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부터 화장품 마니아었던 청년이 글로벌 뷰티브랜드의 CEO로 성장했다. 딸아이를 위해 만든 화장품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코스토리 김한균 대표가 말하는 국내 뷰티 시장과 파파레서피 브랜드 이야기. Editor 박인혁   Photographer 한희

바야흐로 마니아의 시대다. 자신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마니아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리뷰어에 머무르지 않는다. 실제로 특정 분야 마니아들 중에는 제품 개선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거나 실제 개발에 도움을 줄 정도로 전문성을 갖춘 경우가 많다. 하지만 취미를 발전시켜 자신의 업으로 삼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 이유에 대해서 누군가는 취미와 사업은 관점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업으로 삼는 순간 순수한 취미로 남을 수 없다고 단언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마니아의 열정과 CEO로서의 사업적인 감각이 제대로 결합한다면, 그 시너지 효과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다. 코스토리 김한균 대표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는 청소년기부터 화장품에 심취한 마니아로, 직접 제품을 개발하고 글로벌 뷰티 브랜드를 탄생시킨 CEO다.
오래전부터 남성 최초 뷰티 블로거로 유명했던 그는 국내 대형 화장품 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외국계 이커머스 회사로 이직했지만, 이내 창업을 결심하게 된다.
“십대 때부터 뷰티 관련 활동을 해오다가 화장품과 전혀 무관한 일을 하니까 재미도 없고 의욕도 솟지 않았어요. 포부를 가지고 남성 화장품 브랜드를 런칭했지만 생각만큼 반응이 뜨겁지 않았죠. 그러던 중 첫째 딸을 가지면서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빠의 마음으로 만든 화장품
모든 아빠가 그렇듯 김한균 대표에게도 첫 아이는 가장 소중한 축복이었다. 김 대표는 딸을 위한 선물로 가장 잘 아는 분야인 화장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시중에 판매되는 유아용 화장품을 대부분 구입해 성분을 분석했다. 그런데 기존의 베이비 스킨케어 제품은 성인의 제품과 거의 유사하고 ‘베이비’ 단어만 붙인 경우가 많았다. 김 대표는 천연 성분의 블렌딩 오일 ‘호호바오일’을 만들어 딸이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민감한 피부의 딸을 위해 만든 이 제품은 처음에는 판매 목적이 아니었다. 그런데 김 대표가 파워 뷰티블로거로 활동하다보니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딸을 위해 만든 오일을 사용해보고 싶다는 문의가 많아지면서 제품을 정식 출시하기로 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원가율이나 이윤에 대해 조금 더 순수한 마음이었기에 가격을 높지 않게 책정했는데 그런 면이 오히려 가성비에서 후한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호호바오일은 ‘아빠가 만든 화장품’이라는 의미를 담은 파파레서피의 시그니처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김 대표는 초기에 출시했던 베이비오일 제품들의 원가가 많이 올랐음에도 판매 가격을 올리지 않고 있다. 파파레서피의 초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Beautiful Life From Little Seed
코스토리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슬로건 아래 글로벌 뷰티 브랜드 그룹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아시아의 로레알’을 표방하는 코스토리는 최근 중국에서 ‘봄비 마스크팩’ 등이 인기를 끌며 소비자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김한균 대표는 중국에서의 갑작스러운 매출 급증에 결코 흥분하거나 자만하지 않는다. 실제로 코스토리는 중국 매출을 제외하더라도 원년부터 매년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코스토리는 국내 매출만으로도 충분히 경영이 가능한 기업입니다. 여기에 중국 시장에서의 매출은 코스토리가 기존의 중견 브랜드들과 경쟁할 수 있는 보너스로 작용하겠죠. 중국 매출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수많은 피드백입니다. 워낙 중국 시장이 크다 보니 제품에 대한 반응과 개선 의견도 각양각색인데 이를 빠르게 수렴해서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죠.”
린 제조(Lean Manufacturing)는 소비자들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신속하게 후속 제품을 내놓는 생산 프로세스로 최근 여러 글로벌 브랜드에서 채택하고 있다. 코스토리 또한 제품 개발 과정에서 유통사 직원의 조언이나 고객들의 댓글을 결코 흘려듣지 않는다. 다양한 루트를 통해 실제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파악하고 개발에 착수한다. 이를테면 가지의 루페올 성분을 활용한 스킨로션과 클렌징을 코스토리에서 출시했을 때 고객들은 샴푸나 바디클렌저 등의 새로운 유형이나 고용량 제품을 원했다. 수요를 파악한 코스토리는 신속하게 다양한 용량과 여러 유형의 제품을 내놓았다. 빠르게 피드백을 반영하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결과 코스토리의 SKU(Stock Keeping Unit)는 이미 100가지가 넘는다. 비슷한 규모의 중소브랜드와 비교하면 많게는 수십 배가 넘는 종류다.
“제조업에서 재고 관리는 기업의 운명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코스토리가 추구하는 다품종 소량생산은 대기업 유통구조나 자본력을 갖추지 않으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죠. 스페인 의류 브랜드 자라를 롤 모델로 삼아 최소한의 수량만을 생산해 빠르게 완판시키는 방법으로 재고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외부 자본이 없다는 점은 코스토리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김한균 대표는 지금까지 외부에서 투자를 받거나 대출을 받지 않았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거액의 투자 제안을 거절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투자에 대한 소신도 확실하다. 화장품을 판매해 버는 돈은 다른 분야에 투자하지 않고 회사와 뷰티 분야의 성장을 위해 투자한다는 원칙이다.
“기업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돈을 버는 것입니다. 고용을 창출하고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서는 매출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죠. 하지만 돈을 버는 것 자체가 최종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뷰티 제품으로 번 돈은 뷰티에만 투자하겠다는 것이 제가 정한 원칙입니다.

K뷰티 아닌 글로벌 브랜드로의 도약
“K뷰티는 국내 뷰티 브랜드에게 세계 시장 공략을 위한 큰 무기가 될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뛰어넘어야 할 한계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코스토리가 세계 소비자들에게 K뷰티 범주를 벗어나 글로벌 브랜드로 인식되도록 노력하는 이유입니다.”
지난 7월, 파파레서피는 스페인의 글로벌 뷰티 편집샵 세포라(Sephora)에 입점했다. 영국 대표 프리미엄 백화점 셀프리지(Selfridges)에 이어 유럽 진출을 향한 초석을 다진 셈이다. 세포라에서도 파파레서피는 처음부터 K뷰티 카테고리가 아닌 내추럴, 오가닉 코너에 진열됐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이 화장품을 잘 만든다고 인정하는 상황입니다. 굳이 1만 개가 넘는 국내 화장품 브랜드 사이에서 K뷰티라고 말하는 것이 경쟁력이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어요.”
최근 화장품 업계의 가장 큰 이슈는 사드 배치 여파로 인한 수출 감소였다. 대중국 무역 수출이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화장품 업계 특성상 작은 변화에도 흔들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코스토리 또한 그 여파가 만만치 않았지만, 조급하지 않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며 관계 유지를 위해 노력했다. 김한균 대표는 코스토리가 원칙을 지키고 정도를 걸었기 때문에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라이프스타일은 진취적이지만 리스크 테이킹에 있어서는 철저히 보수적인 성향입니다.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은 아무리 달콤한 유혹이 있어도 하지 않죠. 다이궁이라 불리는 보따리상과 거래를 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다이궁(代工)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면세품이나 화장품 등 각종 물건을 소규모로 밀거래하는 보따리 상인을 말한다. 최근에는 다이궁이 중국 내에서 인터넷으로 주문을 받고 국내에서 화장품을 구매해서 돌아가 배달해주는 방식의 거래도 많아졌다. 다이궁은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인 단체 관광객 유커가 크게 줄면서 국내 중소 화장품 브랜드가 가장 손쉽게 돈을 버는 방법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김한균 대표는 보따리상을 통한 거래를 절대 하지 않고 정식 절차를 밟은 수출만을 고집했다. 단순히 높은 매출을 위해서였다면 쉽게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을 것이다.
“눈앞의 이익을 위한 꼼수로는 결코 안정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없습니다. 소비자나 파트너사와의 관계에서 정도(正道)를 고집한다면 기업이 휘청거릴 정도의 위험 요인은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제 사업을 본격적인 궤도에 올린 김한균 대표에게 먼 훗날 은퇴 후에 어떤 CEO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격의 없이 편한 CEO라거나 사람 좋은 CEO라는 의미보다는 능력 있는 사람, 같이 일하면 성과가 남는 사람으로 평가받기를 원합니다. 아직은 필드에서 실무자와 함께 그들의 눈높이와 온도에 맞춰 일을 하는 이유죠.”
코스토리는 창립 원년부터 매년 성장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김한균 대표는 숫자상으로 짐작할 수 있는 기업 규모에 관심이 집중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코스토리가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스토리와 자신의 뷰티 철학을 알리고 싶다고 말하는 김한균 대표의 모습에서 그가 가진 진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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