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애 SM C&C·BT&I 사장은 남들이 걷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해 성공을 이룩한 여행업계 대표 여성 CEO로 유명하다. 올해 항공권 판매액 예상 매출액만 약 3,300억 원. 삼양사, 대림, BMW, 코카콜라 등 국내외 주요기업 300여 곳을 고객으로 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송 사장은 그 과정에서 ‘접대 No, 광고비 No’의 원칙을 거스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밝힌다. 대신 그녀의 남다른 성공 비결은 ‘긍정과 행복의 에너지’에서 찾을 수 있다. 숱한 위기의 상황에서 긍정은 또 다른 희망을, 행복은 삶의 이유를 선사했다. 물질적 풍요보다는 가족과의 화목한 시간에서, 소소한 나눔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송경애 사장의 이야기는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Interview 정달운 편집장   Editor 박우현   Photographer 강백규




 

수년 전 유력 일간지를 장식했던 한 여행사의 광고가 화제가 된 바 있다. ‘믿을 수 있는 기업체 전문 여행사’라는 카피 아래 밝은 웃음을 띄고 있는 한 여성. 여기까지라면 여느 광고와 별 다를 바 없는 구성이겠지만 그 모델이 다름 아닌 이 회사의 사장이라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지금에야 CEO를 전면에 내세운 광고들이 흔하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이처럼 송경애 SM C&C BT&I 사장은 남들과 다른 길을 걸으며 성공한 여성 CEO이다. 물론 그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터. 오랜 외국 생활과 뛰어난 외모 때문에 의도치 않았던 오해도 숱하게 받아야 했다. 실제 송 사장은 흔한 명품백 하나 가지고 있지 않다고. 술은 전혀 못할 뿐더러 늦어도 밤 10시 반 전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양식보다는 밥과 김치를 더 좋아한다. 이 같은 반전매력에 주변에서는 ‘바른생활 소녀’라는 애칭이 뒤따른다.

감출 수 없는 열정의 에너지

외교관 출신 사업가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상당히 엄격하고 보수적이었다. 이제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젊은 시절에는 청바지조차 입지 못하게 하는 아버지와 사사건건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교환 학생이 되어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하게 된 것도 이 같은 아버지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조신한 여성’이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바람도 송 사장의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졸업 후 미국으로 돌아와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 그녀는 우연히 자신이 고등학교 때 파트타임을 했던 샌드위치 가게 입구에 붙은 ‘For Sale’ 매각 푯말을 보게 되었다. “가게 안을 살펴보니 7년 전 파트타임을 할 당시 나만 부려먹으며 놀기 일쑤였던 흑인 매니저 두 명이 아직도 일하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6만 달러에 가게를 내놨다는 소리를 듣자 갑자기 이 가게를 인수해서 그 매니저에게 복수하고 싶은 묘한 오기가 발동했죠.”

가게의 상권을 분석해보니 썩 나쁘지 않았지만 매출이 심각할 정도로 낮았다. 송 사장은 흑인 매니저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은 탓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가게 주인과 협상을 해 결국 5만 달러에 성사되었죠. 그렇게 제 첫 사업은 피자·샌드위치 가게로 시작되었습니다.” 송 사장은 인수 후 첫 날 점검을 위해 가게에 들어가 매니저에게 자신이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학생이었다는 것을 알려줬을 때 그들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밝혔다. 물론 놀란 것은 매니저뿐만이 아니었다. 샌드위치 가게를 인수했다는 갑작스러운 통보에 아버지는 조신하게 있을 것이지 일을 벌였다며 집을 나가라고까지 말했다고. 그러나 그녀는 ‘성인이니 이제 스스로 돈을 벌어서 독립을 하겠다’며 당당히 맞섰다. 

샌드위치 매장을 새롭게 오픈하며 성실한 한국인 매니저를 고용했다.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켰던 흑인 매니저는 결국 스스로 물러났다. 새로운 직원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서비스를 개선했더니 매출이 점점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밤 12시까지 온 힘을 다해 가게에만 매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샌드위치 매장은 본래 매출의 4배가 넘을 정도로 성공을 거두고 송 사장은 1년 반 만에 인수 가격의 6배에 달하는 30만 달러에 되 팔수 있었다고 한다. 수준 높은 서비스로 기업의 가치를 올릴 수 있었던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경영철학을 수립하는데 밑거름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을 터이다.

열정만으로 시작한 여행사업

송경애 사장이 여행업계에 발을 들인 계기는 상당히 독특하다. 재미교포 1.5세 출신으로, 원치 않는 중매결혼을 피해 한국으로 온 것이 발단이 되었다는 것이다. 흥미롭다는 취재진의 반응에 송 사장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막막할 따름”이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어렸을 때부터 종종 아버지께 ‘딴 짓을 못하게 빨리 결혼을 시키겠다’는 말씀을 듣곤 했어요. 으레 그러려니 넘기던 것이 결혼 날짜까지 찍힌 청첩장을 받는 순간 현실로 다가온 것이죠.” 자신의 감시에서 벗어나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한 것도, 샌드위치 가게를 인수하며 사업가의 기질을 보인 것도 아버지의 눈에는 그저 ‘딴 짓’에 불과할 뿐이었다. 심지어 아버지를 포기시키겠다는 마음에 미스코리아 지역예선 ‘미스 워싱턴’ 선발대회에 참가했으나 이마저도 ‘선(善)’에 그치며 무위로 돌아갔다고. 당시는 ‘진(眞)’ 당선자에게만 한국행 티켓이 돌아갔던 시절. 준비 없이 나간 대회에 선까지 당선되었으니 집안 경사라 할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소기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한 채 오히려 결혼만 재촉한 형국이 되고 말았다. 결국 그녀는 도망치듯 한국으로 향했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고자 집을 나와 차를 몰았어요. 멀리 달라스 공항이 보이자 이끌리듯 들어가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 표를 산 거예요. 그 때가 1986년, 결혼식을 두 달여 남긴 때였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송 사장은 그날로 신라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하루가 지날수록 지갑의 돈은 떨어지고 막막한 현실만이 그녀를 괴롭혔다. “서럽고 답답한 마음에 로비에서 울고 있는데 때마침 호텔 임직원 한 분이 발견하신 거예요. 저의 사정을 들으시고는 고맙게도 일자리를 제안하시더군요.”

그렇게 맡게 된 업무가 신라호텔의 VIP 코디네이터였다. 호텔에 투숙하는 귀빈들을 위한 여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맡게 된 것이다. 송 사장은 이를 계기로 여행업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되었다고 한다.

“아직 여행 자율화가 이루어지기 전인 당시에는 여행 산업에 대한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이었죠. 당연히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인프라도 제대로 갖춰져 있을리 만무하고요.”

‘왜 우라나라에는 외국인을 위한 전문 여행사가 없을까?’라는 문제의식이 결국 송 사장에게 기회로 작용했다. 그 당시 한국에는 외국어, 특히 영어가 가능한 여행전문가가 많지 않던 때라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틈새시장이 보인 것이다. 결국 송 사장은 1987년 자신의 첫 번째 회사인 ‘이태원 트래블 서비스(ITS)’를 설립하게 되었다.

물론 시작은 만만치 않았다. 수중에 있던 단돈 250만 원으로 시작한 사업이었기에 매체 광고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 더욱이 고객이라 할 수 있는 외국인을 서울에서조차 구경하기 힘들었으니 고생길이 훤했다.

“무작정 이태원 거리로 나갈 수 밖에 없었어요 ‘맨 땅에 헤딩’하듯 이태원 거리를 누비며 만나는 외국인들에게 명함을 돌렸어요.” 외국인 회사와 학교, 병원 등 ‘외국인 전용’이라는 표지가 붙은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다. 결국 그녀의 첫 고객이었던 서울외국인학교(Seoul Foreign School) 선생님을 시작으로 외국계 기업의 임원과 엔지니어 등 고객을 한 명 한 명 늘려나갔다. 순수한 열정으로 온 힘을 다한 덕분인지 회사를 차린 지 2년 6개월 만에 ‘항공권 판매액 100만 달러’의 목표를 달성하게 됐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 기업체 전문 여행사로 자리를 잡으면서 지금의 비티앤아이로 성장하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남들과 다른 길로 성공을 향하다

샌드위치 매장을 인수하고 최초의 외국인 대상 여행사를 설립하는 등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도전정신이 송경애 사장의 성공비결이라 할 수 있다. 여행사 설립이후에도 이 같은 과감한 시도는 계속 되었다. 

그 첫 번째로 이태원 여행사를 설립한 초창기 1988년 서울올림픽에 맞추어 외국인 관광객이 대거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 예상하고 준비한 ‘외국인을 위한 숙박 대행업’을 들 수 있다.

“서울시내 대형 호텔에 블록을 지정해 놓고, 예치금을 지불해 방을 미리 렌트하는 사업을 구상했죠. 사실 그전까지는 한국에 ‘블록 요금, 블록 예약’이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이라 호텔 매니저들에게 우리의 아이디어를 설득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송 사장의 예감은 적중했다. 올림픽기간 동안 부족했던 숙박시설 탓에 미리 잡아놓은 호텔들이 모두 매진되어 큰 수익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신생기업에 불과했던 그녀의 회사도 여행사로 자리 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밖에도 1996년 세계 최대여행 전문 그룹 가운데 하나인 HRG(Hogg Robins Group)와 파트너십을 맺어 국내 최초로 글로벌 트래블 네트워크(Global Travle Network)를 도입, 정착시킨 것은 물론 ‘24시간 콜서비스’, ‘서비스비용 후불제’, ‘항공사 제로커미션 정책에 대비한 수수료(Transaction Fee) 시스템’의 국내 최초 도입 등 한발 앞서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비티앤아이는 HRG의 전 세계 100개국 3,000개 지점의 영업망을 통해 토털 여행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었다. 특히 국제적으로 빅 마켓으로 떠오르고 있는 MICE(Meeting, Incentive, Conference and Exhibition) 분야에 대한 인센티브 투어의 선구자 역할을 담당해 국내 ‘기업체 대상 여행 서비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업전문 여행서비스와 MICE 분야를 다루며 회사는 꾸준히 성장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2006년 코스닥 상장을 한 것은 물론 2012년 SM엔터테인먼트와 합병에 성공하며 ‘SM C&C’로 그 외형을 한층 넓혀 나가게 된 것이다. 문화·컨텐츠 분야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중견기업을 찾던 SM엔터테인먼트에게 투명하고 우량한 상장사였던 비티앤아이는 최적의 기업이 아닐 수 없었다. 합병 이후 송 사장은 “기존 B2B 전문 여행서비스는 물론 여행과 한류를 결합한 새로운 모델들을 제시하는 노력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3년 12월에는 소녀시대, 엑소, 슈퍼주니어 등이 릴레이콘서트를 연 ‘SM타운 위크’에 약 1만 명의 외국인 팬을 유치하는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또한 지난해 8월에는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SM타운 라이브’를 관광 상품으로 기획하기도 했다. SM C&C는 ‘SM타운 라이브’공연의 콘서트 입장권, 숙박, 식사, 교통 등을 포함한 패키지 여행상품을 전 세계의 K-POP 팬들을 대상으로 판매했다. 이처럼 한류 콘텐츠를 활용한 관광 상품으로 외국 관광객 유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관광의 날 산업포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류 콘텐츠를 활용한 여행사업은 앞으로 더욱 각광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며, 그 소재도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회사만이 가진 경쟁력으로 여행과 한류 콘텐츠를 결합한 신사업을 꾸준히 발전시켜 나가고 싶어요.” 메르스(MERS)의 영향으로 국내 여행업계가 크게 위축된 상황, 비티앤아이 또한 그 영향을 피해갈 수는 없었지만 B2B 중심의 아웃바운드라는 사업구조의 특성으로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올해 항공권 판매액 매출 또한 약 3,300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며 안정적인 경영상태를 이어나갈 전망이다.


 

최고의 서비스를 향한 열정

학연과 지연 등 소위 ‘정(情)’의 힘을 무시할 수 없는 한국 사회에서 아무런 연줄도 없는 교포출신 여성 사업가의 성공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더욱이 송 사장은 창업이래 ‘접대 No, 광고비 No’의 정책을 꾸준히 고수하고 있다. “끈끈한 연으로 맺어진 고객사가 없다는 것이 오히려 성공의 비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희는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집중하고, 이에 만족하는 고객사들과 꾸준히 거래를 이어가고 있어요.”

서비스 기업으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전문성과 신속성. 이 때문에 송 사장은 ‘one mistake, out’이라는 일념으로 빈틈없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도 그녀는 주요 고객사들의 이슈를 직접 챙긴다. 출근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서비스를 제공받은 기업들과의 피드백을 위해 이메일을 발송하는 것. 그 양이 매일 40~50여 건에 달할 정도라고 한다. 거래처에 직접 방문해 서비스 진행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송 사장의 몫이다. 중요한 고객 프리젠테이션도 직접 참여한다. “창업할 당시부터 해 오던 일을 꾸준히 진행하는 것이죠. 단순히 보고만 받는다면 현장에서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고객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비티앤아이가 제공하고 있는 24시간 고객대응 콜 서비스에 송 사장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업의 특성상 새벽에 외국에서 오는 전화를 받기 일쑤다. 심지어 샤워 중에도 통화를 하다 휴대폰을 물에 빠뜨린 경험도 여러번 이라고 귀띔한다.

열정적인 삶의 에너지 원천은 ‘행복’

성공한 CEO이자 두 자녀의 어머니로서, 또 아내로서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송경애 사장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녀는 그 원천을 ‘행복’이라고 밝혔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부를 축적하신 CEO분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그분들의 얼굴에서 행복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행복하지 않다면 많은 재산도, 높은 명성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아홉을 모으면 나머지 하나를 채우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심일터. 더 큰 성공을 갈망하며 주변을 배려하지 못하고 가족에 소홀한 여느 CEO를 보며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송 사장은 성공보다 큰 가치를 가족과의 행복에 두고 있다. 집안의 중매를 뿌리치고 결혼한 지금의 동갑내기 남편은 20대 초반 펜팔로 만나 연애 10년 만에 결실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역시 교포였던 남편은 송 사장을 위해 미국시민권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자전거는 물론 심지어 그네도 잘 타지 못할 정도로 운동감각이 부족하지만 남편과 즐길 수 있는 스포츠댄스 만큼은 수준급을 자랑한다. 어엿한 성인이 된 두 아들도 그녀의 큰 자랑거리다. 

“바쁜 시간 때문에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지만 그때만큼이라도 충분한 사랑을 주기위해 노력했죠. CEO 여러분도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핑계보다는 가족 중에 누가 아파하는지,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한지 한번쯤 관심을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요?” 얼마 전 가족들과 함께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다는 그녀는 휴대폰에 저장된 당시의 사진을 취재진에게 보여주었다. 티 없이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와 가족들의 모습이 한없이 부럽기만 했다. 송 사장은 자신의 행복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직원들의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직원은 그녀에게 또 다른 가족. 고객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과 같이 직원들을 가족처럼 아끼고 돌볼 때 더욱 큰 결실을 가져다 줄 것이라 믿는다. 이 때문에 그녀는 ‘따뜻한 리더십’, ‘엄마 리더십’을 강조한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리더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직원들이 행복해야 기업도 행복한 것 아니겠어요?” 비티앤아이는 여행업계에서는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다양한 가족친화적 경영정책으로 유명하다. 워킹 맘들을 배려한 탄력근무제, 육아 휴직제, 직원 자녀 학자금 지원, 육아로 인한 퇴사직원 재입사 기회 확대 등을 적극 펼치는 것은 물론 저녁 회식 없는 기업문화, 직원들의 자기 개발 지원, 금연 캠페인, 부모님 초청 해외여행, 부부의 날 행사, 임직원 자녀를 위한 키즈데이 등 직원들이 가족과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세심한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덕분에 이직률이 높은 업계 현실에서도 비티앤아이에는 장기근속 직원들이 유독 많다고.

나눔은 나의 행복

그녀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이사회 활동은 물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1억 원 이상 기부자 클럽인 ‘아너소사이어티’의 첫 여성 경영인 회원으로 등록하는 등 활발한 나눔 기부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송경애 사장은 “사회에 공헌한다는 특별한 사명감보다 나눔을 통해 느끼는 소소한 행복감에 의미를 둔다”고 밝혔다.

나름 한 기업의 CEO라지만 흔한 명품백 하나 가지고 있는게 없다고. 입고 사용하는 옷과 핸드백, 구두 또한 이태원, 강남역 지하상가, 아울렛 등을 지나치다 마음에 드는 상품을 구입한 것들이다. 그녀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보석, 명품과 같이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도 나눔은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다. “적어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성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나눔을 권했어요. 남을 돕는 즐거움을 안다면 소박하고 검소한 가운데 성실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요.”

송 사장과 오랜 친구 사이인 CEO SUITE 김은미(Mee Kim) 대표는 그녀를 보며 ‘오드리 햅번’을 떠올린다고 했다. “뛰어난 재능과 미모, 성공. 무엇보다 신이 내려주신 축복을 주변과 넉넉히 나누기를 즐긴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적지 않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듯해요. 햅번이 좋아했던 ‘Sam Levenson’의 시(詩)가 송경애 사장에게 딱 어울리는 것이 우연만은 아닐 것입니다.” ‘날씬한 몸을 가지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자태를 갖고 싶으면 옆에 누군가와 같이 걷고 있다고 생각해라.’ 화려한 외모만큼이나 아름다움 마음가짐. 오직 실력만으로 작금(昨今)의 자리에 오른 송경애 사장의 성공스토리는 비단 후배 여성 CEO만이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경영인들이 다시금 되새겨 봐야 할 교훈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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