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Attitude

민희식
크리에이티브워크 대표 / 에스콰이어 前 편집장 

2006년 영국 BBC 방송은 ‘파리 신드롬(Paris Syndrome)’이라는 생소한 정신적 증상을 보도한 바 있다. ‘파리 신드롬’이란 로맨틱한 환상을 갖고 파리를 찾은 젊은 일본 여성들이 파리의 실체를 경험하고는 너무 실망한 나머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 증상을 일컫는 말이다. 낡고 더러운 지하철역, 주문도 받으러 오지 않는 무례하고 불친절한 레스토랑 종업원, 외국 관광객들로 바글거리는 파리 거리를 보고 정신적 공황 상태를 호소하는 일본 관광객들이 늘자, 일본대사관에서는 ‘파리 신드롬’으로 고통받는 자국 관광객들을 위한 24시간 핫라인을 개설했다는 내용이 BBC 방송을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2022년 현재 대한민국 서울에서는 파리 신드롬과는 정반대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미국 CNN 방송은 ‘넷플릭스 효과(Netflix Effect)’라는 아주 흥미로운 내용을 보도했다. 넷플릭스 효과란 북미나 유럽 출신의 젊은 여성들이 K-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잘생기고 로맨틱한 한국 남성과 사귀고 싶어 무작정 한국 여행에 나서는 현상을 말한다. 이들의 특징은 다른 아시아 국가 여성들과는 달리 관광에는 관심이 없고 낮에는 호텔 방에서 K-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해가 지기 시작하면 ‘모험’에 나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게 CNN의 주장이다. 
문제는 한국 남자들이 모두 현빈이나 공유처럼 비주얼이 탁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환상은 깨지기 시작한다. 내가 1995년 뉴욕에 첫발을 디뎠을 때를 돌이켜보자면, 마주치는 다수의 평범한 미국인들은 늘씬한 할리우드 배우와는 달리 과체중과 비만에 시달리고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가 만들어놓은 판타지는 현실과 괴리감이 클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 효과의 또 다른 환상은 K-드라마 속 한국 남성들은 섹스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도 예의가 바르고 인내심이 강하다는 오해다. 서양 여자들 입장에서는 대놓고 섹스에 집착하는 서양 남자들에 비해 달콤한 멘트로 뭇 여성들의 심금을 울리는 드라마 속 한국 남자들이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일부 한국 남자들은 서양 여성들이 성적으로 개방적이라는 편견 때문에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섹스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증언이다. 그들이 머나먼 한국까지 와서 얻은 교훈이라면 세상 남자들은 어딜 가나 다 똑같다는 것이다.  
20년 전 일본 여성들이 파리 여행에서 느꼈던 실망만큼은 아니겠지만 대한민국을 찾은 서양 여성들이 평범한 한국 남자의 실체적 진실과 마주하면서 어지간히 실망감을 안고 돌아갔으리라 예상된다. 그런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던 그들 중 대부분은 다시 한국을 찾는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상적인 상대를 찾지 못한 건 자신들의 탓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결국 넷플릭스 효과가 모두 편견과 과장인 것은 아니다. 외모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마초이즘에 빠져 SNS 계정에 월척 인증샷만 올려대는 대다수의 영미권 남자들이나 헬스로 다져진 보디 프로필 사진만 잔뜩 올려놓고 이성을 유혹하는 유럽 남자들에 비해 한국 남자들은 여성들과 정서적으로 공감하려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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