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nt of View

민희식   
크리에이티브워크 대표 /
에스콰이어 前 편집장 

일반인을 대상으로 아트테크 강의를 할 때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명화 한 장 가격이 웬만한 집 한 채 가격인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감에 금가루를 뿌린 것도 아닌데 난해한 그림 한 장에 어마어마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사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백남준 작가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때로는 그 돈으로 차라리 가난하고 굶주린 이웃을 돕는 것이 훨씬 값진 일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난감한 마음과 함께 아트테크에 앞서 인문학적 이해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6천억 원의 가치가 있는지 인문학적 관점에서 논리적 설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03년도에 개봉한 크리스천 베일 주연의 <이퀄리브리엄>이라는 영화는 ‘인간의 감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 작품이다. 장르로 보자면 SF이지만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 사회가 배경이다. 
영화 속 미래의 독재자는 인간에게 ‘프로지움’이란 약물을 주기적으로 투입해 인간이 감정을 못 느끼도록 통제한다. 아울러 인간에게 감정을 유발하는 도서, 미술품, 음반을 소유하거나 감상하는 행위를 철저히 단속한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기 위함이다. 극 중 정부 요원인 크리스천 베일은 인간의 감정을 억제하는 프로지움을 거부하는 저항 세력과 예술작품을 색출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프로지움을 중단하면서 억눌렸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감정은 인간을 생각하게 만들고 생각은 인간을 행동하게 만든다.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사고(思考)를 의미하며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인류가 만물의 영장으로 진화하며 고도의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거짓말’을 꼽는다. 지구에 존재하는 동물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된 인간은 인지적 혁명을 거치면서 신화를 만들어 냈고 급기야 종교를 탄생시켰다. 보이지 않는 신을 믿기 시작한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해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며냈고 픽션이라는 문학 장르를 탄생시켰다. 탈 인상파 화가들은 실재하지 않는 상상 속 이미지를 자신의 캔버스에 투영해 작가주의적 경향성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결국 인간만의 특징을 규정짓는 종교와 예술은 허구에서 출발한 셈이다.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과 마주쳤을 때 서로 죽이지 않고 공존하기 시작한 시기는 인류 역사상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현대인은 언제부턴가 경쟁 관계에서도 서로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상은 날마다 세계 도처에서 전쟁과 범죄를 통해 살인이 벌어진다. 복잡한 대도시는 신호체계와 시스템 속에서 평화롭게 잘 굴러가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곳곳에서 신호 위반은 다반사고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하는 차량도 자주 등장한다. ‘그럼에도 나는 무사할 것’이라는 믿음은 모두 인류의 가정(假定)에서 출발한다. 
급기야 오늘날 인류는 메타버스(Metaverse)와 같은 가상현실을 만들었고 그 속에서 가상(假想)으로 가상(假像)을 창조한다. 결국 인간의 거짓말이 가상 세계에 이르는 인류 문명을 꽃피운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예술가의 허구와 상상을 통해 만들어진 예술작품이 지니는 가치는 단순히 종이 한 장, 물감의 값으로 규정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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