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에 22살의 나이로 미국으로 건너간 동양인 이민자가 30년 후에 4,000억 원의 자산가로 거듭났다. 국내에서는 ‘공정서비스 권리 안내문’으로 더욱 유명한 스노우폭스 브랜드 최고 책임자인 짐킴홀딩스 김승호 회장을 만났다.   Editor 박인혁 Photographer 한희  

손님은 왕이다. 우리 사회에서 너무도 익숙해진 이 표현은 순기능만큼이나 많은 부작용을 일으켰다. 2015년에는 인천의 한 백화점에서 점원이 고객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영상이 뉴스를 통해 공개됐다. 그리고 얼마 후, 강남역 스노우폭스 매장에 ‘공정서비스 권리 안내문’이 게재됐다. 직원이 고객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면 직원을 내보내겠지만, 고객이 직원에게 무례한 행동을 한다면 고객을 내보내겠다는 내용이 담긴 안내문이었다. 스노우폭스 브랜드의 최고 책임자인 짐킴홀딩스 김승호 회장은 우리 사회의 과도한 서비스 요구 문화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안내문을 작성했다고 이야기한다.
“스노우폭스에서는 당일 제품을 다음날 팔지 않기 때문에 마감이 다가오면 증정 행사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매장에서 고객 한 분이 어차피 버릴 음식이니 한 개를 더 달라면서 행패를 부렸다고 하더라고요. 일반적으로 영업을 방해할 정도로 무례한 고객이 나타나면 경찰을 불러야 하는데 유독 한국과 일본에서는 직원에게 그런 권한이 없습니다. 최고 책임자로서 직접 나서야겠다는 생각에 안내문을 작성해 매장에 붙였습니다.”

‘갑질’ 문화에 경종 울린 공정서비스 권리 안내문
김승호 회장은 고객이 매장에서 제품을 사는 이유는 누군가에 대한 호의가 아니라 스스로 이득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상호 간의 등가교환이기 때문에 서로 그에 맞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 공정서비스 권리 안내문을 붙인 후 스노우폭스와 김승호 회장은 SNS와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고, 스노우폭스의 고객과 직원 태도가 달라졌음은 물론 사회적인 분위기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무례한 고객에 대한 응대는 직원들 입장에서 가장 난처한 상황이죠. 그런데 회사가 자신을 보호해준다는 확신을 가지면서 직원들의 애사심이 높아졌습니다. 고객들도 점원에 대해 더욱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어요. 사실 저희 매장에서의 변화보다도 사회적인 이슈를 만들었던 것이 큰 성과였습니다. 도를 넘어선 고객이 등장했을 때 CEO들이 용기를 내어 점주와 직원을 보호하고 미디어에서도 고객의 무례함에 주목하기 시작했죠.” 스노우폭스는 국내에서 공정서비스권리안내문을 계기로 큰 주목을 받았지만, 세계적으로는 이미 ‘세상에서 가장 큰 도시락 회사’로 널리 알려진 브랜드다. 전 세계 1,300여 개 매장에서 4,400여 명의 임직원과 함께 연 매출 3,500억 원을 올리는 스노우폭스는 롤과 초밥, 샐러드 등을 판매하는 그랩 앤 고(Grab N Go) 프랜차이즈다. 그랩 앤 고는 기존의 도시락과는 조금 다른 개념으로, 매장에서 음식을 조리해서 진열해두면 고객이 음식을 고르는 시스템이다.
“그랩 앤 고는 고객들이 매장에 진열된 제품을 골라서 먹거나 가지고 나가는 패턴으로 구매가 이뤄집니다. 도시락보다는 편의점 식품 코너와 식당의 중간 개념에 가깝죠. 스노우폭스의 주요 타깃 고객은 고소득 여성 직장인이기에 매장이 강남역이나 공항 등 사람들이 밀집한 곳에 위치합니다. 그만큼 임대료가 비싸지만 회전율이 빨라서 운영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배달 음식이 발달되어 있듯이 외국에서는 이미 통용되는 사업 분야죠.”

 

달걀 한 알로 대형 계약을 성사시키다
현재 스노우폭스는 미국 24개 주를 포함해 유럽, 멕시코, 한국 등 전 세계 11개 국가에 1,300여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의 규모에 이르기까지 여러 에피소드가 있지만, 김승호 회장은 2010년에 달걀을 활용한 스토리텔링으로 계약을 성사시켰던 일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미국 내 2,500여 개 슈퍼마켓 체인을 가진 식품유통기업 크로거의 부회장 바트와의 미팅 자리였다. 어렵게 잡은 미팅 기회인 만큼 김승호 회장과 직원들은 수많은 경쟁사를 분석하고 모의 협상을 거듭한 끝에 그들에게 원하는 답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확실하게 스노우폭스를 각인시키기 위해 김승호 회장은 테이블 위에 달걀 한 알을 올려놓았다.
“이 달걀은 며칠간 신선하지만 이대로 두면 썩을 수도 있고 인큐베이터를 통해 병아리로 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저희 도시락 사업은 이제 갓 태어난 달걀과도 같아요. 관리를 안 하면 썩어버릴 것이고 거대한 사업으로 키울 수도 있습니다. 이 달걀에 서명해서 계약이 성사된다면 병아리로 부화시켜서 크로거라는 이름으로 부르겠습니다.” 그의 전략은 적중했다. 완벽한 미팅 준비와 설득의 기술을 통해 크로거와의 계약을 성사시켰고 스노우폭스는 당시 목표였던 300개 매장과 주당 100만 달러의 매출을 예상보다 일찍 달성할 수 있었다.
김승호 회장은 1987년에 아버지를 따라 맨손으로 미국에 건너가 이민자의 삶을 시작했다. 그후 30년이 된 지금은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 중 가장 성공한 10인’에 포함될 정도로 성공의 반열에 올랐다. 부채 없이 약 4,000억 원의 개인 자산을 가진 김승호 회장은 그동안 사업을 하며 여러 차례 좌절했던 경험이 현재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큰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운영했던 사업체는 이불가게, 한국식품점, 지역신문사, 컴퓨터조립회사, 주식선물거래소, 유기농식품점 등 업종 또한 다양하다.
“미국에서 사업을 하며 여러 번 좌절한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았을 때 그 경험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여러 번 착오를 겪었고 그 원인을 분석해서 반복하지 않았던 것뿐이죠. 동업에 대한 이해가 없는 동업자를 만나기도 했고 전문지식 없이 특수한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감당하지 못한 경험도 했습니다. 미국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서 업종을 잘못 선택했던 적도 있었죠. 하지만 이 모든 경험은 지금 사업 성공을 위해 가장 현실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김승호 회장은 그간의 사업 경험을 토대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중앙대학교 외식산업아카데미 교수로 활동하는 등 한국 업체의 해외 진출을 돕는 ‘CEO메이커’ 활동을 하고 있다. 일명 ‘사장들을 가르치는 사장’으로 불리는 김 회장은 스스로 추구하는 경영철학을 무위(無爲) 경영이라고 표현한다.
“저의 경영은 한 마디로 노장 방식의 경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장 사상에서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에 따라 행하고 인위를 가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경영에 적용한다면 누군가에게 보이거나 내세우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기업을 성장시키는 방식이죠. 가장 살기 좋은 나라는 임금이 누군지 모르는 나라라는 말도 있잖아요.” 억지로 원칙을 세우거나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직원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과 성취감을 함께 주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김승호 회장은 직원 채용 기준으로 자율성과 능동성, 창의성을 중요시한다.
“능동적으로 일하는 직원을 뽑는다면 근무 시간을 강제로 정하지 않고 자율성을 부여했을 때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집니다. 짐킴홀딩스 계열사 사장이 8명이지만 임원급 인사나 신규 투자 관련된 내용이 아니면 저하고 논의할 일이 없습니다. 분기별 재무보고와 주간 업무보고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그 밖의 모든 업무에서 완벽하게 자율성을 보장하죠.”

 

최고의 브랜드로 거듭난 아내의 별명
김승호 회장이 스노우폭스를 창립하기 전에 여러 사업을 하며 어려운 상황을 겪으면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에는 항상 아내가 있었다. 김승호 회장은 미국으로 이민가기 전 아내를 만나 결혼했고, 쉽지만은 않았던 이민 생활 동안 서로 돕고 의지해왔다.
“사업가의 재산은 결국 사업체의 규모가 아니라 배우자가 가진 재산에서 결정됩니다. 한국에서는 사업이 잘되면 배우자에게 생활비를 많이 주는 정도로 만족하는데 그릇된 사고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모든 재산을 쥐고 있으면 회사에 재투자하게 되는데 사업이 망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나버리죠. 자산의 반을 배우자에게 주고 나머지 반을 마음껏 사업에 투자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실제로 김승호 회장이 수없이 실패하면서도 다시 사업에 도전할 수 있었던 힘은 아내가 한 번 더 도전해보라고 건넸던 종잣돈이었다. 김 회장이 아내에게 느끼는 애정과 고마움은 스노우폭스 브랜드명의 유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백씨 성을 가진 여자아이들은 대부분 백여우라는 별명이 붙는다더군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백여우는 그리 좋은 어감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자신의 별명을 싫어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브랜드 이름을 스노우폭스라고 지었습니다. 백여우라는 별명이 깨끗하고 단정한 이미지로 거듭난다면 더 이상 싫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죠. 예상은 정확했어요. 아내는 이제 백여우라는 별명을 좋아합니다.”
스노우폭스 매장은 현재 국내에 8개가 있으며 향후 40~50개로 확장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승호 회장은 공항, 카지노, 병원 등 유동인구가 많고 임대료가 비싼 특수 지역에 들어가는 만큼 그 이상으로 국내 매장을 늘리는 건 한계라고 말한다. 대신 주요 고객층인 2~30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캐릭터 사업 등을 확장하고 있다.
다양한 사업 분야에 여러 이름으로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일반적인 한국 기업과 달리 스노우폭스는 하나의 브랜드명으로 여러 사업 분야를 확장한다. 모회사 짐킴홀딩스 아래 레스토랑, 펀딩, 매니지먼트, 제조, 컨설팅, 출판 등의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김승호 회장은 스노우폭스가 전 세계에서 성장을 거듭할수록 아내가 싫어했던 ‘백여우’라는 별명이 더욱 좋은 이미지로 정착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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