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in Interview, 최재훈 엔조최재훈 대표

누구에게나 로망은 있다. 특히 결혼을 앞둔 신부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레스를 꿈꾸기 마련. 차별화된 디자인과 양질의 소재, 브랜드 신뢰도까지. 엔조최재훈의 드레스는 뭇 신부들이 선망하는 드레스로 손꼽힌다. 국내 웨딩 산업 전반에 혁신을 가져온 최재훈 대표를 만나보았다. 

명품의 사전적 정의는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며, 상품적 가치와 브랜드 밸류를 인정받은 고급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리미엄 드레스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엔조최재훈은 명품이라 불릴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브랜드의 시작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의류학 전공 후 엔조최재훈 브랜드 설립까지의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의류학을 전공한 후 취직할 시기가 됐을 때 대한민국은 IMF의 위기 속에 놓여있었습니다. 디자이너를 꿈꿨지만 국내 패션 브랜드 중 디자이너를 채용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죠. 시선을 돌려 대기업이 운영하는 백화점에 입사한 후 해외 명품을 담당하는 책임자로 일했습니다. 덕분에 해외 디자인 상품과 시장에 대한 시각을 넓힐 수 있었지만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 당시 주변 사람들의 결혼식장에 갈 때면 웨딩드레스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그 드레스들이 제가 백화점에서 다루던 해외 명품의 디테일에 못 미치는 점이 못내 아쉬웠어요. ‘국내 시장에서도 조금 더 세련되고 아름다운 드레스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죠. 그때 드레스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어요. 이후 디자인 스쿨에서 드레스 디자인 공부를 하고 국내 드레스숍에 입사해 실무 경험을 쌓았습니다.
드레스의 매력은 무궁무진합니다. 드레스는 고급 맞춤복을 뜻하는 오트쿠튀르(Haute couture)의 영역에 해당하는데요. 대량으로 생산되는 기성품과는 달리 한 벌 한 벌이 작품인 셈입니다. 드레스를 만드는 것은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작업이자, 디자이너가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작업이에요.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백화점을 그만두는 것을 무모하다고 여기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도전의 연속이었지만 과감한 결정에 대한 후회는 없습니다. 수십 년간 조직 생활을 하는 대신 제가 꿈꾸던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으니까요.

엔조최재훈은 소위 ‘비즈 맛집’으로 정평 나 있습니다. 그만큼 드레스 소재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계실 텐데요, 소재에 관해 차별화된 전략이 있을까요?
웨딩드레스는 다른 기성복에 비해 다소 보수적인 디자인이 많습니다. 결혼이라는 특별한 이벤트에 어울려야 하고, 웨딩홀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예식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요즘에는 신부들이 웨딩 촬영을 할 때 유색 드레스나 디테일이 다양한 디자인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결혼식 당일에는 ‘신부다움’을 잃지 않는 디자인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드레스 디자인에 차별화를 둘 수 있는 건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으로 보기에는 엇비슷해 보이더라도 드레스에 어떤 비즈와 자수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실물의 느낌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죠. 저희는 드레스 제작을 ‘모든 것을 쏟아붓는 작업’이라고 표현합니다. 디자인의 완성도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는 의미인데요. 제작 비용을 따지기보다는 완벽한 작품을 만들기 위한 요소들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합니다. 극대화된 반짝임을 위해 스와로브스키의 정품 비즈를 사용하고, 독점 계약된 자수업체와 협업해 원하는 디자인을 표현하고 있어요. 또한 해마다 파리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원단 전시회 ‘프리미에르 비종(Premiere Vision Paris)’에 참가해 새로운 소재를 발굴합니다. 명품을 만드는 건 작은 디테일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카피 제품들이 생겨나 직원들과 함께 속상해하기도 하지만, 결국 소비자들이 브랜드의 가치를 인정해주더라고요.

엔조최재훈은 드레스를 선택하는 신부를 위해 ‘오픈 드레스숍’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다소 폐쇄적인 웨딩 업계에서 시스템 개선을 감행한 이유가 있을까요?
웨딩 업계에는 일반적인 시장 원리와 다소 어긋나는 관행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신부가 드레스를 직접 보고 고르지 못하는 것도 그중 하나였죠. 이는 대여 문화가 만들어낸 독특한 판매자 중심의 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요. 예컨대 많은 신부가 같은 날, 같은 드레스를 입고 싶어 한다면, 드레스숍은 계속해서 해당 상품을 만들어내야만 합니다. 하지만 애초부터 드레스를 숨겨두고 상담을 진행한다면 드레스숍에 유리하게 상품을 추천할 수 있게 되겠죠. 저는 브랜드의 운영이 투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해요. 처음 드레스를 매장에 전시했을 땐 내부적으로 직원들의 반대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런 크고 작은 움직임이 업계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많은 숍이 드레스를 오픈해두고 있고요.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지만 전반적인 드레스 품질 향상에도 기여하게 된 것 같아요. 웨딩홀의 화려한 조명 없이도 아름다운 드레스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할 테니까요.

현재 ‘엔조퀸 콘테스트’, ‘프로젝트 1130’을 비롯해 다양한 마케팅을 진행하고 계시는데요, 마케팅 전략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웨딩 브랜드는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지기 어려운 편입니다.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가 아닌 일반 소비자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인데요. 이미 결혼하신 분들도 웨딩 문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결혼식이 끝난 후에도 엔조최재훈이 부부의 아름다운 순간을 함께한 존재로 회자되길 바랍니다. 웨딩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일상과 가까운 문화가 될 수 있도록 마케팅에도 집중하고 있어요. 이전에는 브랜드가 잡지나 홈페이지를 통해 소수의 정보만 전달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SNS를 통해 신부들이 주체적으로 브랜드와 소통하고 정보를 탐색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를 활용해 저희는 엔조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린 신부와, 앞으로 엔조의 신부가 되길 원하는 분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엔조퀸 콘테스트’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웨딩 잡지의 영향력이 크던 때에는 잡지의 마감 기한에 맞춰 부지런히 화보 촬영을 기획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곤 했어요. 대부분의 잡지가 폐간된 지금은 마감 기한이 없으니 콘텐츠 기획에 있어 느슨해지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만의 마감 기한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때로는 데드라인(Deadline)이 잠재된 창의성을 끌어내 주기도 하니까요. 이렇게 탄생한 기획이 ‘프로젝트 1130’입니다. 프로젝트 1130은 엔조최재훈의 창립일인 11월 30일을 의미하는 동시에, 1년에 11번 돌아오게 되는 매월 30일에 맞춰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담고 있어요. 새로운 드레스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하고, 드레스룩의 완성도를 높일 액세서리를 포함한 다양한 화보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대표님의 경영 철학과 엔조최재훈의 목표에 대해 들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엔조최재훈이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길 바랍니다. 저희 브랜드의 모토는 ‘이 시대의 여성들이 꿈꾸는 드레스이자 먼 훗날 그녀의 딸이 꿈꾸는 드레스’입니다. 오늘날 신부의 로망을 실현해주는 동시에 세대가 변한 뒤에도 브랜드의 가치를 이어가길 바란다는 의미가 담겨있어요. 인생에서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인 결혼식을 함께 한 브랜드라면 신부에게도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을 것입니다. 엔조최재훈이 트렌디함과 고급스러움을 유지해 브랜드의 영속성을 지켜간다면, 저희와 함께한 분들도 오래도록 저희를 찾아주시지 않을까요? 그리고 어느 때보다 대한민국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브랜드 파워가 커지는 걸 실감하는 때입니다. K-콘텐츠의 활약으로 국내 배우들이 해외에 진출하고 시상식을 포함한 큰 무대에 오르기도 하는데요. 최근에는 가수이자 배우로 활동하는 아이유(이지은) 씨가 저희 드레스를 입고 칸 영화제 레드카펫에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언젠가는 제가 만든 드레스가 칸 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선보여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막연한 소망을 가졌던 터라, 연일 이어지는 국내외 뜨거운 반응이 놀라웠습니다. 콘텐츠 산업과 브랜드 파워가 커지는 만큼 대한민국의 패션 산업도 강화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엔조최재훈이 그 마중물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고요. 제 목표는 웨딩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사랑받는 디자인 하우스를 만드는 것입니다. 엔조최재훈이 지금껏 그래왔듯 끊임없이 탐구하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유입니다. 

Photographer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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