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잘 입은 옷은 사람을 멋져 보이게 만들어준다는 뜻으로 ‘사람에 대한 날개’를 의미하지만 정말 옷이 날개를 달고 훨훨 날 수도 있다. 옷장에서 주인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잠자고 있는 죽은 옷에 날개를 달아 다시 숨을 불어 넣어주는 일. 바로 ‘열린 옷장’의 한만일 대표가 하는 일이다. 광고비 한번 들인 적 없어도 항상 손님으로 가득 차고, 일 하는 과정에서도 감동이 감동을 부르는 비영리 사단법인 열린옷장 한만일 이사장이 일구어낸 ‘선(善)의 고리’, 마법과도 같은 감동 스토리를 들어봤다.  Interview 양영은 KBS 기자   Photographer 이경직

 

비싸게 주고 샀지만 잘 입어지지는 않고, 그렇다고 내놓자니 산 가격이 생각나 아깝기만 하고…… 이런 옷들 옷장에 분명 몇 벌씩은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잘 살펴보면 일생일대의 기회를 앞두고 막상 옷이 없어 그 기회조차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중요한 순간에 제대로 입을 옷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그 둘을 이어주는 곳이 있다. 그리고 옷을 기증한 사람도, 기증된 옷을 빌려 간 사람도 모두 행복하다 못해 서로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수많은 아름다운 사연들이 공유돼 쌓인다. 유행이 지나서든, 몸이 불어서든 잘 입게 되지 않는 옷이 있을 때 그 옷을 기증하면 고쳐서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입을 수 있도록 빌려주는 곳이 있다.

‘열린 옷장’이 뭐하는 곳이죠?
한쪽에는 입지 않는 옷들이 많이 있고, 또 다른 한쪽에는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 두 집단을 연결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시작했어요. 잘 입지 않는 옷을 가진 선배가 그 옷이 꼭 필요한 후배에게 전달해줄 수 있도록 중개자 역할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옷(정장)이 필요한’ 사람들은 어떤 경우인가요?
맨 처음 아이디어를 냈을 땐 면접 보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어요. 면접 볼 때 정장이 다들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정장을 구입하려면 비용이 꽤 들죠. 더구나 취업난이 길어지고, 취업도 어려워지다 보니 취업비용도 전에 비해 많이 드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취업비용을 줄여주면 좋겠다, 그 중에 정장 비용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당시 저도 직장을 다니고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생각해보니까 제가 면접 볼 때 입었던 정장- 그렇지만 지금은 안  입는-이 있더라고요. 그런 옷들을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옷이 필요한 데 옷을 가지고 있지 않은 집단. 즉 면접 보는 학생들로 설정을 하고 시작을 했죠.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결혼식 때 오시는 분들도 많고 장례식, 행사, 발표, 학교에서 작은 논문 발표 때 교수님이 정장 입고 오라고 할 때, 그런 경우에도 당장 정장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건설 현장 노동자 분들도 면접을 볼 때는 정장을 입어야 하거든요. 실제 일할 땐 전혀 안 입는데. 그리고 취직 시험을 보는 기간이 일 년도 넘게 이어지면서 첫 시험 볼 때 샀던 정장이 살이 쪄서 안 맞는 경우도 있고-그런 학생들은 정장 살 돈이 없죠. 또 택시 운전하시는 아버지가 딸 결혼식 하는데 정장을 빌리러 오시는 경우도 있어요. 그날 말고는 도무지 정장을 입을 일이 없으니까요, 딸에게 부담주기 싫다고.

정장을 대여하는 비용이 아주 저렴하다고 들었어요.
네, ‘옷이 날개’라는 표현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잘 맞는 옷을 입었을 때 그 사람이 자신감도 생기고 표정도 밝아지고 행복해하면 ‘옷이 날개’인 거죠. 그런 거 보면 마음이 짠하기도 하고 기분 좋아요. 어떤 택시 기사 분은 옷을 대여 받으신 후에 너무 고맙다고, 다음에 택시로 제주도까지 태워주겠다고 하시기도 하고. 도배일 하시는 분께서는 도배할 일 있으면 공짜로 해줄 테니 언제든 연락하라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래요.


정장을 빌리러 오는 손님들이 많나요?
피팅룸이 부족합니다. 하루 백 명 정도 오시는데 그것도 저희가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거든요. 유명세를 타면서 갑자기 사람이 몰려서 맛이 없어지는 식당처럼 되고 싶지는 않아서 예약제로 시간에 맞춰 오시게 하고 있는데, 현재는 하루에 90~100명까지가 한계예요. 더 오시고 싶어도 오실 수 없게 막아놨어요. 보통 한 손님이 평균적으로 짧으면 40분, 길면 한 시간 동안 옷을 입어보고 남자 분들은 슈트가 잘 맞는지 확인하고 셔츠도 어울리는지, 타이랑 구두는 어떤지 보시고 직원들한테 조언을 구하시기도 하고요. 저희 직원이 현재 스무 명인데 이제는 일요일에도 문 열어요. 손님이 많아서……

사설 정장대여 업체들과 다른 점은 뭔가요?
2011년 가을에 아이디어를 내서 직장인 세 명이서 시작했거든요. 일 년 정도 회사를 다니면서 병행을 했는데 그러면서 다른 대여 업체들에 가서 빌려보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가격이 너무 비쌌어요. 그런데 저희는 기증 받은 옷들로 대여를 해주기 때문에 대여료가 정말 싸죠. 그리고 신기한 건 옷을 기증한 사람들도 정규분포지만 옷을 빌려간 사람도 정규분포예요. 사이즈 면에서. 일반 대여 업체라면 찾는 사람이 적은 아주 작은 사이즈나 아주 큰 사이즈는 구비하지 않겠죠, 그런데 저희한테는 있거든요. 그런 분들도 많이 찾아오시다 보니까 역설적으로 저희는 옷이 항상 부족해요. 항상. 핵심은 사실 양질의 옷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하는 건데 기증이 그렇게 많이 들어오지는 않거든요. 저희가 굿윌이나 아름다운가게처럼 큰 곳은 아니다보니. 그렇지만 언젠가 한 대형 로펌에 가서 정장을 기증받아온 적이 있는데 그때 정말 좋은 브랜드 옷들을 많이 주셨어요.

정장을 기증할 때도, 또 대여 받고 돌려줄 때도 ‘손편지’를 써야한다면서요?
네, 저희는 기증을 하면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게 매력적이거든요. 저희가 그런 사연들을 책자로 만들어서 기증하신 분들께 보내드렸어요. 다들 직접 손글씨로 편지를 써 주신 건데 기증한 옷을 빌려 입은 사람들로부터 피드백이 오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그냥 안 입는 옷이라 내놨는데 누군가로부터 ‘그 옷을 입고 합격했다, 새 출발을 하게 됐다, 너무 감사하다, 저 열심히 살게요.’ 이런 메시지를 받게 되면 출근하다가 우셨다는 기증자들도 계시고. 그분들이 감동을 받아서 주위에 다른 분한테 얘기해서 또 다른 분이 기증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갈수록 좋은 옷들을 기증해주세요. ‘면접관 앞에서 입을 건데 이왕이면 좋은 옷 입게 해주고 싶다’ 그래서 어떤 때는 저도 놀라요. 고급 브랜드가 많아서. 그리고 저희가 보증금을 받지 않는데, 그 이유가 보증금 설정이 별 의미가 없어요. 백만 원이 넘는 슈트들인데 오만 원, 십만 원 보증금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가져가버리면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신기하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어요. 지금까지 오만 명 정도 빌려갔는데 반납이 안 되는 경우가 기껏해야 10건, 20건 정도. 그나마도 알고 보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경우더라고요.

기증 품목은 어떤 것들이에요?
남자는 슈트랑 셔츠, 타이, 구두, 벨트, 액세서리, 정장을 입을 때 필요한 품목들을 다 기증받고, 코트도 받아요. 여자는 스커트, 재킷, 바지, 셔츠, 블라우스, 구두, 이렇게 받아요. 근데 진짜 옷이 부족해요. 왜냐면 어떤 사람이 왔을 때 이 사람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권해 드려야 하는데 사이즈만 맞으면 되는 게 아니라 계절별로 겨울이면 겨울에 맞는 옷이 있어야 되고 원하는 색상이 있을 거예요. 디자인도 그렇고요, 그래서 대여자가 완벽하게 원하는 옷을 찾아드리려면 옷이 지금보다 열 배는 더 필요해요.

그 옷 관리하고 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단순히 자원봉사 개념으로 시작했거든요, 그렇게 시작을 해서 운영비용에 대해선 생각을 안 해봤어요. 그런데 직원이 생기고 하다 보니 운영을 해야만 되는 시점이 오게 됐지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저희는 빚 없이 잘 운영하고 있어요. 지난달에 2,800명 정도가 이용했고 객 단가가 3만 원 좀 덜 되는데 기증 받아 한 것이라 임대료, 인건비, 세탁비 정도 빼고는 그대로 남아요.

 

돈이 없어서 옷을 못 사는데, 옷을 잘 갖춰 입지 못해서 또 시험에 떨어져서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을 끊어주고 계신 거네요.
네, 저희는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 오신 분들한테 힘도 실어드리고 누구나 멋질 권리가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실현시켜드리고 싶거든요. 학생들 중에도 집에 돈이 많으면 아르바이트 안 하고 해외도 가고 면접할 때도 좋은 옷 사 입지만, 막상 정말 취직이 절실하지만 어려운 형편에 있는 친구들은 옷도 못 사 입고, 애초에 출발선 자체가 다른 거 같아서 맞춰주고 싶은 거죠.

기증 신청은 어떻게 하나요?
홈페이지에서 기증 신청을 해주시면 박스를 저희가 보내드려요. 그럼 기증할 옷들을 담아서 반송하고 그럼 그 옷들을 저희가 쓸 만한 옷인지 아닌지 구분해서 데이터베이스화하죠. 안 좋은 옷이라면 다른 비영리 단체에 재 기증을 해서 제3세계 국가에 적정 수준에 판매를 하고 그 돈으로 아동들을 교육시키는데 쓰거나 또는 해체해서 가방을 만들어요. 디자인이 좋아서 ‘레드닷어워드’도 받았어요. 유행이 지난 스타일은 요즘 스타일로 수선을 해요. 그렇게 해서 핏(Fit)을 최신으로 바꿔서 빌려드리죠.

가장 보람이 있을 때는 언제예요?
저희가 이런 일을 하다 보니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세요. 프로그램 개발도 자원해서 도와주셨고, 공간도 기증 받았고, 세탁 무료 자원봉사도 해주고 계세요. 운이 좋은 거죠.
그리고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방송을 봤는데 어떤 높이뛰기 선수가 4차시기에 나가야 되는데, 상의 유니폼을 잃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다른 선수가 입었던 옷을 입고 급하게 번호만 붙이고 나갔죠. 근데 금메달을 땄어요. 근데 그날 뉴스 제목이 ‘옷 빌려 입고 금메달’로 나온 거예요. 나중에 인터뷰를 했는데 알고 보니까 그 옷을 빌려준 사람이 전에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그 사람 옷을 입고 뛰어서 행운이 전해진 거 같다고 실제로 인터뷰를 그렇게 했어요. 그거 보고 ‘와! 말 되네. 옷이 기운을 전해주는 게 말이 되는구나.’ 그런 생각들을 해서 기증자와 대여자의 스토리, 메시지를 모으고 공유되게 하고, 그렇게 이야기가 남으면 옷이 한권의 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옷을 빌린 땐 싸서 빌리는 게 맞지만, 옷을 빌려 드리면서 제가 알려드리죠. 그 옷을 기증해주신 분이 그 옷을 입고 경험한 사연을. 그럼 ‘어머!’ 이런 반응이 많아요. ‘이 분이 이거 입고 합격했던 옷이래요. 그러니까 합격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 말을 한마디라도 건네면 오는 분들이 자존감이 상승돼요.
맹자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면 화살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은 저 사람의 갑옷과 방패를 어떻게 뚫고 죽일지를 항상 생각하지만, 방패를 만드는 사람은 어떻게 이 사람을 보호하고 더욱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되니까.’ 즉, 일이 그 사람의 마음을 결정한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음에 매일매일 순간순간 감사해요. 그리고 정장을 빌리는 분들에게 옷을 통해 누군가의 좋은 기운과 응원을 전하고, 또 그 옷을 입고 좋은 일이 생긴 분들은 기증자에게 감사의 뜻을 표현하게 되면 그걸 기증자에게 전해드리고…… 한 장애인 분은 갑자기 장애가 생겨서 입던 정장을 다 기증했는데, 그걸 입은 사람들이 감사하다고 보낸 편지에 격려를 얻어 패럴림픽까지 나가셨대요. 그런 이야기들을 보고 힘을 얻어 다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저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을 믿거든요. 그 옷을 입었던 사람과 연결이 되는 느낌도  있는데 인간적인 마음이 잘 작동을 해서 옷이 버려지지 않고 쓰인다는 게 여러 가지 의미가 있어요. 환경도 당연히 보호할 수 있고, 그래서 앞으로 규모를 더 넓혀서 많은 분들이 혜택을 봐서 누구나 멋질 권리를 누리실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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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터뷰를 끝으로 본 칼럼은 잠시 작별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여러 분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월간<CEO&>을 통해 맺게 된 인연이 앞으로도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원하며, 2017년 새해에도 댁내 만복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양영은 
현재 MC. <양영은의 인터뷰 ‘선물’> 진행. 기자 겸 앵커로 활약하다 유학길에 올라 미국 MIT Sloan School of Management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하버드 웨더헤드 국제문제연구소(Weatherhead Center for International Affairs)에서 펠로우로 1년간 있으면서 하버드와 MIT를 비롯 보스턴 지역의 석학들을 인터뷰했다. 최근 <나를 발견하는 시간-하버드·MIT 석학 16인의 강의실 밖 수업>을 발간했으며 창의적 리더십과 경영 관련 교육, 동물 보호에 관심이 많다.
e-mail : ye_yang@sloan.mit.edu   facebook : FoodFor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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