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중항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항암제 개발에 뛰어난 효과를 낼 수 있는 기술이라 국내외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한꺼번에 뛰어들어 경쟁이 치열하다. 그중 미국 바이오기업 TRIGR와 이중항체 후보물질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고, 중국 바이오기업 아이맵 바이오파마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한 에이비엘바이오가 주목받고 있다. 국내 최초로 이중항체 면역항암제 분야에서 미국 임상에 진입, 시선을 모으고  있는 에이비엘바이오 이상훈 대표를 만나 앞으로의 비전과 경영철학을 들어본다. 

(주)에이비엘바이오 대표이사 / (주)파멥신 공동창업자 및 부사장 / (주)한화케미칼 바이오사업부 본부장 / 카이론(노바티스), 아스트라제네카, 제넨텍 및 엑셀리시스 최고연구원 / 스탠퍼드 의대 연구원 / 하버드 의대 박사후연구원 /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세포분자생물학 박사 /서울대학교 석·학사

“회사 대표가 카리스마만 가지고 일방적으로 경영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직원들과 공감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에이비엘바이오에서는 회사 대표의 일방적인 통보식 대화는 없습니다. 분기마다 열리는 전 직원 미팅이 있을 때도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죠. 오히려 직원들이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더 많아 제가 대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고 나타난 에이비엘바이오 이상훈 대표의 말이다.
그가 오픈된 기업 문화를 만들고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미국에서의 오랜 직장 생활 경험 때문이다. 무서우리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엄청나게 시간을 쪼개는 날의 연속이지만, 직원들의 복지나 처우만큼은 너무나 파격적이었다. 이 대표는 당시 회사를 위해 직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직원을 위해 기업이 존재한다는 마인드를 갖게 되었다. 결국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기업 성장의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회사가 동기부여만 확실하게 해준다면, 나머지는 직원 스스로가 두 배, 세 배의 실적을 낼 수 있다는 생각. 시대가 달라진 만큼 비슷한 마인드를 가진 CEO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기업에서 어떤 식으로 직원의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지, 특히 에이비엘바이오만의 문화는 어떤 점이 특별한지를 자세히 알고 싶어 이 대표의 말에 좀 더 귀 기울여 보기로 했다.

자유로운 기업 문화, 틀을 벗어나다
“고기만 많이 먹으면 됩니다. 일주일에 몇 번씩 같은 음식점에 가죠. 똑같은 식당에서 같은 메뉴를 먹는 것을 반복해야 하지만, 시간이 허락하는 한 계속할 생각입니다.” 요즘 직원들과 공감하면서, 함께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불쑥 나온 이야기다. 인원이 40명 정도였던 예전에는 1년에 한 번 30분씩 개별 면담을 했지만, 회사의 규모가 커지며 직원 수가 100여명 가까이 된 지금은 물리적으로 시간이 너무 부족해 고민하던 이 대표다.
그는 최근에는 코로나 상황이지만, 매일 직원 세 명과 함께 돌아가면서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해서 고충이나 회사에 건의사항 등을 청취한다. 한 솥밥을 먹는 만큼 가능한 한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다.
에이비엘바이오는 2016년 설립된 바이오벤처기업이다. 이중항체 기술로 항암제를 개발하여 바이오산업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훈 대표는 아직 초기 단계 기술을 중심으로 이뤄진 기업이라 직원들이 자유로운 회사생활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강조한다.
“우리 같은 과학자들은 틀에 박힌 삶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갖춰진 대로 살려고 하면  도태되기 마련이죠. 예를 들면 ‘기업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정해 놓으면 혁신은 저 멀리 가버립니다. 연구라는 게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자리에 앉아 있다고 되는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직접 실험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가설들이 검증되는 것이니까요. 그야말로 막노동처럼 일하고 머리를 써야 하는데, 이런 사람들을 틀에 가둬 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스트레스만 쌓일 뿐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자유로운 기업 문화를 만들려고 노력 중입니다.”

생명 연장의 꿈, 신약개발 기술로 다가가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전 직장이었던 한화바이오에서 바이오산업이 철수되면서 근무하던 직원들을 이상훈 대표가 데리고 나와서 시작한 기업이다. 벤처사업은 위험부담을 안고 가야 하기에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대전에서 판교로 이사를 해야 했고,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라 아이들 학교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미래에 대한 보장 없이 꿈만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만들 수 있는 기술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이중항체 기술이나 다른 임상으로 진행하는 물질들이 회사 창업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기술들인 점을 보면, 이들의 확신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낸 것임은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시간을 함께해 준 직원들에게 가장 고마움을 느낀다는 그는 이 때문에 더욱 직원들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신약 개발이라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반도체나 게임 같은 분야는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보통 2년에서 3년, 아님 3년에서 4년이면 제품으로 만들 수 있지만, 바이오산업은 적어도 10년에서 12년이 걸립니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만큼 막대한 돈과 인력이 필요하죠. 긴 기다림의 시간을 누가 더 끈기를 가지고 더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만 개발하면 그 결과는 놀라울 정도예요. 요즘 화제인 화이자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노하우를 축적하여 기술을 개발해냈을 때, 돌아오는 대가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바이오산업이 뜨는 이유도 성공하면 그동안의 3차 산업이나 2차 산업에서 보지 못했던, 4차 산업혁명이 바로 현실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약개발의 성공을 단순히 경제적인 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상업화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에 더 가치를 둔다. 처음 대학에 들어가 ‘바이오’라는 전공을 선택했을 때도, 부모님이 “그거 해서 먹고 살 수 있겠냐”며 걱정했지만 이런 사명감이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물론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 갔을 때 생각처럼 잘되지 않아 여러 가지로 힘들었지만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좋아하니까 자꾸 더 자주 보게 되고, 연구하게 됐죠.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전문가가 되어 있더군요.”
회사를 창업하고 나름대로 다른 회사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시킨 배경에는 미국 유학생활의 어려움을 이겨낸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미국에서 경험했던 기업 문화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었다.

“From Good To Great”
쉽지 않은 길을 택했던 그가 다음 세대, 또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이 대표는 망설임 없이 평소 생각을 쏟아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이 한 장이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죠. 사실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벽은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종이 한 장으로 인해 큰 차이가 생기죠. 학교에서도 최상위권 학생들의 성적은 비슷하잖아요. 대부분 한두 문제 차이입니다. 한 문제를 누가 더 잘하느냐에 따라 등수가 결정되죠. 그 얇은 종이 한 장 차이를 넘을 수 있는 비결은 노력밖에 없습니다.”
그는 요즘 젊은 친구들이 많은 고민을 안고 사는 것이 안타깝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 세대들을 보면 많은 고민을 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집, 결혼, 아이, 삶 등등...  물론 30년 전에도 이런 걱정은 있었습니다. 같은 고민인데 그 존재 자체가 옛날보다 더 재정적으로 커지는 경우가 생긴 것이죠. 저는 이런 친구들에게 꾸준히 노력하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열심히 한 후에 맛보는 성과는 새로운 힘을 준다는 사실을 그는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을 것이다. 오로지 한 길만을 추구해 살아왔고, 긴 기다림과 인내를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저희 직원들도 비슷한 고민을 많이 털어놓습니다. 그때마다 생각이 많아집니다.” ‘가뜩이나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무턱대고 비전을 가지라고 한다면 이들이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도 ‘꿈과 비전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비전에 관한 얘기를 꺼낼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위로가 아닌 희망을 주고 싶어서다.
비전에 대한 것은 비단 직원들에게만 해당 되는 것은 아니다. “저희 회사는 직원이 94명인데, 그 중 연구하는 직원은 75명이고 연구직 중에서도 25명은 박사, 나머지 50명 정도는 석사학위, 나머지 열댓 명은 학사 출신입니다. 그러다 보니 ‘바이오’라는 특별한 학문에 대한 전문성이 높은 집단이죠. 나름 브레인들이 모인 만큼 날카로운 질문도 많이 들어옵니다. 어떤 직원은 갑자기 향후 회사의 비전에 대해 말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는 향후 5년 동안의 계획을 설명했다. 임상의 성공, 기술이전을 통한 매출증대 등으로 회사가 더 성장하는 것. 특히 올해부터는 ‘From Good To Great’, 즉 ‘Good Company’에서 ‘Great Company’로 가보자는 생각으로 함께 노력하자고 했다. 물론 발전된 기업을 지속시키려는 노력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도 전했다.
에이비엘바이오(KOSDAQ: 298380)는 이중항체 플랫폼 기술을 기반으로 항암 분야와 퇴행성 뇌질환 분야 치료제를 개발하는 항체 전문기업이다. 2016년에 설립된 이후부터 R&D에 총 역량을 투입하고 국내외 기업들과의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적극 추진한 결과, 혁신적인 이중항체 플랫폼 세트 ‘Grabody’와 이를 적용한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종양에서 발현되는 항원과 4-1BB를 동시에 타깃해 면역세포를 활성화시키는 Grabody-T는 장기 항암효과를 지속시키고 간 독성 부작용을 제거하는 플랫폼으로, 이를 적용한 이중항체 면역항암 후보물질인 ABL503과 ABL111은 현재 미국에서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반면, 두 가지 면역관문을 억제하는 Grabody-I 플랫폼은 기존의 PD-1 또는 PD-L1 기반 항암제의 낮은 반응률과 내성 문제를 개선했다. Grabody-I를 활용한 ABL501은 PD-L1과 LAG-3를 동시에 저해하는 면역관문억제제로 국내에서 임상 1상 시험을 앞두고 있다.
퇴행성 뇌질환 분야의 Grabody-B는 항체에 셔틀을 탑재하여 약물이 혈액뇌관문(blood-brain barrier)을 보다 더 잘 투과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해당 플랫폼을 적용한 파킨슨병 치료제 ABL301은 영장류 동물실험에서 매우 높은 BBB 투과율과 우수한 약동학적 프로파일(PK) 데이터를 나타냈다. 특히, 뇌질환 치료제 개발은 바이오 분야 최대 난제로 불리는 만큼 글로벌 제약사들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대표는 에이비엘바이오만의 차별적인 플랫폼 기술과 파이프라인을 통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글로벌 신약 전문기업으로 도약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편 녹십자 사장을 지낸 이병건 대표(SCM생명과학)는 이상훈 대표에 대해 “바이오업계에서도 매력적인 사람이죠. 외유내강형이라고 할까요. 남을 배려하면서 부드럽고 유쾌하지만, 업무에 대한 추진력이 대단합니다. 그가 ‘최초’라는 이름을 달고 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라며 이 대표가 단기간에 이중항체 플랫폼의 잠재력을 인정받는 것에 대한 축하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이상훈 대표와 본지 손홍락 발행인
이상훈 대표와 본지 손홍락 발행인

기업은 유기적인 동물이다
처음엔 단순히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여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깨어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얘기를 나눌수록 앞서 “기업은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던 말이 맴돌았다. 말이 아닌 실천으로 직원들을 설득하고 공감을 일으켜 곳곳에 에이비엘바이오만의 문화를 심어 놓았던 이상훈 대표. 그가 어떤 방식으로 기업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더 좋은 환경을 위하여 얼마나 많이 노력하고 싶은지에 관한 진심이 느껴졌다. 이 대표는 남들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기다리고, 경험했기에 실패하지 않는 법을 아는 것이다.
때로는 신중하게 때로는 과감하게 결정하고, 그 결정의 모티브는 모두 직원들이라는 마인드를 가진 그에게 마지막으로 이상적인 기업의 CEO에 관해 물었다. “기업은 유기적인 동물과 같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조직이죠. 멈춰 있는 순간 직원도 회사도 힘들어집니다. 이들은 하나의 생명체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화합하기도 합니다. 모두 살아 있어서 그런 것이죠. 회사의 대표자가 이 유기적인 동물을 어떻게 잘 키우느냐가 기업의 존폐를 결정합니다. 이 때문에 올바른 기업 문화가 필요한 것이죠.”   

Interview 손홍락 발행인  Editor 정경주  Photographer 권용구   

 

 CEO& June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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