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in Interview, 민경혁 (주)남이섬 대표

코로나 팬데믹으로 직격탄을 입은 분야 중 하나는 바로 관광산업이다. 오랜 시간 청춘들의 여행지로 손꼽힌 남이섬 역시 어려움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궁즉통(窮則通)이라는 말처럼 위기 속에는 기회가 있기 마련. 좌초의 위기 속에서 남이섬이 선택한 자구책은 콘텐츠, 그리고 사람이다. 새로운 남이섬을 위해 키를 잡은 민경혁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공항을 이용하지 않고 방문할 수 있는 국가가 있을까? 정답은 ‘그렇다’이다. 동화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또 하나의 국가, 바로 ‘나미나라공화국’의 이야기다.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상상력으로 가득한 동화의 세계로 들어갈 마음가짐이면 충분하다.

남이섬은 ‘나미나라공화국’으로 문화 독립을 선포하며 차별화된 운영 전략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오래전 남이섬은 모래와 땅콩밭이 전부인 불모지였습니다. 1965년 수재 민병도 선생이 다양한 수종의 육림을 시작하며 지금과 같은 자연환경을 갖추게 됐죠. 느티나무와 잣나무, 외래수종을 들여와 가꾸자 사람들이 하나둘 남이섬을 찾기 시작했어요. 당시만 해도 국내에 관광산업과 여행 문화가 생소했던 탓에 남이섬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현재의 경춘선이 달리는 길을 따라 춘천, 가평, 청평 일대가 청춘들의 여행지로 부상하며 남이섬을 찾는 이들도 늘어났죠.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제 생소해진 작품이지만 2001년 방영된 KBS 드라마 <겨울연가>의 성공으로 남이섬은 대만, 일본, 중국, 동남아를 비롯한 아시아권의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남이섬이 그저 드라마 촬영지로 각인되는 것이 우려되기도 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흥행은 지나가기 마련이고, 촬영지 역시 함께 잊히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입니다. 한편 오직 남이섬의 자연경관만으로는 관광객의 발길을 끌기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나무로만 보면 속리산이나 설악산에 비해 나을 것이 없고, 단풍으로는 내장산이 가장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의 힘을 빌려 탄생한 대형 테마파크와 견주기에도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남이섬은 ‘상상공화국’을 만들게 됐습니다. 남이섬을 찾는 관광객들이 전에 없던 새로운 상상나라로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죠. 현재 나미나라공화국은 전 세계 관광객에게 아름다운 동화와 노래를 선물하는 유일무이한 상상공화국으로서, 독자적인 관광외교와 문화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나미나라공화국만의 차별화된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국가를 완성하는 요소는 결국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남이섬과 나미나라공화국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문화콘텐츠가 필요했어요.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죠. 남이섬에 오는 사람들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주인이고, 저희는 그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공무원이라고 말입니다. 남이섬에는 지자체, 기업, 소규모 예술 단체 등이 만들어내는 콘텐츠가 가득합니다. 남이섬 전체가 하나의 무대이자 놀이터인 셈이죠. 또 국내외 문화예술인과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유니세프홀을 비롯해 환경교육센터 부설 남이섬환경학교, YMCA녹색가게체험공방 등 시민단체의 활동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남이섬이 남이섬답게 존재하는 것은 자연과 사람이 어울려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낸 덕분입니다. 콘텐츠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생태계를 만드는 것. 제가 남이섬을 ‘남의 섬’이라고도 부르는 까닭입니다.

관광산업이 코로나19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만큼, 남이섬도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이 궁금합니다.
국내외 불안정한 정세가 이어질 때면 관광산업은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산업 중 하나입니다. 코로나19 역시 남이섬이 겪은 위기 중 하나였습니다. 전 세계인이 그랬듯 예상치 못한 위기에 속수무책이었죠. 팬데믹 이전, 남이섬은 연간 300만 명의 관광객 중 외국인 관광객이 4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외국인 관광객의 비중이 컸습니다. 그 때문에 하늘길이 막히자 어떤 관광지보다도 어려움이 빠르게 닥쳤습니다. 또 방역 수칙으로 인해 MICE, 협회, 단체 여행이 잇따라 취소되며 부담은 더욱 커졌죠. 하지만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자연과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는 멈출 수 없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설 곳을 잃은 각종 무대와 지자체 행사를 남이섬으로 불러들였어요. ‘남이섬세계책나라축제’, ‘남이섬국제그림책일러스트레이션’을 비롯해 연간 500회 이상의 오프라인 행사를 개최하는가 하면, 더불어 지역 상품을 판매하는 장터를 열기도 했죠. 궁즉통(窮則通)이라고 했던가요? 콘텐츠가 모이자 뚝 끊겼던 발길이 다시 남이섬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코로나19로 인한 손실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앞으로 남이섬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이 세워진 셈입니다.

사람과 자연이 평화롭게 어우러지는 문화 관광지로서, 남이섬의 ESG 경영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기업을 향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계속해서 요구되는 추세지만 남이섬은 인위적으로 ESG를 실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ESG의 개념에 정확히 맞추기에는 여러모로 현실적인 제약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이섬의 운영 방향이 어느 정도 ESG와 결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남이섬의 창업 정신을 말씀드리자면, ‘푸른 동산 맑은 강은 우리의 재산, 성심껏 다듬어서 후손에게 물려주자’입니다. 이 섬이 남이섬으로 이름 지어질 때부터 이미 오늘날의 ESG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던 셈이죠. 협의(狹義)의 측면에서 본다면 재활용과 리사이클링을 일상화하고, 자연을 최대한 보전하는 것이 환경 보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남이섬을 ‘생명의 섬’이라 일컫는 만큼 조금 더 넓은 차원의 환경 개선을 목표로 합니다. 남이섬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콘텐츠를 만들고 나누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생태계가 조성되지 않을까요? 저는 이곳에서 다른 관광지에서는 볼 수 없는 품격 있고 건전한 콘텐츠를 나눌 수 있길 기대합니다. 남이섬은 지역 사회와도 지속해서 소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의사결정 단계에도 함께 참여하게 되는데요, 현재 유니세프와 환경운동연합회 등이 남이섬에 들어와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대퇴직(The Great Resignation)의 시대가 도래했다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정년 보장을 꿈꿉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남이섬은 80세 정년 보장을 비롯한 직원 복지 정책으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대표님의 경영철학은 무엇인가요?
제 경영철학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망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까요? 남이섬은 ‘사람이 재산’이라는 신념으로 움직이는 공동체입니다. 코로나19 이전에 IMF 외환위기라는 대대적 위기가 덮쳤을 당시, 직원들이 힘을 합쳐 만성 부채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준 바 있습니다. 좌초 직전의 남이섬을 직원들이 살린 셈이죠. 또 춘천과 가평 일대는 청년 인구가 적기 때문에 늘 구인난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 함께하는 직원 한 명 한 명이 제게는 너무나 소중합니다.
저는 직원들이 일구어가는 삶의 터전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사람이 없으면 남이섬은 그저 흔한 섬에 불과하니까요. 팬데믹으로 인해 회사가 어려워져도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대신 급여의 80%를 보장해주는 순환 유급휴직을 실시하며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렸어요. 나미나라공화국 역시 하나의 국가이기에 크고 작은 일손이 많이 필요합니다. 주차장을 관리할 직원, 남이섬으로 오가는 선박을 운항할 직원, 다양한 국제행사를 담당할 직원, 남이섬 내 호텔정관루를 관리할 호텔리어, 공예 작가, 조경을 담당할 조경사까지. 젊은 직원부터 나이 지긋한 직원까지 각자의 역할이 있죠. 정년이 무색하게 남이섬에서 한평생을 보내는 직원들도 적지 않은 만큼 그들을 위한 복지가 필요했어요. 남이섬은 임직원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육아 보조금을 지급하고, 자체적으로 직장 어린이집을 운영합니다. 특히 직장 어린이집에서는 핀란드의 ‘헤이스쿨스 클럽(Hei Schools Club)’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차별화된 교육 환경을 제공하고 있어요. 그 결과 2010년에는 ‘유니세프 어린이 친화공원’에, 2017년에는 ‘엄마에게 친근한 일터’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단기간에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도 좋지만, 저는 직원들과 함께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자 합니다. 마치 나무가 오랜 시간 제 자리를 지키며 자라나는 것처럼 말이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해 남이섬이 꾀하는 새로운 변화가 있다면 소개 바랍니다.
코로나19를 통해 관광산업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제가 느낀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소규모 관광객이 늘어났다는 점입니다. 지난 2년간 남이섬을 찾은 관광객은 급감했지만, 신기하게도 객단가는 오히려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단체 관광객에 비해 개인 관광객은 남이섬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더 많은 문화를 즐기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소비가 늘어나게 되죠. 이 점에 주목해 최근에는 개인화된 프로그램을 많이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별자리 체험 프로그램, 섬 내 희귀 조류 탐방 등과 더불어 숲 속 만찬(Forest Glamping BBQ Banquet), 풀 사이드(Pool-side) 뷔페 등이 인기를 끌고 있어요.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고 즐거운 식사를 위해 호텔정관루 후원에서 바비큐 시설(Riverside Romantic BBQ)도 제공합니다. 앞으로는 남이섬을 찾는 분들이 ‘관광’을 넘어 ‘경험’을 쌓아가길 바라고 있어요.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생생놀이터, 뚝딱우드랜드, 정원 가꾸기 등을 통해 온 가족이 유의미한 추억을 만들 수 있길 기대합니다. 그렇다면 남이섬은 비로소 ‘나의 섬’이 되지 않을까요?(웃음)  

Photographer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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