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박세훈 (주)도타이 더시그넘하우스 회장

(주)엘티에스와 엘티에스코리아(주), (주)레오티앤티, (주)도타이, (주)도타이청라, 재단법인 도진화 등 6개의 회사와 재단을 이끌고 있는 박세훈 더시그넘하우스 회장은 우리 시대의 존경받는 CEO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독실한 원불교 신자인 박 회장은 기도의 힘으로 사업의 큰 동력을 얻은 동시에 나눔과 봉사에 앞장서며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누구나 인정할 만한 성공을 거둔 상황에서 욕심을 내려놓고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의 인생 여정은 한 편의 영화처럼 깊은 울림을 주었다.

성공한 CEO에는 크게 두 가지 부류가 있다. 무에서 시작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일가를 이룬 경우, 가업을 물려받아 더욱 크게 성장시킨 경우. 하지만 둘 다 쉬운 일이 아니다. 매년 1000개의 스타트업이 탄생하지만 900개가 1년 안에 자취를 감추고 남은 100개의 스타트업 중 90개도 2년 안에 사라진다. 또 가족기업이 2세까지 지속되는 비율은 30%, 3세까지 생존하는 비율은 10%에 불과하다. 세상에는 많은 CEO들이 있지만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둔 CEO는 소수이며,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CEO는 극소수다. 그래서 존경받는 CEO가 되는 것은 더더욱 지난한 일이다.
박세훈 (주)도타이 더시그넘하우스 회장은 두 가지 부류 중 전자(자수성가형)에 해당하는 케이스다. 대학 시절부터 장사를 시작하고 만 서른 살에 회사를 차렸으나 뼈아픈 실패를 겪은 뒤 갖은 노력으로 재기에 성공, 지금은 (주)엘티에스와 엘티에스코리아(주), (주)레오티앤티, (주)도타이, (주)도타이청라, 재단법인 도진화 등 6개의 회사와 재단을 이끌고 있다. 특히 독실한 원불교 신자인 박 회장은 기도의 힘으로 사업의 큰 동력을 얻은 동시에 나눔과 봉사에 앞장서며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누구나 인정할 만한 성공을 거둔 상황에서 욕심을 내려놓고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는 존경받는 CEO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저의 경영이념은 4가지입니다. 남녀노소·지위에 상관없이 지혜로운 사람을 대우하는 ‘지자본위(智者本位)’, 마음이 태산처럼 끄떡없고 든든하다는 의미인 ‘안여반석(晏如盤石)’, 남을 위하는 게 곧 내 이익이라는 뜻인 ‘자리이타(自利利他)’, 그리고 ‘정도(正道)’의 원칙입니다. 이 중에서도 자리이타를 특히 중시합니다. 원불교에서는 ‘자리란 자기를 위해 수행하는 것이고, 이타란 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야말로 나를 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자리이타를 실천하면 고객 감동과 내 행복이 절로 따라옵니다.”

좌절 딛고 불굴의 노력으로 성공의 열매를 따다
항상 웃는 얼굴에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박세훈 회장.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탓이다. 30대에 홀로된 그의 어머니는 포목점, 여관, 중국집을 하면서 4형제를 키웠다. 대전이 고향인 박 회장은 4형제 중 둘째다.
“초등학교 졸업 후 상경해 먼저 올라와 있던 형과 자취를 했는데, 어머니 명의의 집이었음에도 안방을 세를 줄 정도로 어머니는 검소하고 엄격하셨습니다. 자식들이 타지에 살면서 나태한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하셨던 것이죠. 덕분에 큰형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LG전자 임원을 거쳐 나중에는 대학교수가 됐고, 동생은 회계사가 되어 큰 회계법인을 이끌고 있고, 막내는 현대전자 홍콩법인장을 하다가 자기 사업에 성공해 상당한 자산가가 되는 등 다들 건실하게 성장했습니다.”
그는 소위 말하는 공붓벌레는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했다. 그리고 사업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촉을 갖고 있었다. 덕수상고 졸업 후 대학 진학에 실패했을 때도 여름에 참외장사를 하는 등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다. 공군에 입대해 3년간 복무하고 야간대학에 입학한 후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한진그룹에 입사한 것이다.
“정말 치열한 20대를 보냈죠. 한진그룹 건설 부문에서 일했는데, 낮에 일하고 저녁에는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 옆에서 탁구장도 운영했죠. 주경야독으로 대학을 마치고 나서는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대학원 졸업 후 한진중공업 마닐라지사에서 2년간 근무하며 해외 경험을 쌓기도 했습니다.”
박 회장이 본격적인 사업가로 나선 것은 1985년, 그의 나이 만 서른 때였다.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건설회사를 차렸습니다. 수원비행장 건설에 필요한 다리 공사를 맡았는데, 그해 10월 태풍이 닥쳐 모든 걸 쓸어갔어요. 애써 해놓은 공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죠. 집 두 채를 팔아서 그때까지 공사에 들어간 돈을 모두 갚고 새로 빚을 얻어서 다리 건설을 마무리했어요.”
첫 사업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는 주저앉지 않고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이듬해인 1986년 경기도 부천에 사무실을 얻어 ‘삼훈전자’라는 이름으로 제조업을 시작했다. 에어컨 열교환기를 만드는 일이었다. 회사는 그럭저럭 운영됐지만 사정은 좋지 않았다. 창업 후 7년 동안 집에 생활비 한푼 주지 못했다. 대신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내가 살림을 책임졌다.
“공장에 야전침대를 놓고 밤 11시까지 물건을 만든 다음 트럭을 몰아 새벽 4시까지 납품했어요. 그렇게 몇 년을 고생하니 서서히 빛이 보이더군요.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평택공장을 짓고 천안과 창원에도 공장을 마련했습니다. 2002년 법인명을 (주)엘티에스로 변경했는데, LTS는 ‘Leader of Thermal System’의 약자입니다. 지금도 열교환기 분야에서는 남다른 노하우와 기술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2003년 (주)엘티에스코리아를 설립하고 2010년 사우디아라비아 법인, 2014년에는 중국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해외 법인은 철수했지만 무차입 경영을 해온 덕분에 여전히 내실은 탄탄합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프리미엄 실버타운·요양원 더시그넘하우스
살다보면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토머스 A. 에디슨은 ‘어떤 것이 당신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회장이 프리미엄 실버타운·요양원 더시그넘하우스를 운영하게 된 것도 전혀 계획된 일이 아니었다.
“원불교 교당 터를 구입하기 위해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갔는데, 바로 옆에 1870평의 노인복지용 땅이 있는 거예요. 원불교 재단에서 이 땅을 사서 노인복지시설을 운영하면 좋겠다 싶어 계약금을 빌려줬는데, 재단 사정상 어렵다고 하는 바람에 제가 떠맡게 됐죠. 이 땅에서 개인이 노인복지시설을 운영하는 것은 못 하게 돼 있었기 때문에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우연히 뛰어들게 된 복지사업. 하지만 어쩌면 이 모든 과정이 운명, 또는 신의 뜻일지도 모른다. 박 회장 역시 이런 부분을 직감하고 지금은 더시그넘하우스를 운영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더시그넘하우스가 이름처럼 은혜로운 곳이 되기를 원한다. 어르신들은 쾌적한 삶, 직원들은 고마운 삶을 영위하는 곳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다른 회사들은 모두 자리를 잡은 만큼 현재는 더시그넘하우스를 운영하는 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시설 관리부터 직원 교육까지 모든 부분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죠.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것은 모두 세상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더시그넘하우스에서는 월급을 받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동차 기름도 여기 돈으로는 안 넣어요. 제조업으로 충분히 버니 요양원 일은 공심으로 합니다.”
2017년에 문을 연 더시그넘하우스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프리미엄 실버타운·요양원이다. ‘성공한 인생을 살고 여유 있는 삶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커뮤니티, 노후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동반자로서 가장 신뢰받는 회사’라는 동행의 비전을 바탕으로 최상의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더시그넘하우스는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어르신들이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실버타운과 24시간 간병이 필요한 너싱홈으로 구분된다. 실버타운에는 총 230세대가 입주할 수 있으며, 각 실의 면적은 23평형, 31평형, 33평형, 35평형, 36평형, 42평형, 48평형, 49평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더시그넘하우스의 병설 요양센터인 너싱홈은 쾌적한 환경에서 간호·간병·재활치료 서비스로 이루어진 맞춤형 케어를 제공한다.
서울 강남구 자곡동에 위치한 더시그넘하우스는 지상 5층, 지하 3층에 연면적은 3만936㎡(9358평)에 이른다. 선큰가든이 바라보이는 150석 규모의 대규모 식당, 간호사가 24시간 상주하는 클리닉 존, 피트니스센터·사우나·스킨케어룸·골프연습실·당구장·탁구장으로 이루어진 웰니스 존, 도서관·극장·노래방·대강당·서예실·공예실·게임룸·동호회실·다목적실로 구성된 컬처 존,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의 프런트와 로비 카페·라운지 등 5성급 호텔 못지않은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더시그넘하우스는 안락한 시설과 세심한 관리가 알려지면서 대기자가 넘치고 있습니다. 내년 8월 인천 청라에 제2의 더시그넘하우스를 오픈하고, 청평이나 강촌에 중증장애인을 위한 요양병원도 지을 예정입니다. 여행이 쉽지 않은 어르신들을 위해 제주도에 전용 펜션을 건립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남을 위하는 자리이타의 개념을 몸소 실천하다
박세훈 회장이 존경받는 CEO가 되기에 충분한 것은 자리이타라는 개념을 몸소 실천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2011년 10월 맏딸의 결혼식 축의금 전액을 경기도 용인 은혜학교에 기부했다. 은혜학교는 소년원을 나온 뒤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대안학교다. 어머니 장례식의 부의금 역시 전액 기부했다. 모두 어머니의 가르침과 원불교의 교리에 따른 것이다. 박 회장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은 각별하다. 2013년에 설립한 재단법인 도진화의 이름도 돌아가신 어머니의 법명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어머니는 1928년생인데 키가 164cm일 정도로 훤칠하셨어요. 외할아버지가 전주 유지셨는데 딸이라고 교육을 안 시켜 평생 한스러워하셨죠. 오랫동안 장사를 하셨지만 글을 쓸 줄 몰라 혼자만 아는 기호로 장부를 만드실 정도로 의지가 강한 분이었습니다. 홀몸으로 큰아들은 대학교수, 둘째와 넷째는 사업가, 셋째는 미국 회계사로 키워내셨고, 69세 때 필기시험이 없는 미국 LA에서 운전면허를 따 80세까지 손수 운전을 하셨어요. 평생 기 죽는 법이 없었지만 어쩌다 듣는 ‘무식하다’는 소리엔 가슴을 치셨죠.”
그런 어머니가 2008년 담도암에 걸렸다. 이전에 위암과 뇌출혈도 이겨냈지만 의사는 ‘길면 6개월’이라고 말했다. “우리 형제들은 종교가 다 달랐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60대 중반에 제가 믿는 원불교에 귀의하셨죠. 편찮으신 어머니를 위로할 방법을 찾다가 어머니의 원불교 법명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에게 장학금 3000만 원을 기부했습니다. 얘기를 들은 어머니가 제 손을 꼭 쥐며 환하게 웃으셨는데, 어머니가 그렇게 좋아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이게 재단법인 도진화의 시발점이었습니다.”
현재 박 회장은 유린보은동산 이사장과 원불교 서울교구 교도 대표를 맡아 헌신하고 있다. 7년 전 원불교 공로자에게 주는 최고 직함인 대호법이 됐고, 남편과 같은 길을 걸어온 아내 정길자 씨도 지난해 8월 대호법이 됐다. 원불교에는 사은(四恩, 천지은·부모은·동포은·법률은)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종교를 믿는 만큼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나눔과 봉사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이다.
“과거 사업에 실패한 뒤 진심으로 원불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저는 20년째 매일 아침 조석심고라는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비워서 채우는 지혜로 살게 해주십시오’라는 부분이 기도문의 핵심 구절이죠. 허영과 사치는 바르지 못한 행위입니다. 큰딸이 결혼할 때도 예식비용 외엔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예물과 예단은 생략하고 살림집도 딸과 사위가 자기들 돈으로 얻도록 했죠. 저의 어머니가 그러하셨듯이 저도 딸들에게 자립과 나눔을 항상 강조합니다. 그래서 재산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원불교 성직자 교육기관에 희사할 생각입니다. 큰딸은 공인회계사, 둘째는 가야금연주자로 각자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니 걱정 없어요. 재산에 신경 쓰지 않겠다는 각서도 받았습니다.”
한국이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상황. 특히 자식이 부모를 직접 부양하는 문화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기에 더시그넘하우스 같은 고품격 실버타운·요양원의 가치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세상의 은혜로 사는 만큼 온 힘을 다해 보답해야 한다”는 박세훈 회장의 말이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그 말에 진정성이 충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박세훈 회장과 본지 손홍락 발행인(왼쪽)


Interview 손홍락  Editor 임흥열  Photographer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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