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 이번 기사를 준비하기까지 앤 스위니 디즈니-ABC TV 그룹 회장에게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미국 미디어 업계의 여왕이라고까지 불리며 군림(?)하는 그녀가 회장직 3년 연장 계약을 거절하고 이번 계약이 끝나는 내년 1월 즈음까지만 일한 뒤 PD(TV director)에 도전하겠다고 밝힌 것. 지난 1996년부터 18년 동안 디즈니의 엔터테인먼트 사업과 ABC TV를 이끌어온 그녀이기에 이 같은 결정은 업계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졌고, 여파도 크다. 이런 결단을 내리게 된 배경으로 스위니 회장은 “커다란 책상에 앉아 있으면 창의적 일에는 접근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자신에게 새롭게 도전할 기회를 주고 싶다. 앞으로 현업에서 일을 배워볼 계획이다. 신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디즈니-ABC TV 그룹 회장으로서 현 계약이 끝나는 내년 5월까지면 당신은 무려 18년 동안이나 디즈니에서 일해온 셈이 됩니다. PD(TV director)가 되려고 회장직을 사퇴하신다고요?

디즈니에서 보낸 지난 18년은 제 임원 경력에 하이라이트였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이 좋았던 만큼 언제나 제 마음 속에는 가시지 않는 소리가 있었어요. 기존에 하던 익숙한 일(comfort zone)에서 벗어나 좀 더 창의성을 직접 발휘하며 일할 수 있는 제작현장에 뛰어드라는 것이지요. 마침내 저는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이 모든 걸 뒤로 하고 the art of directing을 배우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감행한다는 게 놀랍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오랜 꿈’이었어요. 


만으로 56세이라는 나이, 그리고 120억 달러의 미국 TV 제국을 뒤로하고 많은 사람들이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는, ‘TV 디렉터가 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는 결정은 어떻게 내리신 겁니까?

제가 이번 결정을 내리게 된 건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싶다’는 갈망 때문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제가 ‘중년의 위기(midlife crisis)’를 겪는 게 아니냐는 말도 하지만요(웃음). 저는 정말 다시 현업으로 돌아가고 싶고, 그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요. 인생으로 봐도 이제 두 명의 아이들이 모두 커서 다 집을 떠났고, 남편도 제가 무엇을 하든지 격려해주겠다는 아주 행복한 시기에 있어요. 저는 스크립트(대본)를 읽고, 편집되기 전 컷들을 정리하고 그런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요. 항상 마음 속에 품어왔던 열정이었죠. 

저는 언제나 ‘당신을 가장 겁 나게 하는 일을 하라 Do the things that scare you the most’라고 말해 왔는데, 진심이에요. 삶이란 살아가는 내내 배움의 연속이고, 결코 당신을 가두거나 당신의 능력을 한정하면 안 돼요. 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하고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해요. 제 열정은 그런 창조적인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데 있고, 다시 배우는 사람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확고해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앞으로 어떡하실 건가요?

배워야 될 게 너무 많아요. TV 프로그램 감독이 되고 싶은 건 제가 작가도 아니고, 배우도 아니기 때문이에요. (스위니는 어릴 때 배우를 지망했었다.) 그리고 저는 세트장에 자주 가봤거든요. 그러니까 거기에서부터 다시 시작해보려고요. 밑에서부터 배워나가야죠. 제가 현업에서 뛰는 걸 상상 못 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안될 건 또 뭐가 있어요? 앞으로 한 3, 4년 후에 뒤돌아보면서 ‘왜 내가 이걸 안 했지?’또는 ‘왜 한 번쯤 뛰어들어 도전해보지 않았을까?’하고 후회하고 싶진 않아요.


회사를 옮기게 되더라도 당연히 다른 회사 임원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기회나 제안이 있었어도 거절하셨을 건가요?

제가 맨 처음에 케이블 채널인 니클로디온에서 일할 때를 떠올려보면, 그 때 참 재밌었어요. 말 그대로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직접 참여할 때요. 그게 바로 제가 앞으로 가고 싶은 방향이에요.


회사에는 어떻게 이런 결정을 전하셨나요?

저의 상사인 Bob Iger(디즈니 CEO)하고 그의 사무실에서 자주 미래에 대한 얘기를 하곤 하는데요, 그런 와중에 자연스럽게 제가 하고 싶은 걸 이야기했어요. 상사도 굉장히 너그럽게 받아들였고, “그래서 뭘 하고 싶으냐? 어떤 동기에서냐?”라고 물어봐 줬어요. 제가 좇고 싶은 꿈이 있다는 걸 인정해줬죠.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발표하셨나요? 사임할 때쯤 했어도 될텐데요.

물론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이런 발표에 좋은 시기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결심을 한 이상 조금이라도 먼저 알려서 회사에 이후 수순을 생각하고 준비할 충분한 시간을 주고 싶었어요. 

디즈니라는 회사에는 제 뒤를 이을 인재들이 많아요. 그리고 그런 인재들은 그들이 일하는 직장을 위해서 스스로 할 일을 찾아내죠. 만약 그들이 그러지 못한다면 회사엔 엄청난 손해예요. 그런 훌륭한 인재들에게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적합한 기회를 제대로 주지 못 하고 있는 거니까요. 디즈니는 어느 날 하루 시청률이 나빠도 끄덕하거나 그걸로 영향 받지 않아요. 장기적인 안목과 비전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ABC 채널은 여성 시청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요, 그게 맞는 걸까요?

사실이 그래요.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많이 TV를 시청하죠. 특히 ABC는 아주 충실한 여성 시청자 층이 두꺼워요. 그러니까 당연히 그들의 필요와 요구에 귀를 기울이게 되죠.


이제까지 가장 자부심을 느낀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우리 팀은 정말 많은 일들을 해냈어요. 제가 이끄는 팀이 그동안 정말 많은 프로젝트와 새로운 시도들을 불확실하고 시간이 촉박한 환경에서도 성공적으로 해냈다는데 큰 자랑스러움을 느낍니다.


앤 스위니는 지난 3월 2일 Dolby Theatre에서 열린 오스카상 시상식에 디즈니사 CEO이자 상사인 Bob Iger와 나란히 참석했다. 내년이면 현 임원 자리에서 내려 오기에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시상식장에서 그녀는 매 순간을 즐기는 듯 보였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면서 아주 편안해 보였다. 이번 오스카상 시상식은 전 세계에서 4천3백7십만 관중이 시청했다. 언젠가 어느 자선기금 모금 이벤트에서 그녀가 후배 여성들에게 했던 말, “Some girls are given more challenges than others, and for those girls, the call to be strong, smart, bold, and brave is even more important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도전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더 강건하고, 지혜롭고, 용감하며, 대담한 태도가 더 중요하게 요구되죠.”라는 말이 이제 그녀 자신에게 적용될 차례다.



 

앤 스위니 하버드대 강연 영상

<TV Tech: The Role of Technology in the Evolution of Creativity and the Viewer Experience>?

http://www.youtube.com/watch?v=YzvGKKBWq_4


앤 스위니 Anne Sweeney

현재 디즈니 미디어 네트웍스의 공동 회장이자 디즈니-ABC TV 그룹 대표로 케이블 채널 Nickelodeon과 FX를 십수 년간 경영하다 1996년 디즈니 그룹의 어린이 전문 방송 ‘디즈니 채널’ 사장으로 부임했다.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혼합한 영상 콘텐트를 제작하고 대중화시켜 그룹을 성공적으로 이끈 경력을 바탕으로 Forbes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스위니 회장은 특히 남초 현상이 뚜렷한 미국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회장 자리까지 올라(2004년) 스포츠와 예능, 보도 등 분야별로 채널을 나누고 콘텐트도 국제화해 그룹을 성장시켰고 미국에서는 ‘여성 소비자들이 절반인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남성이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특별한 존재’로 여겨진다. 하버드대 대학원 교육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스위니 회장의 사퇴가 지난 3월 초 발표된 관계로 관련 부분은 현지 언론 보도를 일부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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