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ge-makers Interview, 이수인 에누마 대표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후원한 전 세계 아동 문맹 퇴치를 위한 소프트웨어 경진대회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Global Learning XPRIZE)’에서 한국팀 최초로 우승, 무려 500만 달러의 상금을 받으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에듀테크 스타트업 ‘에누마’. 게임 개발자에서 에듀테크 스타트업 CEO로 변신한 이수인 대표를 Z세대인 안서진 [월간 CEO&] 인턴기자가 만났다. 

에듀테크 기업 ‘에누마’를 창업하신 계기에 대해 간단히 말씀 부탁드립니다.
‘에누마’는 2012년에 저와 공동창업자이자 남편인 이건호 CTO가 미국 버클리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입니다. 그전에는 저희 둘 다 게임 개발자였는데 아이가 장애를 가진 것이 계기가 되어 교육, 특히 학습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교육 제품을 개발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최신 기술을 사용해서 장애가 있는 아이들도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교육 도구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고, 이후 이 미션은 ‘학습이 어려운 아이들도 사용할 수 있는 최신 교육 제품을 만든다’로 정리됐죠.

에누마의 ‘토도수학’과 ‘토도영어’를 만드시면서 다른 교육 애플리케이션과 차별화를 위해 특별히 힘쓴 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토도수학’이나 ‘토도영어’의 전신인 ‘킷킷스쿨’, ‘토도한글’의 전신인 ‘글방’ 프로그램은 모두 일반 고객이 아닌, 특수한 환경에 있는 학습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제작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토도수학은 학교에 들어갈 때 준비가 되지 않고 선생님이 가르치는 속도를 맞추지 못하는 느린 학습자를 생각했고, 킷킷스쿨은 오지에서 교사 없이 혼자 쓰기, 읽기를 배워야 하는 상황의 아이들을 위한 읽기·쓰기 학습 프로그램이었고요. 글방은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한 한글 학습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렇게 다른 대상을 위해 디자인했기 때문에 제품의 디자인이나 플레이 방식이 기존 제품과 많이 다릅니다. 또 저희 회사의 창업자들이 게임산업 출신이라서 기존 교육산업의 시각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제품을 선택하고 구매하는 교사와 부모보다 제품을 사용하는 아이들에게 훨씬 집중하는 것인데요, 이렇게 하면 유저의 경험은 좋아지지만 고객(부모)의 입장에서 장점이 잘 드러나지 않아 사업에서는 유리하지 않은 점이 있어 밸런스를 잡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회사를 운영하시면서 동시에 사회적 가치를 실현한다는 것이 쉽진 않을 것 같습니다.
저희는 가장 학습이 어려운 아이들도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학습 도구를 만들어냄으로써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교육의 문제 해결에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현재 학교에서는 수많은 아이들이 실패합니다. 전 세계 60%의 아이들이 2학년 수준의 읽기·쓰기를 못한다는 유네스코 통계가 2017년에 발표되었고, 모든 아이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UN의 지속가능발전 목표이기도 합니다. 학습 수준이 매우 높은 한국 사회에서도 장애가 있는 아이들, 다문화가정 아이들, 취약계층 아이들을 더 잘 도울 방법이 필요합니다. 저희는 최신의 UI/UX 디자인, 뇌과학, 게임제작 기법, AI 등을 동원해서 기초교육을 더 잘 가르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더 큰 시장 진출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테크기업의 경우에는 사회적 목표와 회사의 성공 기회를 하나로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CEO로서 대표님의 경영철학은 무엇이신지요? 
굳이 에누마라는 회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일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2개의 목표를 구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첫 번째는 미션과 관련된 목표입니다. 에누마는 ‘학습이 어려운 아이도 혼자서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학습 도구를 만든다’라는 미션을 가진 회사이므로 저희가 하는 일이 이 목표를 가장 잘 달성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계속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회사문화에 대한 목표입니다. 부양가족이나 개인적인 목표, 독특한 라이프스타일 등 각자의 사정이 있는 개인들이 모여 일하는 곳으로서 에누마라는 회사의 문화는 일과 개인 사정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제 멘토인 CEO 코치 제리 콜로나는 ‘리더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갈수록 그를 둘러싼 조직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라는 요지의 성장의 기술을 전수합니다(저는 제리 콜로나의 책 <리부트: 리더를 위한 회복력 수업>을 공동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에누마의 구성원들이 미션과 문화의 해답을 찾아가는 매일의 과정에서 CEO로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늘 고민합니다.

인생의 좌우명이나 가장 좋아하는 격언이 있으시다면요?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모든 반짝이는 것이 금은 아니다(All that glitters is not gold)’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저 자신도 크리에이터로서 새로운 아이디어에 자주 혹하곤 하는데, 모든 반짝이는 생각들에 시선을 빼앗기면 멀리 못 간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해요. 에누마를 시작하기 전에도 다양한 사업 아이디어와 아이템이 있었고, 앞으로도 꾸준히 누구에게나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언제나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내가 10년을 걸 수 있는 아이디어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선택과 집중을 했기에 에누마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모든 크리에이터들이 새겨둘 만한 격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사업을 운영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 한 명을 꼽으라면 어느 분일까요?
저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이라면 첫 번째 투자자이자 여전히 가장 영향력이 있는 보드 어드바이저인 K9 벤처스의 마누 쿠마르(Manu Kumar)를 들 수 있습니다. 제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보고는 회사를 만들라고 설득하며 첫 번째 투자금을 대고, 지난 10년간 회사의 운영이나 의사결정에 대해 멘토링을 해주고 있고 여전히 보드미팅에 참가합니다. 에누마의 역사나 회사의 운영에 도움을 주는 조언과 관련해 딱 한 사람을 뽑으라면 이분이겠지요. 함께 일했던 사람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버클리팀에서 인턴으로 들어온 후 1년 정도 함께 일했던 ‘조’라는 직원이었습니다. 명문대를 졸업한 정말 멋진 친구인데 청각장애가 있었어요. ‘보청기를 끼고 있으니 잘 들리겠지’라고만 생각했고 본인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듣기보다는 사람들의 입 모양을 읽더라고요. 불행히도 제가 영어 문법이 많이 틀리고 입을 움직이는 방식이 미국인과 다르다 보니 조가 알아듣기 어려워서 커뮤니케이션 에러가 정말 많았어요. 회사 초창기였고 제가 영어가 서투르면서도 감정적으로 행동할 때가 많아서 회의 시간마다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았어요. 특히 조에게는 “내가 말했는데 왜 그렇게 안 했냐”고 지적한 적이 많았죠. 어느 날 이 친구가 회의 시간에 공을 하나 꺼내면서 “우리 이 공을 들고 서로에게 감사한 일에 대해서 하나씩 이야기해보자”라고 하더라고요. 그 인턴이 생각하기에 전체 회의에서 필요한 건 서로 일을 지적하는 게 아니라 감사한 일을 떠올리는 거였던 것이죠. 제 차례가 되어 공을 손에 쥐고 그걸 깨달은 순간 민망하고 부끄럽고 감사해서 얼굴이 빨개졌었어요. 회사에서 가장 강렬한 기억은 그때였던 것 같아요.

대표님처럼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꿈꾸는, 저를 포함한 많은 넥스트 제너레이션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떤 미국 엑셀러레이터가 창업자에게 던지는 질문 중에 “세상 사람은 다 모르는데 당신만 알고 있는 비밀이 무엇인가?”라는 것이 있어요. 저는 이 질문이 모든 성공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만이 풀 수 있는 문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는 것이요. 발전된 나라에서 문명의 이기에 둘러싸여 살고, 공부를 잘하고 회사를 잘 다니는 것에 맞추어 살아온 저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꽤 늦었어요. 30대가 되어 외국에 나와 저와 다른 점이 많은 아이와 살고, 창업이라는 생소한 모험을 하면서 내가 풀고 싶고 풀 수 있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조금씩 알게 되었는데요, 여전히 저의 무지와 상상력의 부족을 많이 느껴요. 사실 저희가 우승했던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의 포인트는 기존에 선진국의 잘 교육받은 사람들이 만들어서 개발도상국에 보낸 학교 시스템이나 그걸 해결하려고 보낸 소프트웨어들이 대부분 실패하고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 것이잖아요? 이걸 만들기 위해서 저희 팀에 제일 필요했던 건 우리가 ‘학습’에 대해서 알고 있는 기존의 상식을 끊임없이 뒤집고 새로 배우는 거였어요. 이를테면 인간은 서로 얼마나 같거나 다른지, 기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아이들이 양육되는 환경이 제품 사용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서 말이죠. 기존에 저희가 학교에서 배운 것과 우리가 한국에서 성공한 요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남들이 기존에 가진 생각을 뒤집을 수밖에 없는 극단적인 상황을 경험하고 나니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새로운 시장을 상상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현재의 기술들은 정말 다양한 환경에서 사용될 수 있고, 우리가 상상해보지 않았던 곳에 새롭고 커다란 시장이 있다는 것을 매일 배우고 있답니다. 큰 꿈을 가질수록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한국의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은 지식을 탐험함으로써 다른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나만의 비밀’을 발견하는 첫 단추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에누마

 

CEO& March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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