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상속세율과 복잡한 가업상속공제제도, 그리고 규제 위주의 정부 정책, 경영권 승계에 대한 부정적 시각 등으로 인해 한국에서의 가업승계가 어렵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처럼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공적인 가업승계를 이루거나 전 재산을 재단에 기부함으로써 100년 기업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모범적인 사례도 적지 않다. 

Editor 도경재 

 

가업승계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주인공 가운데 하나가 국순당을 창업한 배상면 회장이다. 승계를 고민하던 배 회장은 어느 날 자신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았다. 그 결과 자신에게는 본인이 창업한 회사와 본인이 알고 있는 술 제조법, 그리고 자신의 이름 이렇게 3가지가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회사·기술·브랜드 승계 성공한 3남매
배상면 회장은 장남에게는 자신이 만든 회사인 국순당을 물려주고, 둘째인 딸에게는 막걸리 제조법을 전수하고, 막내아들에게는 자신의 이름 ‘배상면’이라는 브랜드를 남겨주었다. 이후 세 자녀는 각각 자신이 물려받은 유산을 바탕으로 가업을 승계했다.
아버지로부터 국순당을 물려받은 장남은 당연히 가업승계자가 되었고, 막걸리 제조법을 물려받은 딸은 이 기술을 바탕으로 배혜정도가를 설립하여 가업을 승계했다. 아버지의 이름을 브랜드로 물려받은 막내아들은 배상면주가를 설립함으로써 가업승계에 성공했다. 3남매가 민속주와 관련된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막걸리가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게 되면서, 막걸리를 취급하지 않던 국순당과 배상면주가에서도 막걸리를 출시하자 언론에서는 형제의 난이라 언급되었다. 그러나 창업주인 배상면 회장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길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사회환원·착한 지배구조로 100년 눈앞
1926년 창립되어 92년째를 맞이한 유한양행은 창업주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다른 의미의 모범사례이다. 유한양행을 창업한 유일한 박사는 1962년 제약업계 최초로 주식을 상장하고, 이어서 당시 유한양행에 다니던 자녀와 조카들을 모두 해고시켰다. 1969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한 그는 본인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유 박사가 세상을 떠난 지 47년째를 맞이하는 유한양행은 ‘주인 없는 회사’임에도 업계 선두를 지키고 있다. 유한양행의 지배구조는 독특하다. 유한양행의 최대주주는 유한재단(공익사업, 15.4%)과 유한학원(교육사업, 7.57%) 등 공익법인과 기관 등이다. 연세대가 보유한 3.70%의 지분은 유일한 박사가 개인재산이던 주식 12,000주를 기증한 것이다. 유한재단과 유한학원, 연세대는 모두 유한양행의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주인 없는 유한양행에는 불문율이 전해온다. 어떤 사람이라도 같은 직무를 두 번까지만 맡을 수 있도록 한 것으로 ‘투텀룰(Two-Term-Rule)'이라 불린다. 전문경영인인 사장 역시 예외가 아니다. 상법상 사장 임기인 3년에 한번 더 연장해 최대 6년까지만 가능하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의 결과를 위해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최근 이해진 전 네이버 의장이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변대규 휴맥스 회장에게 의장직을 넘겼다. 지분 4.64% 보유로 네이버의 3대 주주인 이 전 의장은 최대주주와 이사회 의장, 개인 최대주주가 서로 분리되어 견제와 균형을 이뤄지기를 바란다. 드물지만 모범적인 기업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만큼, 한국 기업의 폐쇄적·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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