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sher's Letter

손홍락
발행인·대표이사 

3월의 코앞까지 와서야 한파의 기세가 누그러졌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매서운 경제 환경마저 겹쳐서 마음이 얼어붙기 직전, 문 두드린 훈풍의 예고가 반갑습니다. 온기의 힘으로 누그러져야 할 게 비단 날씨만일까요. 중대재해처벌법의 50인 미만 사업자 확대 적용 유예안에 평정심을 잃고 성난 마음을 잠시 누그러뜨리며 혜안을 부릅떠야 할 계절이 찾아옵니다. CEO의 이성을 바탕으로 가장 지혜로운 선택을 기대합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각종 데이터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도 판단을 헛갈리게 만드는 것은 풍문입니다. 어떤 시각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팩트, 갈수록 교묘해지는 선동의 기술에 농락당하지 않으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산업의 기반을 좌우하는 정책 결정에, 현장의 문제점을 정확히 아는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오피니언 리더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표피적인 감성의 언어가 난무하는 북새통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힘은,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각에서 비롯됩니다. 입에 발린 약속이 아니라 ‘진짜 의지’를 찾아낼 수 있어야 국가와 기업의 미래 경쟁력이 확보됩니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ICT 전시회 ‘CES 2024’에서 우리 기업들의 활약은 눈이 부실 정도였습니다. 글로벌 ICT 산업의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이 전시회에 대한민국은 미국,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기업들이 참가했고 310개가 걸려있는 전체 혁신상의 46%를 휩쓸었습니다. 특히 올해 전시회의 가장 큰 화두라고 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분야에서 28개의 혁신상 중 16개가 우리 기업들의 차지였습니다.
이처럼 눈부신 혁신의 결과물들을 글로벌 무대에 선보이며 기술력을 자랑한 우리 기업들의 정부 지원 현주소를 들여다보면, 한껏 치솟았던 어깨 힘이 빠지는 것을 체감합니다. 도전정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타트업들이 창의와 혁신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만들어주기는커녕, 각종 규제의 장벽으로 곳곳에 지뢰밭을 만들어놓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금융, 바이오·의료, 헬스케어 등 부가가치가 높은 업종에서의 규제 걸림돌 때문에 유니콘 기업을 배출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합니다.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느냐보다 정책의 허가를 얻어낼 수 있느냐가 고민의 관건이라면 제대로 된 스타트업 조성 환경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나마 지난 2019년 도입된 ‘규제 샌드박스’ 제도 덕분에 새로운 사업이 규제에 막힐 때 최대 4년간 임시 허가가 가능해져 약간의 숨통이 트였지만 말 그대로 ‘임시’ 변통에 불과합니다. 규제의 근본적 해소가 담보되지 않으면 당연히 스타트업의 젖줄인 투자가 막히게 됩니다. 실제로 제도가 시행된 이래 임시 허가를 받은 기업의 수는 1,000여 개에 이르지만 완전히 규제가 해소된 사례는 2022년 말 기준 130여 개에 불과합니다. 기업가 정신의 실종을 한탄하기 전에 창업 의지를 막는 환경부터 전면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이처럼 어려운 여건에서도 정진의 행보를 늦추지 않는 기업 CEO들에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봄의 길목에서 되짚어본 자성, 그리고 여전한 경의로 3월호 첫 페이지를 열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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