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의과대학 교수의 아내인 유나 양(Yuna Yang, 양정윤)을 미국에서 처음 만난 것은 보스턴에서도 가장 ‘핫’하다는 뉴베리 스트릿(Newbury Street)의 한 패션쇼에서였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한국인이, 그것도 하버드 교수의 아내로서 미국에 정착한 지 몇 년이 채 되지 않아 패션쇼를 연다는 게 놀라웠다. 그러던 차에 때마침 초대를 받아 호기심을 얼추 해소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그녀는 ‘YUNA YANG’이라는 브랜드로 뉴욕에 진출했고, 지금은 한국인 패션 디자이너로는 유일하게 뉴욕 패션위크에 설 만큼 촉망 받는 신예가 되었다. 미국과 타이완, 그리고 올해 초 갤러리아 백화점에 이어 오는 9월 초 롯데 애비뉴엘 등에도 입점 예정인 브랜드 YUNA YANG, 그 브랜드를 이끄는 디자이너 Yuna를 9월 4일 뉴욕의 Alvin Alley American Dance Theater에서 열릴 그녀의 뉴욕 패션위크 쇼를 앞두고 만났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신진’이라는 말을 떼어내고 ‘중견’으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는 디자이너 유나 양의 브랜드 철학과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2회에 걸쳐 들어본다.




이제 또 얼마 후면 뉴욕 패션위크가 시작되네요, 지난 몇 년간 뉴욕 패션위크에서는 유일한 한국인 디자이너로 알려졌는데 어떻게 가능했는지요?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죠(웃음). 뉴욕에 한국인 유학생들도 너무 많고, 패션을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뉴욕 패션위크에 서는 디자이너는 저 한명이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패션 디자이너로서 역할모델처럼 가고 있는데 앞으로 더 잘 돼야죠. 한국 디자이너로서 사명감도 있고요. 사람들이 ‘어떻게 뉴욕 패션위크에 진출했냐?’는 그 질문을 굉장히 많이 해요. 그건 한국 사람뿐 아니라 유럽에 있는 사람들도 뉴욕 진출을 꿈꾸는 디자이너라면 많이 물어보는데요, 솔직히 저만의 노하우라기보다는 ‘기본을 지켰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좋은 컬렉션을 만들고, 처음에 보여줬던 비전을 흔들리지 않고 이어가면서 꾸준히 지속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이런 것이 생각보다 쉬울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을 수가 있거든요. 그리고 제 경우엔 언론에서 도와 준 ‘운’도 있었어요. 데뷔하자마자 잡지 커버에 나오고, 뉴욕 타임스에도 소개되고, 뉴욕 패션위크에 데뷔하면 다 그런 건가 보다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뉴욕 패션위크 데뷔가 2010년, 이후 매년 두 차례씩 쇼를 해온 거죠?

네, 사실 뉴욕도 파리나 밀라노 못지않게 경쟁이 치열하고 신진 디자이너로 버티기가 쉽지는 않아요. 모두가 성공하고 싶어하는 곳이니까요. 그래서 매년 전략을 새롭게 짜는 거죠. 올해는 다른 디자이너와 경쟁했을 때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춰 어떤 작품을 낼까 늘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로 제가 다른 디자이너와 차이점이 무엇인지, 장점이 뭔지를 고민하면서 그걸 극대화시켜요. 그 결과 이번에도 뉴욕 패션위크의 캘린더에 이름을 올리게 됐습니다. 내년이면 5년 째인데, 디자이너는 데뷔하고 5년까지는 신진이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이제 준 메이저로 갈 준비를 슬슬 하고 있어요.


요즘 미국 경기가 좋지 않은데….

네, 그래서 시장도 좀 더 공격적으로 뚫어야죠. 미국도 현 상태를 유지하면서 타이완, 한국, 중국 시장 등 좀 더 크게 보고 앞으로 10년을 계획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보스턴 뉴베리 스트리트에서 첫 쇼를 봤을 때 솔직히 그때는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 몰랐어요.

그건 쇼라기보다는 맛보기로 프레젠테이션을 한 거죠. 정말 아무 것도 아닙니다. 미국에 왔으니까 그 전에 가지고 있던 샘플들을 가지고 미국 사람들은 어떻게 일을 하나 한번 경험해본 겁니다. 저는 새로운 곳을 많이 살아 봐서, 거주지와 활동하는 곳을 옮길 때마다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결국 실력을 갖추고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어요.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용감한 면도 있는 것 같고요. 나는 어디에 가서도 당당하다는 자신감은 특히 외국에서 활동할 때 큰 도움이 되죠.


원래 성격이 그런가요?

계발을 한 건 아닌데요, 내 실력에 자신감이 있으면 경쟁 속에서도 겸손하면서도 당당할 수 있는 거잖아요. 실력에 자신이 없으면 비굴해지고, 남에게 휘둘리고 그런 거고요. 물론 운도 중요하죠. 하지만 세상을 보면 긍정적인 사람들이 성공을 해요. 모두가 긍정적인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 하지, 불평하고 샘내고 부정적인 기운이 있는 사람에게는 손을 안 내밀게 되잖아요. 그래서 태도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올 초에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에 런칭을 했고, 이제 또 부산 센텀시티와 롯데 애비뉴엘 입점을 앞두고 있는데 국내에서 아직 브랜드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스타일을 좀 설명해주세요.

우리가 레이스와 자수, 비딩 장식 같은 걸 많이 쓰다 보니까 사람들은 여성스럽다(lady-like look)라고 많이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그게 바로 매력일 수도 있고요. 얼핏 보기엔 굉장히 여성스러운 것 같지만, 사실은 센 데가 있거든요. 아이러니컬한 반전이죠. 그래서 브랜드 콘셉트를 ‘Classic with Modern touch(현대적 취향을 가미한 클래식)’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위트도 있고 여성스러운 듯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세고, 소재나 드레이핑 기법은 여성스럽지만, 커팅이나 디자인은 과감하면서도 남성적이죠. 이렇게 제 디자인을 완전히 구분지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니까 기자들은 그게 특이하고 신선하다고 생각해주는 것 같아요.



 

미국에서 활동을 하고, 한국에서 활동을 해보니 어떻던가요?

패션 디자이너에 대한 인식이 한국에선 낮은 것 같아요. 사실 패션 디자이너가 아티스트는 아닌 것 같거든요. 아티스트 카테고리에 들어갈 순 있지만요. 패션계에선 자기 브랜드를 키우려고 하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타이틀이 있잖아요. 한국에서는 광고 쪽에 더 많이 쓰는데, 예를 들어 마크 제이콥스라는 사람이 루이비통에서 했던 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인 거죠. 그 사람들이 하는 건 옷만 만드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브랜드에 대한 모든 것을 브랜딩부터 시작해서 총괄하는 거죠. 시즌의 콘셉트라든가, 물건이 어느 매장에 들어가야 하는지, 들어간다면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지 등등 모든 걸 총괄하는 것이거든요. 마치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브랜드를 키우는 거죠. 그렇게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예요. 그렇게하려면 문화도 알아야 되기때문에 패션 디자이너는 문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비전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비전’이라면 보통 기업가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건데요.

맞아요, 기업가와 패션 디자이너도 결국 따로 떼어 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기업가로서 회사를 키우는 거와 디자이너로서 브랜드를 키우는 것과 굉장히 비슷해요. 영국에서 일을 하면서 잘 나가던 디자이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부도나는 경우를 보면서 비즈니스가 얼마나 냉정한지 배웠어요. ‘브랜드를 키운다는 게 디자이너 마인드로만 접근하기엔 험한 일이구나’하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저는 회사를 매우 보수적으로 운영해요. 큰 회사에서 콜라보(협업) 제의가 와도 거절하는 경우도 많고요. 사람들은 의외라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항상 모든 결정을 내릴 때 10년 후를 바라보거든요. 특히 디자이너 브랜드는 그런 거예요. 지금 당장은 작지만 발전할 수 있는 가치는 무궁무진합니다. 그게 패션 비즈니스의 매력이기도 하고요. 단순히 옷을 파는 것만이 아닌 거죠. 생각해보세요. 10년 뒤에 Yuna Yang이라는 로고가 들어갔다라는 이유만으로 백 원 짜리가 천 원이 될 수도 있고, 백 원 짜리가 백만 원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또 반대로 어느 날 그게 망하면 아무 가치가 없을 수도 있고요. 그런 생리를 이해하고 그러한 마인드를 가져야만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고, 그런 비전을 보여줘야만 바이어나 프레스도 함께 갈 수 있어요. 세상에 브랜드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 말씀은 바이어나 프레스가 이른바 ‘갑’이라는 뜻인가요?

아니요. 저는 항상 디자이너가 ‘갑’이라고 생각해요. 결국에는요. 그리고 그렇지 않다면 그런 인식을 제가 깨줘야죠. ‘함께 가는 거다’라는 인식을 시켜줘야죠. 제 비전을 그들에게 전달함으로써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 잠깐 힘들다고 해서 우리와 비전이 다른, 원하지 않는 회사와 일을 한다거나 그런 일련의 작은 선택들이 크게, 장기적으로 봤을 땐 위험할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후원을 받는 곳도 마찬가지고요. 결국은 그런 이미지 하나하나가 다 쌓이니까요.



 

디자이너로서, 또 디자이너에 대한 철학이 분명하시네요.

저는 패션 디자이너는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이제까지 저나 저희 브랜드를 키워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도 있고요. 아무 것도 없을 때부터 눈여겨봐주고 지원해 준 사람들이 많으니 허튼 짓을 못 하는 겁니다. 가족 뿐 아니라 기자 분들도 그렇고, 바이어도 그렇고…. 그 분들에 대한 책임감도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런 책임감을 이겨내는 건 나와의 싸움인 것이고요. 또 유혹을 잘라내는 것도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유혹이요? 어떤 유혹인데요?

나 자신이, 내가 유명해지는 것에 대한 유혹이요. 그건 다른 길이거든요. 좋은 디자이너가 되는 것과 내가 유명인이 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거든요. 저희 회사에서 물론 제가 아이콘이지만, 항상 직원들에게 얘기해요. 영어로 이름을 쓸 때, 소문자로 yuna yang은 제 자신인거고, 대문자로 YUNA YANG이라고 쓰는 건 브랜드라고. 항상 그렇게 말해요. 나도 YUNA YANG을 위해서 일하는 디자이너라고. 우리 모두는 YUNA YANG이라는 브랜드를 위해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제 자신이 브랜드 YUNA YANG은 아닌 거니까요.


한국에는 브랜드보다 그 디자이너 자체가 더 알려진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외국의 경우엔 그런 경우가 잘 없는데, 한국은 유난히 그래요. 사람들이 어떤 패션 디자이너를 떠올렸을 때 옷보다도 그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되잖아요. 물론 디자이너 자신이 유명할 때 브랜드가 그 후광효과에 힘입어 알려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참 쉽지 않은 건데, 저는 그런 게 유혹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쉽게 가는 길들이 있거든요. 일을 하다 보면 때로는 쉽게 가는 길이 보이고, 어떨 땐 쉽게 돈을 버는 길도 보여요. 

예를 들어 어떤 아이템 중에는 크게 풀어서 싸게 팔면 대박 나는 게 보이는 경우도 있고, 주변에서 그렇게 하자는 사람들도 많고. 하지만 좋은 디자이너는 스님이 도를 닦는 마음가짐으로 해야 될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게 한끝 차이에요. 그래서 쉬워 보이지만 쉽지가 않거든요. 디자이너로서 나와 브랜드의 균형을 맞춘다는 것이요. 하지만 그걸 잘 해야 브랜드가 오래 살아남는 거죠. 샤넬이 죽었지만 샤넬이 남아 있는 건, 샤넬이 인기가 있기도 했지만, 샤넬이라는 브랜드가 인기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 브랜드가 디자이너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품으로서 건재한 거죠. 디자이너가 연예인이면 안 되는 거죠. 몇 백 년 갈 수 있는 브랜드가 핵심인 거죠.


그럼 브랜드 운영자이자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거죠?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해볼 수는 있는 거잖아요. 과한 꿈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것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제 모든 생활과 비즈니스와 일하는 사람을 선택할 때도 그런 철학과 가치관이 맞는 사람과 일을 해야 하는 거죠. 디자이너는 돈을 쫓으면 절대 안 돼요. 물론 돈을 벌긴 해야 하지만, 그걸 최우선으로 하면 안 되는 거죠. 돈, 명예, 인기 등이 초점이 되면 결코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가 없어요. (다음 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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