 결심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 아니다. 평소와 다른 엉뚱한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유연한 사고를 받아들이는 변화인 셈이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유연해지고 개개인이 좀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몰랑몰랑’ 신드롬이 유행처럼 퍼져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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