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보릿고개는 불과 40여 년 전 우리가 겪었던 현실이었다. 당시는 절약이 전 국민이 지켜야 할 절대 명제였다. 경제발전과 더불어 소득이 증대하면서 소비가 미덕이 되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를 외치며 부지런히 일하고 근검절약을 실천하던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을 아랫세대 젊은이들로부터 찾을 수 있다.  

Editor 도경재 

1960~1970년대에 절약은 삶 그 자체였다.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이었지만, 적어도 50대라면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국민볼펜이라 불리던 M사의 153 모델 볼펜자루는 볼펜으로서의 수명을 다하고서도 오랫동안 재활용되었다. 몽당연필 뒤에 끼워서 연필의 마지막 부분까지 남김없이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어린학생들로부터 어른까지 60~70년대 연필을 사용했던 이라면 대부분이 공유하고 있는 추억일 것이다.


‘장기 불황’ 부추긴 신3저 현상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저(低)달러(엔고), 저유가, 저금리라는 국제시장의 ‘3저 현상’으로 인해 한국 경제는 호황을 맞이하게 된다. 경제호황에 힘입어 소득이 올라가고, ‘마이 카(my Car)’ 붐이 일면서 내수시장도 활기를 띠게 되었다.
최근 국제시장은 80년대와 유사한 3저 현상을 보이면서 ‘신(新3)저’라 불린다. 그러나 신3저는 우리는 물론 글로벌 경제에 공포와 쇼크로 작용하고 있다. 80년대의 3저가 기업의 경쟁력 제고와 가계의 실질소득을 늘리는 순기능으로 작용한 반면, 오늘날 신3저는 저성장, 좀비기업·가계부채 증가, 소비위축 등 정반대의 양상으로 보이고 있다.
저금리는 투자나 소비증대로 이어지지 않아 경기회복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가계부채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국제 수요의 부진으로 비롯된 저유가 역시 생산과 투자, 또는 소비와 구매력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저유가로 인한 산유국의 재정위기는 기간산업 축소를 불러왔고, 이는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경기회복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6년 국제수지를 보면 대한민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986억8천만 달러(한화 약 111조원)에 달한다. 그러나 이는 저유가의 덕이 크기도 했지만, 경제가 좋지 않아서 생긴 불황형 흑자이다. 나라뿐 아니라 2016년 가계도 흑자라는 통계청의 조사가 있었지만, 씀씀이를 줄인 결과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소득은 0.4% 감소했고, 가계부채 또한 1,300조 원을 돌파했다. 여기에 국내외의 여러 악재로 인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낀 국민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해 가계지출이 월 평균 0.5% 감소했는데, 2003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한국은행의 소비자 심리지수는 지난 2월 94.4로 지난해 11월(95.7)이후 4개월째 기준치(100)를 밑돌고 있다. 소비자심리지수가 100 미만이라는 건 경기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가계가 더 많다는 뜻이다.
소비가 늘지 않으면 경제는 계속 어려울 수밖에 없다. 국가 경제는 소비를 필요로 하지만, 가계는 생존을 위해 절약이 필수불가결한 상황이다. 절약과 소비, 두 가치가 정면충돌하고 있는 것이 우리 앞에 펼쳐진 현실이다.

짠테크로 돌아온 절약 정신
국내외의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개인들은 생존을 위해 60~70년대에 유행하던 초절약법을 다시 찾게 되었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현재를 견디고,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절약과 저축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40대 중반이후라면 한번은 들어봤을 법한 일상생활에서의 절약법이 21세기에 ‘짠테크’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생활 속 물 절약방법, 보일러 난방비 아끼는 방법 등 경기가 좋을 때는 눈에 띄지 않던 절약법이 유행이 되어 돌아왔다.
장기불황이 이어지면서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 그만큼 개인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기에 ‘초(超)절약법’을 찾아나선 것이다. 60~70년대처럼 잘 살아보기 위해서 절약하는 것이 아니라, 아끼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에까지 내몰렸기 때문에 벌어진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런 현상을 반영하듯 인터넷에서 ‘짠돌이카페’를 검색하면 수많은 짠돌이·짠순이를 만날 수 있다. 절약비법도 다양하다. ‘누군가를 만나러 집에서 나가기 전에 미리 밥을 먹고 나가라. 식비를 아낄 수 있다’ ‘광고를 볼 때마다 1원씩 적립해주는 스마트폰 앱을 깔고, 모은 돈을 현금처럼 사용하라’ 등 시대변화에 따라 새로이 등장한 비법도 눈에 띤다.
한편 사생활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임에도 야근을 마다 않는 이들도 있다. 야근을 하면 회사에서 저녁을 먹여주기에 식대를 아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불필요한 지출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봉투살림법·가계부 등 전통비법 재등장
세대가 바뀌었음에도 아끼고 잘 쓰는 생활의 지혜는 전통적인 비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생활 속 짠돌이 되는 방법이 가장 전통적인 비법은 ‘물 아끼기’이다. 화장실에서 사용되는 물의 양을 줄이기 위해 물탱크에 벽돌(또는 물을 담은 페트병)을 넣어 물탱크에 담기는 물의 양을 줄이는 방법이 다시 등장했다. 또 사용량에 따라 올라가는 상하수도요금을 줄이기 위해 물을 조금씩 흘러내리게 하는 방법으로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사용하는 ‘전통의 물 절약 비법’ 활용도 늘고 있다.
전통적인 절약 방법 가운데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며, 불필요한 소비를 원천봉쇄해 온 방법으로는 ‘봉투 살림법’이 있다. 매월 기본적으로 지출되는 저축과 보험, 통신비 등을 제외한 한달치 생활비를 미리 30개의 봉투에 나누어 각각 넣어두고, 날짜에 맞춰 봉투에 든 돈만 쓰는 방법이다. 봉투살림법으로 지출은 줄이고, 하루하루 사용 후 남은 돈은 저축을 하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다.
가계부 쓰기 역시 전통적인 방법으로, 불필요하게 사용되는 돈의 흐름을 막을 수 있다. 어머니들이 사용하던 종이로 된 가계부가 아니어도 된다. 시대에 맞게 스마트폰에서 사용 가능한 가계부 앱을 이용하면 내가 쓰는 모든 돈의 흐름을 한꺼번에 알 수 있기에 계획적인 지출에 큰 도움이 된다.
자동차 등록대수가 2,000만 대를 넘어선 요즘에는 자동차 관리를 잘 하는 것도 절약의 한 방편이다. 자동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름값, 세금, 보험 그리고 정비비용 등 많은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차계부 작성도 유용하다. 차계부 앱을 이용하면 주유비용과 연비는 물론, 엔진오일 교체 등 정비, 그리고 세금과 기타 비용 등에 대한 관리가 편리하다. 한편 정확한 차계부의 작성은 중고차 거래시 신뢰를 주기에 유리하다.
식료품비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는 ‘냉장고 파먹기’(약칭 냉파)가 관심을 끌고 있다. 냉파는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를 깨끗하게 비울 때까지 장을 보지 않는 것이다. 냉파를 활용하면 냉동실에 처박아둔 식재료의 낭비도 막고, 음식물 쓰레기도 줄일 수 있다. 이의 실천을 통해 식재료 구입비용의 절약은 물론이고, 냉장고의 효율을 높여 전기요금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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