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는 봄도 여름도 온전히 맞이하지 못했다. 때만 되면 개화 소식을 앞 다퉈 알려주던 뉴스는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 보도에 묻혔고, ‘기온이 몇 도였고 첫 더위가 전년 대비 며칠 빨랐다’식의 숫자놀이 보도도 집단감염으로 인한 확진자 누적율 수치 앞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라이프스타일은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빠르게 비대면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막연한 걱정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테크놀로지 시대로 접어들어서도 소통과 공감을 더 강조했던 우리다. 그렇다면 언택트 시대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줄 것은 과연 강력한 비접촉일까? 아니면 보다 깊은 소통일까?


Un-Contact vs Deep-Contact

‘불편한 소통보다는 편리한 단절을 선택할 것이다’, ‘현대인의 진화된 욕망일 것이다’라고 추측하던 비대면, 언택트(Un-Contact)는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을 빌어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다. 단어 그대로 해석하자면 언택트는 비대면, 즉 대면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비대면은 소통하지 않는 게 아니라 소통의 방식이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바뀐 것이다.
<언컨택트>의 저자 김용섭은 인터뷰를 통해 “접촉은 줄이고 접속은 늘린다는 개념의 언택트는 연결되는 타인을 좀 더 세심하게 선별하겠다는 결정이며, 언택트가 가속화될수록 투명성과 수평성이 높아져 밀도 높은 콘텐츠, 진정한 실력자만 세상에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언택트 시대라 부르지만 내용면으로는 불편하거나 부득이한 관계를 줄이고 자신과 취향이나 코드가 잘 맞는 사람들과의 컨택 포인트를 늘리겠다는, 다시 말해 더 깊게 들여다보고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딥택트(Deep-Contact)의 의지가 내재돼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동안 전보다 더 오랜 시간을 집에서 보내야 하는 소비자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구매 행동을 보였다. 홈쇼핑을 포함한 온라인 구매가 증폭된 것은 당연하고, 구매 아이템이 달라졌다. 최근 몇 달 동안 전 세계인들이 인터넷 검색엔진을 통해 가장 많이 검색한 키워드는 ‘라운지웨어’, ‘양초’, 그리고 ‘파자마’였다. 타의에 의한 언택트 상황에서 소비자는 자신을 들여다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공감하고 있다. 딥택트, 다시 말해 ‘적극적으로 행복하기’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That Easy? 
EBS에서 오랫동안 방영했던 <그림을 그립시다>라는 프로그램을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진행자인 밥 아저씨는 필자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쉽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었다. 나이프에 물감을 묻혀 빈 캠퍼스 위를 쓱쓱 몇 번 긁어주면 눈 덮인 산이 되고, 붓으로 툭툭 찍어주면 금방 나무가 그려지고 숲이 완성되었다. 밥 아저씨는 아무렇게나(적어도 필자가 보기엔 그랬다) 그려도 멋진 그림이 되었다.
그림을 그리다 말고 밥 아저씨는 종종 화면 너머 우리에게 툭 하고 질문 아닌 질문을 건넨다. “참 쉽죠?” 쉽게 그리는 아저씨를 따라 그림을 그리려다 전혀 쉽지 않음을 깨달았던 어린 내게 그가 던지는 그 질문, ‘쉽지 않느냐’는 말은 놀림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진정한 의미를 알 것 같다. 그것이 응원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는 걸 말이다.
물론 쉽지 않다. 계속해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2주간의 자가 격리를 견디는 것도, 학교에 가지 못하는 자녀와 24시간 함께 해야 하는 것도….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나 스스로를 격려하고, 가족과 동료를 응원하며, 코로나19 현장에서 애쓰는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 그게 지금을 가장 쉽게 견디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나를 위한 공감

우리는 지금 타의에 의한 ‘잠시 멈춤’을 하고 있다. 가장 소극적인 대응이 최선의 대응일 수밖에 없는 지금, 내 안에 침잠해 보자. 타인과의 거리를 넓히는 대신 내 자신과의 거리는 좁히자. 공감은 꼭 타인을 위해서만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나를 살피고, 우리를 살피고, 주변을 살피자. 그동안 충분히 애쓰며 살아온, 그리고 지금 이 어수선한 세상을 살아내느라 애쓰고 있는 우리 자신을 다독여 주자. 연록색깔이던 신록이 퍼런 기운을 보태며 무성해져 가고, 땡볕 아래 지치지 않고 벼가 익어가는 이 여름을 스스로에 대한 딥택트, 조탁(彫琢)의 시간으로 만들어 보자. So Even More, Focus on Myself.  




 

 

송지후    
한성대학교 디자인교양학부 교수 / 한국산업인력공단, 서울산업진흥원, 한국패션산업협회, 롯데백화점 자문 / 코오롱, LF, 제일모직 등 맞춤형 인하우스 기업교육 / 디자인학 박사, 교육학 박사과정 / 前 연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겸임교수, 前 연세 패션&라이프 최고위과정 책임교수, 前 장안대학교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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