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홍락 발행인의 휴먼 인터뷰

매년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개최되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은 민간 재단이 주최하는 회의임에도 세계 각국에서 총리, 장관, 대기업 CEO 등 유력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다. 매년 2000명에 이르는 각 분야의 리더들이 일주일에 걸쳐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 토론을 벌인다. 흔히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세계경제포럼의 국제적 영향력은 막강하다.
올해 8회째를 맞는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의 목표는 이모빌리티(e-mobility) 분야의 다보스포럼이 되는 것이다. 국내 MICE 산업의 현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게 가능할지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다. 한국에는 국제적으로 손꼽히는 포럼은 물론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나 MWC(Mobile World Congress) 같은 세계적인 전시회도 전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는 이모빌리티라는 핫한 분야에 차별화된 기획력이 더해지며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흐름이라면 지구촌을 대표하는 전기차 박람회를 한국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도 제주에서 말이다.
김대환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IEVE) 이사장은 엑스포의 조직위원장으로서 지난 8년간 이 행사를 성장시키는 데 모든 것을 바쳐왔다. 1995년에 창립한 전기·소방·통신 관련 설계·시공·감리·관리 업체인 대경엔지니어링의 경영을 아내인 허경자 대표에게 맡긴 채 그는 제주와 서울, 세계 각국을 오가며 어떻게 하면 이 행사를 양적, 질적으로 손색이 없는 글로벌 대표 전시회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왔다.
“오직 한 건의 미팅을 위해 제주에서 서울, 세계 주요 도시를 오간 날들이 부지기수였죠. 하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가 한국이 자랑하는 글로벌 전시회, 이모빌리티 분야의 다보스포럼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죠.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뜻하지 않은 변수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의 전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올해는 분산·비대면 개최와 함께 버추얼(Virtual) 전시 등 특화 프로그램으로 더욱 고도화된 행사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군 복무 시절 제주와 연을 맺다
2010년부터 시작된 제주 이주 열풍. 그런데 김 이사장은 제주 입도 1세대로 무려 39년째 제주에서 터를 잡고 있다. 최근에는 강원도에 있는 부친의 묘를 이장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그에게는 제주가 제2의 고향인 셈이다.
“저는 강원도 횡성 출신으로 1983년 군 복무 때 제주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한양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서귀포시 상예동 육국 휴양소에서 현역병으로 복무하다가 제대 후 시설파트 책임자로 근무하면서 눌러앉게 됐죠.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서울에서 다녔는데, 제주에 와보니 이곳은 그야말로 파라다이스 같았습니다. 대도시가 주는 각박함이 전혀 없었죠.”
그는 2012년 제주경제대상 공로상, 2014년 중소기업인대회 대통령 표창을 받는 등 제주 발전에 크게 기여해왔다. 대경엔지니어링을 설립한 것도 제주에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한창 때 대경엔지니어링의 직원은 380명에 이르렀다.
“제주도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등 자연과학 분야에서 3관왕을 차지한 청정 환경의 섬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좋은 일자리가 많지 않았죠. 제주도에서 제조업을 하는 것은 맞지 않았기에 지식산업을 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대경엔지니어링을 설립했습니다. 대경엔지니어링은 작지만 강한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로 사우디아라비아와 모로코 등 한국을 넘어 해외의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등 뚜렷한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초창기에 저는 직원들에게 결혼하는 데 지장이 없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말하곤 했는데, 지금은 우리 아이들이 다니고 싶은 회사로 만들겠다고 말합니다. 현재 회사의 외형적인 규모는 작아졌지만 스마트그리드 기업으로 진화하며 내실은 더욱 탄탄해졌습니다.”
대경엔지니어링의 사훈은 ‘가족, 패밀리’로, 여기에는 ‘더불어, 함께, 따뜻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그의 철학이 담겨 있다. 자신과 아내의 이름을 한 자씩 따서 사명을 지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이사장은 서로 마음을 열어 소통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모두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가 성공적인 흐름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국경을 초월한 패밀리 정신 덕분이었다.

올해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는 9월 7일부터 10일까지 제주국제컨벤션센터와 중문관광단지 일원에서 진행된다.
올해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는 9월 7일부터 10일까지 제주국제컨벤션센터와 중문관광단지 일원에서 진행된다.

‘가사모’라는 작은 모임이 엑스포의 시발점
그렇다면 자동차 업계와는 관계가 없던 그가 어떻게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를 론칭하게 됐을까. 그 시발점은 흥미롭게도 제주도에 인접한 작은 섬 가파도였다. 가파도의 젊은이들이 섬을 떠나자 김 이사장은 섬을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1사 1촌’ 자매결연을 맺고 전기공사, 도배, 집수리 등 봉사활동을 전개했다. 여기에 기업인, 교수, 금융인, 건축가, 작가, 엔지니어 등이 동참하며 2009년 ‘가사모(가파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결성됐다.
“가사모는 가파도를 녹색섬으로 만들자는 취지 아래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에너지 자립 섬으로 발전시키는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현재 제주도가 전개하고 있는 ‘카본프리 아일랜드 2030’ 프로젝트도 가파도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죠. 가사모 활동을 통해 2012년 4월 국제녹색섬포럼이 설립됐고, 이 포럼이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의 산파 역할을 했습니다.”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 탄생의 또 다른 축은 2011년 6월에 설립된 제주스마트그리드기업협회다. 이 협회는 2009년 말부터 제주시 구좌읍 일대에 조성된 제주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 참여 기업과 IT, 벤처기업들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제주도 스마트그리드과와 제주대 스마트그리드연구센터가 힘을 보탰다.
2012년 발표된 제주도의 미래 비전 ‘카본프리 아일랜드 2030’, 같은 해 열린 세계자연보전총회(WCC) 등도 친환경 전기차에 대한 관심을 높인 계기가 됐다. 제주를 지속 가능한 녹색섬으로 만드는 비전, 제주의 신성장동력을 찾고 제주에서 글로벌 강소기업을 육성하자는 민관의 노력이 전기차라는 교집합으로 귀결된 것이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포럼과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소규모 전시를 통해 조금씩 틀을 잡아갔다. 이후 국제녹색섬포럼과 제주스마트그리드기업협회를 중심으로 하는 산·학·연·관 구성원들은 직접 발로 뛰며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국회를 설득했고, 마침내 2013년 제주광역경제권 선도산업 육성사업 가운데 휴양형 MICE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가 선정됐다. 가파도를 변화시키려는 작은 움직임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적인 분야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 셈이다.
그렇게 시작된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는 2014년 첫 회에 4만7000명의 관람객이 몰리며 업계와 정부부처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당신들이 전시회를 알기는 하느냐”, “제주에서 무슨 모터쇼냐” 같은 세간의 핀잔은 “제주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찬사로 바뀌었다. 지난해의 경우 코로나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세계 52개국에서 303개 부스를 꾸미고 7만6000명이 전시회를 찾으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박람회이자 학술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내실과 외연 확장을 위한 김 이사장의 고민과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 조직위원회는 저와 문국현 뉴패러다임인스티튜트 대표,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디트로이트 일렉트릭의 알버트 람 대표, 뉴욕주립대 야코브 사마쉬 부총장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여기에 실리콘밸리의 살아있는 신화로 불리는 오사마 하사나인 회장이 명예 조직위원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오사마 하사나인 회장은 외연 확장을 위해 2018년 문국현 대표가 초청했는데, 당초 2박 3일의 일정을 4박 5일로 연장할 정도로 남다른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이후 실리콘밸리 투자유치포럼이 신설되어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와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기존의 내연기관은 선진국과 대기업의 전유물인 반면 전기차는 다품종 소량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매우 낮습니다. 모터와 배터리만 있으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작은 나라와 기업들에게도 충분히 기회가 열려 있습니다. 실리콘밸리 투자유치포럼은 미주, 유럽, 아시아 패밀리가 한자리에 모여 신기술을 선보이고 투자를 결정하는 뉴 비즈니스의 장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전시회 성공으로 세계전기차협의회 탄생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는 IEVE와 제주도,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가 공동으로 주최해왔으나 지금은 IEVE가 단독으로 주최하고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일부, 국방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중소벤처기업부, 제주특별자치도, 4차산업혁명위원회,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국회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농촌진흥청, 산림청, 한국전력공사, KOTRA, 한국관광공사, 한국교통연구원, 한국전기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무역협회 등 다수의 국가기관·공기업이 후원하는 형태로 변경됐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제2의 도약을 위한 과감한 결정이었다.
“다보스포럼도, CES도 민간이 주최합니다. 대부분의 국내 전시회가 로컬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은 엄밀히 말해 지자체 의존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지자체의 지원을 받고 의전에 집중하다보면 결국 주객이 전도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현재 제주도는 홍보를 위해 부스로 참가하고 있습니다.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는 장기적으로 이모빌리티 올림픽을 지향합니다. 애초부터 행사명에 제주를 넣지 않은 것도 이 행사가 로컬에 국한되지 않은 글로벌 전시회로 20~30년 이상 지속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백화점식으로 이런저런 업체들을 수용했다면 단기적으로는 많은 수익을 올렸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행사는 오래 갈 수 없죠.”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의 또 다른 성과는 2016년 세계전기차협의회를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전시회가 거듭되면서 박람회 외에 전기차 관련 업체들의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고, 결국 김 이사장이 초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저는 영어도 못하고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만으로도 벅차니 다른 사람이 회장을 맡으면 좋겠다고 거듭 고사를 했어요. 그런데 “영어를 잘하고 큰 기업을 이끄는 사람들은 많지만 당신 같은 스토리를 가진 사람은 없다. 당신이 바로 협회를 발전시킬 적임자다”라는 말들을 듣고 회장직을 수락했습니다. 대신 저는 두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매년 엑스포 때 총회를 하자. 본부를 제주에 두자. 이로 인해 협회에 가입한 50개국의 회원사들은 총회 참석을 위해서라도 매년 엑스포를 방문할 수밖에 없죠. 개인적으로 참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전기차협의회는 내연기관 중심의 자동차 기업은 배제한 세계 유일의 전기차 관련 협회로 테슬라, BYD, 르노 등 전기차에 올인하는 업체들, 전기차 시장에 관심이 있는 업체들에게만 문을 열어놓고 있다. 그러다보니 갈수록 자동차 기업보다 IT 관련 기업들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아울러 세계전기차협의회에는 회비가 없다.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 부스 판매비, 후원, 기부금 등으로 협회가 운영된다. 국경을 초월한 다양한 이벤트와 지속적인 네트워킹이 세계전기차협의회를 유지시키는 근간이다.

인터뷰 중인 김대환 이사장과 본지 손홍락 발행인
인터뷰 중인 김대환 이사장과 본지 손홍락 발행인

장기적인 목표는 이모빌리티 올림픽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는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되지만 갈수록 그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인근 호텔에서 컨퍼런스가 열리고 중문관광단지 일원에서 전기차 시승 체험이 진행되는 식이다. 이를 통해 제주는 MICE 산업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다보스는 인구가 1만 여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세계경제포럼이 열리며 무궁무진한 부가가치를 얻게 됐죠. 제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가 커질수록 제주의 브랜드 가치는 한층 높아질 겁니다.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는 독보적인 아이덴티티를 바탕으로 매년 세계적인 석학들과 리딩 기업들이 참여하고, 또 제주에서 힐링하는 전시회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이모빌리티 올림픽으로서 실제 올림픽처럼 한 달간 진행되는 행사로 키워나갈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로봇, 전지, 드론, 전기선박 등 다양한 관련 산업과의 연계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 달 동안 다채로운 랠리, 콘테스트, 어워드가 펼쳐지는 행사가 진행된다면 그 부가가치는 상당할 것이며, 이것이 바로 한국형 뉴딜의 성공사례가 될 것입니다.”
김 이사장은 15년 전 대경엔지니어링을 이끌며 매출 100억 원을 달성했다. 업종의 특성을 감안하면 건설업의 1000억 원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지역적인 한계를 절감하고 판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게 바로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를 기획하게 된 계기였다.
“대경 식구들에게 10년만 미쳐보겠다고 양해를 구했죠. 좁은 지역에서 기업이 성장하면 온갖 음해가 벌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1000조 정도로 시장을 키워서 0.1%만 가져가자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그러면 1000개의 기업이 서로 싸우지 않고 공존할 수 있죠. 앞으로의 전망은 충분히 긍정적입니다. 전기차의 역사는 무려 200년에 이르지만, 대중화는 이제 막 시작되는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변곡점은 곧 새로운 기회를 의미합니다. 머잖아 새로운 유니콘 기업들이 연이어 등장할 것입니다.”
제8회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는 9월 7일부터 10일까지 제주국제컨벤션센터와 중문관광단지 일원에서 진행되며, 현장 전시와 버추얼 전시가 동시에 실시된다. 또 다양한 컨퍼런스와 B2B 비즈니스 상담회가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함께 진행되며, 전기차 시승회 및 자율주행 시연, 전기차 퍼레이드, 차박·캠핑 등 다양한 체험 행사가 마련된다.   

Interview 손홍락 발행인  Editor 임흥열  Photographer 권용구    

 

CEO& Septembe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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