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이동열 코리아테크 대표

국내에서 손꼽히는 유통 전문가 이동열 코리아테크 대표는 최근 매각, M&A, IPO가 사실이냐는 연락에 아니라는 답변을 하느라 바쁘다. 자체 브랜드 가히가 ‘멀티밤’으로 대박을 터뜨리면서 코리아테크와 가히가 IB 업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매각은 ‘사실무근’, IPO는 ‘머나먼 일’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100년 이상 지속되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더 좋은 제품, 소비자들이 더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 새로운 콘셉트의 친환경적인 제품을 선보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2021년 매출 2500억원, 가히 ‘멀티밤’ 누적 판매량 1000만 개. 이동열 코리아테크 대표는 지난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또 한 번의 신화를 썼다. 2016~2018년 미용기기 ‘리파’로 승승장구했던 그는 이번엔 자체 화장품 브랜드 가히로 홈런을 날렸다. 이쯤 되면 사업가, 유통 전문가로서 이 대표의 감각과 통찰력은 독보적인 수준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2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벼랑 끝에 서 있었다. 노재팬 운동으로 1000억원대의 매출은 139억원으로 급락했고 영업손실도 139억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가히의 성공이 여전히 꿈만 같고 감개무량합니다. 가히를 기획할 당시만 해도 회사가 존폐의 위기에 놓여 있었기에 더욱 가슴이 벅차죠.”
영어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Life is like a roller coaster. It has its ups and downs. But it's your choice to scream or enjoy the ride(인생은 롤러코스터와 같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 하지만 소리를 지르거나 즐기는 것은 당신의 선택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인생은 잔잔한 강물을 오가는 유람선보다 롤러코스터에 가깝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실패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한없이 내리막길을 걸을 때 철저한 전략기획으로 권토중래를 노리는 명민함과 담대함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자체 브랜드 가히
이동열 대표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입지전적인 이력의 소유자다. 20대에 유통 분야에 뛰어들어 양면 유리창 청소기로 큰돈을 벌어 사업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견문을 넓히기 위해 세계 곳곳의 전시회를 돌며 타고난 감각으로 한국에서 히트할 만한 제품들을 발굴했다. 글로벌 세제 브랜드와 탄산수 제조기 브랜드, 지금의 코리아테크를 있게 한 리파, 싸이가 광고 모델로 나선 얼굴 운동기기 ‘파오’, 크리스티안 호날두의 복근 운동기기 ‘식스패드’ 등이 그가 해외에서 들여온 브랜드·제품들이다. 하지만 이 대표가 계속 성공이라는 꽃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무수히 많은 실패와 좌절의 경험들이 그를 더 좋은 CEO가 되도록 단련시켰다.
“흔히 호사다마라고 하죠. 글로벌 세제는 홈쇼핑에서만 1000만 개 이상이 판매됐습니다. 탄산수 제조기도 국내에서 탄산수 바람을 일으켰죠. 문제는 한국 독점 판매권이었습니다. 그때가 2005년이었는데 탄산수 제조기를 힘들게 히트상품으로 만들었더니 본사에서 계약 조건을 변경하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판매를 접을 수밖에 없었죠. 2008년에는 세제를 한국을 넘어 아시아 전역의 히트상품으로 만들었는데 본사에서 다른 업체로 총판을 바꿨습니다.”
리파가 날개 돋친 듯이 팔릴 때도 한중, 한일 관계가 그의 길을 막았다. ‘사드’ 사태로 한중 관계가 꼬이기 시작하면서 국내 면세점에서 리파를 싹쓸이해가던 중국 관광객 매출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여기에 한일 관계에도 냉각기류가 흐르더니 급기야 노재팬 운동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리파의 순항에 완벽히 제동이 걸렸고, 2019~2020년 사이 그는 암흑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는 K-뷰티가 지구촌을 사로잡자 직접 화장품 유통에 나섰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고, 야심 차게 론칭한 프리미엄 물티슈 브랜드 ‘팩토리얼’ 역시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그때마다 좌절하는 대신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여러 차례의 실패를 반복하며 성공의 방정식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달았다. 그것이 바로 가히의 근본적인 성공 요인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해외 출장이 줄어들면서 회사 상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시간이 많았어요. 그리고 제 브랜드가 없기에 계속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을 얻게 됐죠. 한류의 불씨가 그대로 살아있는 가운데 중국을 제외한 다른 해외 시장에서는 여전히 K-뷰티가 각광받고 있다는 사실에 힘을 얻었습니다.”
그는 회사의 손실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확신을 갖고 화장품 연구원들을 더 뽑으며 버텼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그렇게 론칭한 브랜드 가히와 2020년 5월에 출시된 대표 제품 멀티밤은 출시 2년이 안 돼 누적 판매량 800만 개를 돌파했다. 스틱 형태로 립밤처럼 휴대가 간편한 멀티밤은 스킨케어 마지막 단계와 외출 시 피부 보습, 목과 모발 보습 등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어 출시 직후부터 인기를 끌었다. 멀티밤은 독자 제조법으로 제주도의 식물을 발효시켜 만든 엄선된 성분을 사용해 오래 지속되는 보습력과 윤기를 선사한다. 또 기존에 메이크업 지속력을 높이기 위해 사용됐던 필름엑셀 공법을 적용해 보습력을 높였다. 그렇지만 끈적임이 없어 메이크업 위에도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고, 마스크를 써도 답답하지 않은 정도로 사용감이 좋다. 무엇보다 멀티밤은 스킨케어 제품을 휴대하며 언제든지 손쉽게 바를 수 있다는 콘셉트로 화장품에 대한 개념을 바꿨다.
한편 멀티밤이 대성공을 거둔 데에는 코스맥스 이경수 회장의 혜안과 결단도 큰 역할을 했다. “연구원을 영입하고 화장품팀 직원도 대거 보강했지만, 우리의 역량만으로는 당연히 한계가 있었죠. 이때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화장품 제조사 코스맥스에 손을 내밀었는데, 이경수 회장님은 가능성 하나만 보고 선뜻 가히 전담팀을 꾸려주며 힘을 실어주셨습니다.” 코리아테크-코스맥스 연합군은 매주 4시간씩 한 주도 쉬지 않고 제형 연구와 테스트 등 개발 회의를 진행했고, 하늘은 결국 이런 노력을 외면하지 않았다.
브랜드 모델로 맑고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 김고은을 기용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2020년 김고은 씨가 기존 화장품 광고 모델 계약이 막 끝났던 시점에 국내외 여러 유명 브랜드가 경합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일단 써보고 결정해달라고 제품을 보내주고 기다렸죠. 얼마 안 있어 김고은 씨가 가히를 선택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것도 천우신조였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대표는 국내 경영계에서 손에 꼽힐 만한 애국자다. 회사 이름을 코리아테크라고 지은 것도 한국의 뛰어난 기술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게 궁극적인 목표였기 때문이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만화영화보다 사극을 더 좋아했고,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입니다. <명량>은 지금까지 백번도 넘게 봤고, 시간이 날 때마다 예전의 사극을 다시 보는 게 저의 일상이자 취미입니다. 한류의 바탕은 문화, 그 정수는 한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브랜드 이름도 한글 맨 처음 자음인 ‘ㄱ’과 모음 ‘ㅏ’, 맨 마지막 자음인 ‘ㅎ’과 모음 ‘ㅣ’를 조합해 ‘가히’라고 지었습니다. K-뷰티의 시작과 끝이라는 의미를 담았죠. 더불어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처럼 바쁘고 열심히 살아가는 여성들을 위해 화장품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매각은 사실무근, IPO는 머나먼 일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화장품 업계에서는 여러 건의 굵직한 M&A가 성사됐다. 유니레버가 카버코리아(AHC)를, 로레알이 스타일난다(3CE)를, 에스티로더가 해브앤비(닥터자르트)를 거액에 인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가히가 대박을 터뜨렸으니 이 대표에게도 이런저런 제안이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일. 실제로 일부 언론은 가히가 M&A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이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가히를 론칭한 이래 IB 업계와는 단 한 번도 미팅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브랜드가 뜨니 시장에서 남다른 관심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매각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해본 적이 없습니다. IPO와 관련해서도 아직 멀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가전 브랜드 다이슨이 아직까지 상장하지 않은 것도 상장이 브랜드 성장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회사가 커지면 상장은 당연한 수순으로 여기는데, 저는 이게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가히를 만들 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대했습니다. 화장품 시장의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쉽지 않을 거라는 입장이었죠. 만약 주주들이 있었다면 하지 못했을 겁니다. 기존에 하던 사업이나 잘하라고 했겠죠. 지금은 눈앞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보다는 중장기적인 비전으로 가히를 명실상부한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데 집중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4~5년 전 서울 북촌의 가회동 성당 바로 맞은편에 한옥 3채를 매입했다. 매우 한국적이면서 정말로 차별화된 플래그십·콘셉트 스토어를 만들기 위해서다. 과연 애국자다운 발상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진행이 다소 지연됐지만, 한옥을 해체한 돌과 나무를 모두 창고에 보관 중입니다. 그런 돌과 나무는 절대 못 구합니다. 기존의 재료들을 그대로 살려서 전통 한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문화공간을 오픈할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전 세계에 가히라는 브랜드를 알리고, 누구에게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은 100년 가는 랜드마크로 만들 것입니다.”

목표는 100년 이상 지속되는 회사를 만드는 것
모든 일에는 우연이 없다. 이 대표는 오랜 기간 해외 브랜드를 유통하면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키워왔다. 리파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을 때도 자체 브랜드에 대한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 노재팬 운동으로 회사 매출이 급락한 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초심으로 돌아가 가히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죠. 사실 가히가 이 정도로 성공을 거둘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기획 의도는 회사에서 만든 기존 화장품과 달리 철저하게 소비자 관점에서 만든 화장품, 누구나 편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자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소비자들의 니즈와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도 백성들이 쉽게 글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우선적인 목표였죠. 만약 한글이 어려웠다면 지금까지 이어지지 못했을 겁니다. 요즘 사람들은 매우 바쁘게 살아갑니다. 밤에 마스크 시트 한 장 붙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머니나 핸드백에 넣고 다니면서 언제든지 바를 수 있는 제품, 누구나 쉽게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콘셉트가 주효했다고 봅니다.”
코리아테크라는 회사에 대한 이 대표의 애정은 매우 각별하다. 그는 회사를 사람에 비유하며 이제 코리아테크는 갓 스무살 청년이 된 것이라고 말한다. IPO가 머나먼 얘기라고 언급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IPO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상장 자체가 목적이 된다면 사실상 그것은 ‘먹튀’와 다를 바가 없죠. 내년에 나올 신제품과 앞으로 나올 신제품들, 그리고 이 제품들을 성공시키기 위한 임직원들의 노력이 상장의 근거이자 과정이 될 것입니다. 저는 100년 이상 지속되는 기업을 만드는 게 꿈이며, 제가 은퇴를 하더라도 이 회사가 잘 운영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초를 다지는 작업이 대단히 중요하고, 그 과정에는 누구의 개입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 선택에 따라 코리아테크의 미래는 극단적으로 갈릴 겁니다. 한때 이런 제품을 만든 적이 있는 회사였다로 기억되거나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거나. 가히는 한글을 마케팅에 내세운 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키워갈 계획입니다.”
명문대 경영학과를 나오거나 MBA 과정을 이수하지 않은 CEO들이 오히려 두드러진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은 그들의 타고난 비즈니스 감각과 인사이트, 치열한 노력 때문이다. 이 대표가 여러 부침 속에서 성공한 CEO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남다른 인사이트와 반드시 할 수 있다는 뚝심 덕분이다. “이전의 욘사마와 싸이, 요즘의 <오징어 게임>과 BTS 등의 K-콘텐츠가 전 세계인을 매료시키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중국 사람들은 우리가 흰옷을 입고 춤 잘 추고 노래 잘하는 민족으로 여겼는데, 이게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며 지금은 이런 특성이 가치화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여기에 잘 맞는 사업이 바로 헬스&뷰티이며, 저는 코리아테크를 통해 이런 측면을 극대화하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얼마든지 세계적인 브랜드가 나올 수 있다고 확신하며,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업계들의 동료들이 이를 실현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합니다.”

이동열 대표와 본지 손홍락 발행인
이동열 대표와 본지 손홍락 발행인

한편 이 대표가 천착해온 또 다른 테마는 친환경이다. 그가 물티슈 브랜드를 론칭했을 때 가장 강조했던 것도 바로 친환경이었다. “앞으로 나올 신제품의 콘셉트는 우리가 판매한 제품의 용기를 우리가 수거해서 재활용하는 것입니다. 저희 같은 작은 회사에서 이런 도전을 한다는 것은 크나큰 모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케팅적으로 말하는 친환경이 아닌, 모든 제품과 프로세스에 친환경이라는 개념을 정착시키는 것이 다음의 목표, 나아가 회사의 장기적인 비전입니다. 현재 준비 중인 제품 중에 친환경 마스크가 있는데, 코로나 이전부터 준비한 끈 없는 마스크입니다. 끈이 없으니 마스크 필터를 재활용할 수 있는 100% 친환경 제품이죠.”
그의 경영철학과 사훈은 ‘긍정의 기적’, 직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은 “교만하지 말라”다. “코리아테크는 청소기 팔다가 주방용품 팔다가 미용기기 팔다가 화장품으로 성공한 회사인데, 긍정적인 마인드 없이는 불가능한 도전이었죠. 그리고 회사가 성장해서 부서 간에 알력이 생기는 주된 이유는 잘 되면 내 덕이고 안 되면 남 탓을 하는 교만함 때문입니다. 회사가 발전하려면 모든 임직원들이 협력해야 하는데, 이를 방해하는 요소가 바로 교만함과 이기심이고요. 저는 세상에 자수성가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하는 것이죠.” 

인터뷰 손홍락  임흥열 사진 박상현 

 

CEO& March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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