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서의 즐거움은 조리기구에서 시작한다. 자연에서 찾은 건강한 소재에 세련된 디자인을 입혀 즐거움을 선사하는 네오플램 박창수 대표를 만났다.   Editor 박인혁    Photographer 권상훈  


생활의 3요소로 ‘의식주(衣食住)’를 꼽을 만큼 음식은 인류의 역사에서 항상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요즘처럼 우리나라에서 요리 자체가 주목받았던 적은 없다. 맛집을 찾아다니며 음식을 먹는 ‘먹방’에 이어 요리사나 연예인이 직접 요리를 하는 ‘쿡방’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여기에 1인 가구 증가라는 주거 환경 변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주방용품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모드니’라는 기업명으로 1990년 창립한 네오플램은 해외에서 주방용품을 수입하던 유통 업체였다. 박창수 대표는 회계법인을 운영하던 중 네오플램이 제조업을 시작한 2006년 즈음부터 경영 전반에 참여했으며, 2010년부터는 본격적인 전문경영인으로 네오플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예전에는 독일제나 미제 등이 수입품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품질을 인정받는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서구 제품을 주로 수입해 팔았는데 어느 순간 한국 시장만으로는 한계를 느꼈죠. 역으로 제품을 생산해 해외에 팔아야겠다는 판단 아래 주방용품 제조를 시작했습니다.”

향균 소재로 세계 도마 시장을 공략하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매년 세계 시장 점유율 5위 이내, 수출 규모 500만 불 이상, 세계 시장 점유율 10% 이상인 제품에 ‘세계일류상품’이라는 공식 인증을 부여한다. 네오플램이 제조업에 뛰어들면서 초반에 세운 전략은 명료했다. 세계에서 5등 안에 들 수 있는 제품을 만들자는 것. 세계 시장 석권을 위해서는 독점적인 브랜드가 없는 제품이어야만 했다. “그릇이나 밥솥은 세계적인 브랜드가 많지만 도마는 그렇지 않잖아요. 독점적인 1등이 없는 도마 시장에서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도마는 대부분의 주방에 한 개씩은 있지만 특별히 유명한 브랜드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만큼 차별화가 어려운 제품이기도 하다. 박 대표는 도마의 위생 문제가 때때로 이슈로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도마 제품의 차별화 포인트를 생각해냈다.
“도마에 대한 가장 큰 이슈는 세균입니다. 향균제를 사용해 세균 번식을 막는 도마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무작정 향균제 회사인 마이크로밴을 찾았습니다.”
네오플램 브랜드가 소비자들에게 생소했기에 세계 최고의 향균제 회사 이름인 ‘마이크로밴’을 제품명에 넣었다. 경쟁 업체에서 마이크로밴 향균 제품을 도마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연 50만 불 어치의 독점 계약도 맺었다. 그렇게 ‘마이크로밴향균도마’가 탄생했다. 처음에는 50만 불어치 향균제를 모두 사용하지 못해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지만 점점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며 계약한 향균제를 모두 소비할 수 있었다. 마이크로밴항균도마는 2012년에 세계일류상품에 처음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고, 그 후 지금까지 5년 동안 연속으로 선정되며 국제적인 경쟁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하나의 아이템으로 수출 규모를 키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공장 없는 제조 기업, 원칙을 깬 계기
현재 네오플램의 대표적인 제품은 세라믹 냄비와 세라믹 프라이팬으로 전체 매출의 5~60%를 차지한다. 그런데 네오플램이 세라믹 소재 제품을 주력 상품으로 개발한 계기는 조금 독특하다.
“향균도마가 인기를 끌면서 도마와 짝을 이루는 칼을 후속 제품으로 출시했습니다. 하지만 칼은 독일제와 일제 등 명품으로 불리는 브랜드가 워낙 많아서 다른 방식의 차별화가 필요했죠. 도마와 같은 색깔을 사용한 ‘컬러 칼’을 출시하고 세트로 판매했습니다.” 도마와 같은 색깔로 만들어진 컬러 칼은 처음에는 인기가 높았지만 2년 정도 지나자 중국산 미투 제품이 등장했다. 가격도 중국산 미투제품을 따라갈 수 없으니 다른 차별화 포인트가 필요했다. 박창수 대표는 스테인리스에 불소수지코팅(PTFE)이 아닌 세라믹을 코팅한 ‘세라믹 칼’ 출시를 결심했다. “결과적으로 세라믹 칼은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세라믹 칼이 나온 직후에 그린팬이라는 벨기에 회사가 세라믹 코팅 프라이팬과 냄비를 출시했어요. 경쟁력이 있겠다는 판단에 그간의 기술력을 동원해 세라믹코팅 냄비를 개발했습니다.”
네오플램은 공장 없는 제조 기업이라는 원칙을 세우고 OEM 방식으로 유지해왔다. 나이키나 애플처럼 100% 외부 아웃소싱을 통해 제품 생산을 해왔던 것. 하지만 세라믹 코팅 냄비와 프라이팬을 생산하기 위해서 2008년에 그 원칙을 깨야 했다. “당시 국내 모든 공장은 스테인리스를 코팅할 때 PTFE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세라믹 코팅이 가능한 공장에서도 저희가 원하는 퀄리티를 맞추기 힘들었어요. 공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월 5만 개를 판매해야한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박 대표는 ‘공장 없는 제조업’이라는 원칙을 깨고 공장을 만들어 세라믹 냄비와 세라믹 프라이팬을 제조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고, 첫 달부터 5만 개의 제품을 판매했다. 세라믹의 건강한 이미지에 빨강, 주황, 노랑, 초록 등 눈에 띄는 컬러를 입힌 것이 성공 포인트였다. 별도로 마케팅을 하지 않고 주야로 제품을 생산해도 수요를 따라가기 벅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세라믹 냄비와 세라믹 프라이팬에 대한 반응은 갈리기 시작했다.

소재의 취약점, 연구개발로 극복하다
“세라믹 프라이팬의 경쟁력은 화학 성분이 나오지 않는 건강함입니다. 그런데 초창기 세라믹 제품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어요. 한 달만 사용하면 눌어붙기 시작했던 것이죠. 프라이팬의 기본적인 기능이 부실한 상황에서 건강한 쿡웨어라는 장점은 소비자에게 어필하기 어려웠습니다.”
세라믹 소재의 단점은 네오플램뿐 아니라 당시 출시되던 모든 세라믹 코팅 소재 프라이팬이 가진 약점이었지만, 점유율이 가장 높았던 네오플램에게 모든 비판이 집중되었다.
“세라믹의 장점은 모두 파악했지만 단점에 대해서는 깊이 연구하지 못한 불찰입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초심으로 돌아가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야했어요. 한중 합작으로 도료회사를 만들어서 연구 개발에 투자하고 새로운 소재 개발도 서둘렀죠.” 5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네오플램은 눌어붙지 않는 세라믹 코팅 기술인 ‘엑스트리마’ 공법 개발에 성공했다. 다른 문제점이 없는지에 대해서도 꼼꼼히 검토를 마친 후, 올해 2월 드디어 엑스트리마 코팅을 적용한 세라믹 팬이 정식 출시됐다. 박창수 대표는 신제품 출시에 맞춰 ‘네오플램 세라믹 팬’에 대한 이미지 개선을 위해 파격적인 방법을 시도했다. 예전에 네오플램 팬을 사용하고 인터넷으로 솔직한 후기를 남겼던 몇몇 네티즌에게 문제점이 개선된 신제품을 보내주었던 것. 이전 제품 품질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고객들에게 진정성을 보여주려는 자세다. 그만큼 개선된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인데, 이러한 시도는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으로 돌아오고 있다.

상생을 실천하는 ‘100년 기업’을 꿈꾸며
박창수 대표가 꿈꾸는 네오플램의 미래는 한 마디로 ‘100년 기업’이다. 100년 동안 고객들에게 꾸준히 사랑 받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 직원들이 100년 동안 일할 수 있는 평생직장의 의미가 ‘100년 기업’이라는 단어 안에 모두 내포되어 있다.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딱 세 가지만 지키겠다고 다짐했어요. 고용, 상생, 세금인데요. 많이 고용하고 거래처와 함께 성장해서 세금을 많이 내자는 이야기입니다.” 네오플램은 2012년 모범납세기업 대통령 표창, 2015년 일자리창출포상 대통령 표창을 받으며 100년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상생의 원칙도 항상 명심하며 실천해왔다. 박 대표가 말하는 상생은 비단 거래처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와의 상생, 지역사회와의 상생, 직원과의 상생이 모두 포함된다.
“예순이 넘은 생산직 직원도 체력이 되면 함께 일하자는 것이 저희 회사의 방침입니다. 일정 연령이 넘은 직원들과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임금을 조금 줄이는 대신 정년을 연장하는 임금피크제 또한 실시하고 있습니다.”
네오플램은 1년에 한 번씩 원주시 주민들에게 네오플램을 원가 수준으로 판매하는 행사를 개최한다. 네오플램 원주 지역 할인 행사는 입소문을 타고 두 시간씩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많다. 이런 행사를 벌이는 건 지역사회에 대한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함이라고 박 대표는 설명한다.
네오플램은 창립 초기 수입 유통업에서 시작해 ‘공장 없는 제조업’ 시절을 지나 현재는 원주에 2만여 평의 공장과 기업 부설 연구소, 도료 회사 등의 계열사를 가진 정통 제조기업으로 거듭났다. 돌이켜보면 정체되지 않는 다양한 시도야말로 박창수 대표가 추구하는 혁신의 모습이다. 산업 환경이 점점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앞으로도 많은 굴곡과 마주할 네오플램이 박창수 대표의 결단력과 함께 100년 기업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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