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Thinking, 분석과 직관의 조화 Design Thinking_34

흔히 창의성은 생각을 발산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여기지만, 디자인씽킹 플레이에 있어서 창의성이 본격적으로 발휘되는 건 아이디어 개발 단계가 아닌 ‘문제 정의’ 단계다. 창의성은 생각을 수렴하는 과정에서도 필수적이다.

디자인씽킹은 팀을 이루어 사람에 대한 깊이 있는 공감을 통한 문제 발견 및 아이디어 개발, 프로토타입 및 테스트 과정을 거쳐 해결책을 찾는 일련의 과정이다. 복합적인 사고력을 요구하는 디자인씽킹을 수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창의력과 협업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어떤 상황에 대해 공감을 하고 잠재된 문제를 찾으려면 ‘나라면 어떨까?’, ‘그 사람을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만약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다음은 어떤 일이 일어날까?’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여러 가지 상상력이 필요하다. 창의성의 출발은 상상력이기에 창의적인 시각 없이는 정확한 문제의 진단 및 정의 역시 불가능하다.
문제를 정의하는 것
모든 문제가 투명하게 실체를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 현실 세계에서 대부분 진짜 문제는 사람이나 상황, 혹은 나의 선입견에 의해 가려져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문제를 직시하려면 문제의 실체를 가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파헤쳐야 한다. 문제를 가린 장막이 있다면 당연히 그 장막을 걷어내야 하며, 그것이 우리 눈에 드리워진 건 아닌지, 그래서 나의 시각을 왜곡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물론 문제에 대한 경영진과 실무진의 시각은 다를 수 있다. 경영진이나 실무진 양쪽 모두 당면한 문제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고, 보다 나은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문제에 대한 시각이 다르다는 것은 애초에 문제 자체에 대한 정의가 다르다는 것이며, 그것은 자동차 두 대가 동시에 서울에서 출발하여 열심히 달려갔으나 도착해 보니 한 대는 부산에, 다른 한 대는 평양에 도착해 있는 것과도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문제를 인정하는 것 
최근 패션업계에서는 일반적인 패션 사이클이 무너지고 여러 유행이 동시에 유행하는 등 기존의 시스템과는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패션업계에서 남성복과 스포츠웨어는 연 2회 정도 상품기획을 진행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트렌드의 흐름이 빠르고 반응 생산이 중요한 여성복의 경우 연 8회,  많게는 연 12회 컨벤션을 진행하기도 한다.
과거 필자가 디자이너로 근무했던 K 기업은 스포츠웨어와 남성복이 대부분의 매출을 일으키고 있었고,  회사의 모든 시스템은 거기에 맞춰 연 2회 상품기획을 원칙으로 하며, 여성복은 어렵게 연 4회 품평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한때  K 기업 여성복의 선두주자였던 R 브랜드는 시간이 지나면서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모호함, 경쟁 브랜드의 고속 성장, 시장경기 침체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수년째 매출 부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브랜드 지속에 대한 의심까지 생기고 있던 중요한 시점에서 경영진은 최후의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브랜드 컨설팅 전문기업까지 동원했다.
많은 비용은 물론 업무에 쫓기는 실무진의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까지 쏟아 넣은 컨설팅의 결과, 그들이 제안한 솔루션은  B안이었다. 현실을 직시하고 브랜드의 미래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해온 실무진 입장에서는 예상했던 결과이고 당연히 수긍할 수 있었다. 그런데 경영진의 생각은 달랐다.  불현듯 사장은 A안을 지지했으며, 본부장은 사장을 지지했고, 팀장은 본부장을 지지했다. 다 함께 “우리는 할 수 있다”고 외치며 야심 찬 회의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R 브랜드는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뻔히 눈앞에 파헤쳐진 문제를 보고도 그들의 눈을 가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문제의 핵심을 찾아내고 문제를 정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를 인정’하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송지후        
한성대학교 상상력교양대학 교수 / 송지후에듀디자인랩 대표 / 디자인학·교육학 박사 수료, 평생교육사, 디자인씽킹 퍼실리테이터 / 한국산업인력공단, 서울산업진흥원, 한국섬유패션연합회, 롯데백화점 자문 / 前 코오롱인더스트리FnC, LF, 제일모직, 이랜드 등 기업교육 총괄 다수 / 前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한국패션협회, 한국고용노동부 등 인력양성사업 참여 다수 / 前 외환카드, 삼성병원, 교통안전공단, 유한킴벌리 등 디자인 프로젝트 다수 / 前 연세 패션&라이프 최고위과정 책임교수,  연세대 CEO과정 출강 다수 / 前 장안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 前 연세대, 안양대, 유한대, 전주기전 겸임교수

 

CEO& March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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