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dwriting & Life, 필적으로 알아보는 리더의 성향 _2

손정의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지금의 소프트뱅크 그룹을 일군 신화적인 기업가이자 일본 최고의 부자다. 그는 남다른 승부사 기질과 통찰력으로 알리바바를 비롯한 수많은 기업들을 글로벌 공룡으로 성장시켰다. 필체를 보면 그는 어중간한 것을 싫어한다. 하나의 획으로 여러 부분을 연결해 쓰는 연면형 글씨는 통찰력이 있고 의리를 중시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소프트뱅크 그룹의 대표이사 겸 CEO인 손정의(孫正義, 1957~)는 일본 규수 지역의 무허가 판잣집에서 재일 한국인 3세로 태어났다. 버클리대학교 경제학부에 편입한 19살에 ‘인생 50년 계획’을 세웠다. ‘20대에 사업을 일으키고 이름을 떨친다. 30대에 적어도 1000억 엔의 자금을 모은다. 40대에는 일생일대의 승부를 건다. 즉, 큰 사업을 일으킨다. 50대에 사업에서 큰 성공을 이룬다. 60대에 후계자에게 사업을 물려준다’는 것이었는데 50대까지 이 계획을 모두 이뤘다.
그의 승부사적 기질을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그는 2000년 마윈을 처음 만났을 때 5분 만에 투자를 결정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눈에서 엄청난 카리스마가 느껴졌습니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냄새를 맡았다고나 할까요? 이 사람이 100명의 부하에게 물에 뛰어들라고 하면 모두 뛰어들겠구나. 아니 불 속으로 뛰어들라 해도 따를 사람이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이 발산하는 어마어마한 힘은 결코 회계 지식이나 수학 지식에서 나오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손정의는 4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지만, 마윈은 200만 달러로 줄여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200만 달러가 투자되었고, 이 돈은 나중에 10조 엔이 넘는 가치를 갖게 되었다.

서명만으로 알 수 있는 남다른 승부사 기질
그가 남긴 말을 보면 성공한 사업가를 넘어 통찰력이 뛰어나다는 느낌을 준다. “상식으로 가능한 범위라면 결국 그것은 평범한 것이다”, “언제든 길은 있다. ‘어쩔 수 없다’거나 ‘어렵다’는 말을 하면 할수록 해결과는 멀어질 뿐이다”, “오르고 싶은 산을 결정하면 인생의 절반은 결정된다. 자신이 오르고 싶은 산을 정하지 않고 걷는 것은 길을 잃고 헤매는 것과 같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늘 산 정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이고 결국 큰 산에 오를 수 있다”, “겸손함과 자신을 굽히지 않는 강인함을 양립하라”, “다음 시대를 먼저 읽고 시대가 쫓아오기를 기다려라.”
그렇다면 손정의의 승부사 기질이나 통찰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그의 간단한 서명 분석만으로도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서명은 다른 글자보다 훨씬 많이 쓰기 때문에 개성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서화 감정에서 서명 부분을 유심히 보는 이유, 또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이유는 서명에는 사람마다 다른 특징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손정의는 글씨의 마무리를 확실하게 꺾거나, 길게 끌거나, 힘을 주어서 결단력과 책임감이 뛰어남을 알 수 있다. 소프트뱅크의 주가가 2000년 2월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로 곤두박질해 바닥을 쳤을 때 주가는 100분의 1로 줄어 있었다. 그는 2001년 브로드밴드 진입이라는 일생일대의 승부수를 던졌는데, 그의 평소 투자를 결정하는 요건인 ‘7할의 승산’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었다. 그는 이 승부를 일본 역사에 길이 남을 오케하자마 전투의 대역전극과 비슷하다고 봤다. 오케하자마 전투는 1560년 2만5000명이란 대군을 이끌고 오와리 국을 침공한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오다 노부나가가 2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야간 기습을 가해 요시모토를 죽이고 이마가와군을 패퇴시킨 역사상 가장 화려한 역전극이라고 일컬어진다. 이외에도 스스로의 표현대로 ‘머리가 터질 때까지’ 생각해서 수없이 많은 일을 결단했다.
필체를 보면 그는 어중간한 것을 싫어한다. 하나의 획으로 여러 부분을 연결해 쓰는 연면형(連綿型)  글씨는 통찰력이 있고 의리를 중시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지구촌을 그려보며 경영하는 큰 배포와 야망을 갖고 이를 만들어낸 인물답게 글씨가 크고 마지막 획이 큰 호(弧)를 그린다. 그의 이런 배포는 어릴 때 그의 아버지 송삼헌이 항상 “대단해! 너는 천재다!”라고 칭찬했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義(옳을 의)’자 중에서 가로선들의 간격이 같아서 머리가 좋고 논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孫(손자 손)’ 중에서 왼쪽 변의 아랫부분이 큰 원을 그리는데, 이는 ‘돈 주머니’가 매우 크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모서리가 부드러운 것은 융통성과 배려심이 있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너그럽다는 것을 말해준다. 인내심을 의미하는 가로선이 긴 것은 물론이다. 그는 단어나 행의 간격이 좁고 여백이 별로 없는 글씨를 쓰는데, 이는 절약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이는 대부분의 부자들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다.

손정의는 글씨의 마무리를 확실하게 꺾거나, 길게 끌거나, 힘을 주어서 결단력과 책임감이 뛰어남을 알 수 있다

통찰력이 있어야만 쓸 수 있는 연면형 글씨
손정의의 글씨를 보면 한 획으로 하나의 글자, 또는 글자의 2개 이상의 부분을 쓰는데 이를 연면형 글씨라고 한다. 연면형 글씨는 사물이나 사안을 단편적으로 보지 않고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능력, 즉 통찰력을 가져야 쓸 수 있다. 의리를 중시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손정의의 통찰력은 그의 독서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면서 식사를 할 때 손에서 교과서를 떼놓지 않았고 왼손으로 교과서를 들며 보다가 오른손으로 포크를 찔러 우선 찌른 것을 먹었다. 두 손에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요리를 보면서 식사를 하는 것은 그에게 사치 그 자체였다. 창업한 지 2년 만인 1983년 만성 간염으로 병원에 3년 동안 입원했을 때 3000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은 시바 료타로가 쓴 장편소설 <료마가 간다>다.
손정의는 “전 결코 세상을 바꿀 대단한 발명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보다 나은 특별한 능력이 단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패러다임 시프트의 방향성과 그 시기를 읽는 능력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스티브 잡스와 만나 대화를 하다가 애플이 모바일 기기를 만들어 세계를 바꾸어 놓을 것을 감지했다. 작고 뛰어난 기기를 만들려면 저소비 전력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영국의 반도체 설계회사 암(ARM)을 3조3000억 엔이라는 거대한 돈을 들여 인수했다. 암은 사물인터넷(IoT)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기업이다. 그는 회사 인수 후 기자회견에서 “바둑으로 치면 50수 앞을 내다보고 돌을 둔 것”이라고 말했다. 

 

구본진         
국내 최초의 필적학자 / 글씨 전문 컬렉터 / 서울대학교 법학박사 / 법무법인 로플렉스 대표변호사
21년간 검사로 근무하면서 살인범, 조직폭력배의 글씨에서 특징을 발견하고 글씨체와 사람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친필 전문 컬렉터로서 국내 최고의 글씨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필적학을 연구하여 <필적은 말한다>(2009, 중앙북스), <어린아이 한국인 : 글씨에서 찾은 한국인의 DNA>(2015, 김영사),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2020, 샘앤파커스), <부자의 글씨>(2021, 다산북스) 등을 썼다.


 

CEO& February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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