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de Report

EU 집행위원회는 〈제조물책임지침〉에서 결함의 대상인 제조물과 손해의 범위를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안을 채택했다. 또 제조물의 결함을 보다 용이하게 입증할 수 있게 하는 등 무과실책임 법리를 현실에 맞게 보강해나가고 있다. 

‘제조물 책임’은 제조되거나 가공된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소비자에게 발생한 손해에 대해 제조업자가 배상해야 하는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이와 관련한 사항을 「제조물책임법」으로 정하고 제도화하고 있다. 제조물 책임제도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한 손해만 입증하면 제조업체의 과실이나 고의성에 관계없이 그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고 제조업체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제조물의 안전성 확보와 기술 향상에 노력함으로써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유인책으로 작용한다는 의의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계기로 「제조물책임법」이 개정돼 2018년 4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때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었고 피해자가 제조물의 제조업자를 알 수 없는 경우에 그 제조물을 영리 목적으로 판매하거나 대여하는 등의 방법으로 공급한 자에게 손해를 배상하도록 했다. 이외에도 인과관계 추정조항을 추가해 소비자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반면 제조업체 등의 책임은 강화하는 쪽으로 보강돼 왔다. 
그런데 최근 제4차 산업혁명이라 일컬을 정도로 일대 변혁이 일면서 제조물 책임제를 현실적으로 보강해야 할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제조물의 결함에 대한 입증 책임 문제가 그렇다. 기술집약형 제품의 경우 소비자가 결함과 손해발생 간의 인과관계 및 추정을 위한 증명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조사가 결함이 없음을 입증하도록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법개정이 요구되고 있다. 자동차 급발진 결함에 대한 입증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인공지능의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인공지능 법·제도 규제 로드맵〉에 따라 ‘인공지능의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방안’과 관련해 법무부와 공동으로 「제조물책임법」 개정 필요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다.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도 ‘제조물’
제조물 책임에 대한 제조업체의 책임을 강화하고 그 대상과 손해의 범위를 확대하는 움직임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2022년 9월 EU 집행위원회는 결함의 대상인 제조물과 손해의 범위를 확대하고 제조물의 결함을 보다 용이하게 입증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등을 골자로 하는 〈제조물책임지침 개정(안)〉을 채택했다. 이 안의 입법 여부가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기존보다 높은 수준의 소비자보호와 책임 소재의 범위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에서 EU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시사점이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3월 20일에 발간한 〈외국 입법·정책 분석〉을 통해 EU의 이번 지침 개정(안)이 가진 시사점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르면 EU의 이번  〈제조물책임지침 개정(안)〉은 디지털 및 순환경제 제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무과실책임 법리를 반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소비자의 안전뿐만 아니라 ‘그린 및 디지털 전환(The green and digital transition)’에 따른 신기술과 산업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EU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 대상으로 자원효율적(resource-efficient)이고 친환경적인 제품은 물론 디지털·데이터·AI 등 신기술을 아우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지침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제조물의 범위를 수리·재제조된 제품부터 무형인 소프트웨어·데이터 등까지, 손해의 범위를 의학적으로 인정된 심리적 피해나 데이터의 손실까지 확장
• 제조물의 결함을 보다 용이하게 입증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증거공개 요청권 등)를 마련하고 있는 등 높은 수준의 소비자보호 추구
• EU 역내에 위치하지 않는 경우에도 온라인 플랫폼 포함해 수입·유통하거나 관련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에게까지 적용
• 손해배상의 범위 제한 조항 삭제

EU의 〈제조물책임지침〉이 이같은 개정(안)으로 입법된다면 EU 역내시장에 진출하는 우리나라 제조업체 등에 미칠 영향이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는 EU 지침 개정(안)의 동향을 유의깊게 살펴보고 법무부 등 관계 부처와 긴밀하게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향후 정부와 국회가 산업계와 정보를 공유하거나 의견을 수렴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이번 EU 지침 개정(안)이 우리나라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 정책적인 대응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제조물책임법」에도 제품의 기술적 복합으로 인한 입증책임의 어려움을 합리적으로 완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ditor 강창대  Cooperation 국회입법조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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