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평창동에 자리한 스타키홀. 1층 갤러리에는 유명 작가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고 작은 소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심상돈 스타키그룹 대표는 이곳을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열린 공간이라고 소개한다. 경영인으로서의 삶뿐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예술을 사랑하는 그의 내면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국내 최장수 전문경영인으로서 외길을 걸어온 스타키그룹 심상돈 대표이사를 만나 일과 인생에 관한 철학을 들어보았다.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 졸업 / 스타키그룹 대표이사 / (사)대한난청협회 이사장 / (사)한국강소기업협회 회장 / (사)경제공동체 위코노믹스 이사장 / (사)국전작가협회 총재 / (사)한국뇌전증협회 대외협력위원장 / 한국장애인부모회 후원회 상임공동대표 / 전 서울스페셜올림픽위원회 초대회장 / 전 서울상공회의소 서울경제위원회 위원장 / 전 대한민국카투사전우회 초대회장 / 석탑산업훈장 수훈

자유인. 그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아마도 이 말이 적당할지 모른다. 무언가에 구애 받지 않고 두려움 없이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심상돈 대표는 대한민국 보청기 시장에서 최대 규모, 최고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는 스타키그룹의 수장이다. 그것도 무려 25년간 리더로서의 자리를 흔들림 없이 지켜왔다.
국내 최장수 전문경영인으로도 불리는 심 대표는 지난 35년 외길을 걸으며 보청기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인물이다. 현재 스타키그룹은 국내 보청기 시장점유율 1위와 고객만족도 1위로 업계 리더의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으며, 한국 지사 설립 이후 심 대표는 CEO로서 단 한 차례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적이 없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대단한 기록이다. 본인 스스로는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스타키그룹은 2년 연속 매출이 하락하면 CEO 자리를 내어줘야 합니다. 예전에는 매년 기록을 깼는데, 최근에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이 좋게도 지난해에도 목표를 무난히 달성할 수 있었죠. 유능한 직원들 덕분에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보청기 사업으로 32세에 처음 창업에 도전했던 심상돈 대표는 마흔 살에 운영하던 기업을 스타키그룹에 매각했다. 처음에는 2, 3년만 CEO 자리에 있을 생각이었다. 돌이켜보니 25년이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사람들은 25년간 CEO로서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냐고 묻곤 하는데 저는 항상 ‘운이 좋았다’라고 말합니다. 단지 저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신뢰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좋은 운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세상을 신뢰한다는 것. 그것이 지금의 심상돈 대표를 만든 비결이라는 것이다.

25년 간 전문경영인으로 살아오다
젊은 시절, 청년 심상돈은 누군가의 아래에서 일한다는 게 적성이 맞지 않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다. 한 마디로 그는 리더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사업에 대한 꿈을 간직했던 청년 심상돈은 가구영업, 보험영업부터 부동산 투자까지 돈이 되는 일에 기꺼이 모험을 감행했다. 그의 나이 스무 살 무렵에는 작은 건물까지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돈과 성공에 대한 감각이 탁월했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이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늘 있었다.
“동년배와는 비할 수 없는 수입이 생기기 시작하니 처음에는 좋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점점 성취감보다는 자괴감이 밀려오기 시작하더군요. 돈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닌 건강한 기업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새롭게 생긴 게 그즈음이었습니다.”
이후 작은 의료기기 회사에 입사해 무역, 통관, 영업 업무 등 업무 전반을 아우르는 일을 뛰어나게 처리하며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1년 반 동안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운 청년 심상돈은 청량리에 있는 친구 사무실 한 켠을 빌려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작은 보청기 회사였다.
작게 시작했지만 그의 사업 능력은 탁월했다. 당시 영세업자들이 운영했던 보청기 판매에 대한 이미지를 대폭 개선하고, 흰 가운을 입고 마치 의사처럼 상담을 하고 영업을 했다. 사업을 시작한지 4∼5개월 만에 회사는 흑자로 돌아섰다. 제대로 된 영업 시스템과 커리큘럼을 갖춘 보청기 회사라는 이미지가 시장에 형성되며 직영 매장만도 12개에 이르게 됐다.
“당시 스타키 국제 사업부 총책임자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당시 일일이 수작업으로 보청기를 제작했는데 그가 획기적인 스타키의 보청기 양산 시스템을 소개해 주었죠.”
생산 시스템 부문이 해결되자 회사는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초소형 보청기 등 첨간 기능성에 획기적인 보급형 모델들을 속속 내놓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조절의 편의성을 크게 향상시킨 고막형 보청기를 국내 최초로 도입하기도 했다. 고막형 보청기의 경우 심 대표가 직접 미국 스타키 본사에 제안한 내용이 크게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당시 그는 성공대로를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 스타키로부터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회사를 인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스타키의 한국지사 CEO를 맡는 조건이었다. 지분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심 대표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세계 최고의 보청기 회사 스타키그룹 CEO가 된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세상을 신뢰하다
현재 심상돈 대표는 스타키그룹에서도 최고의 입지를 갖춘 CEO로 손꼽힌다. 전 세계 30여개국 지사에서 최고액 연봉을 받고 있는 데다, 1996년 부임한 이래 25년 간 전문경영인으로 자리를 지켜왔다. 순수 전문경영인으로 25년간 현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CEO는 현재까지 국내에서 심상돈 대표가 유일하다. 그만큼 글로벌 기업 스타키에서 심상돈 대표의 입지는 탄탄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탄탄대로를 걸어온 듯한 인생이지만, 심 대표는 그 안에서도 어려웠던 적이 무수히 많았다고 털어 놓는다. 특히 부임한지 3년 정도 되었을 때 만난 뜻하지 않은 시련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보청기를 만들 경우 제조 전에 식약청에서 사전 허가를 받은 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보청기를 한 번 제조하면 하루에 100개도 만드는데 사전 허가를 받고 제조하면 하나를 만드는데 6개월 이상 걸립니다. 프로세스 상에 문제가 될 수밖에 없죠. 말이 안되는 논리였지만 식약청에서는 약사법을 적용해 보청기를 마치 하나의 약처럼 생각한 것입니다. 납득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지만 법은 법이었습니다.”
그 후 관련법은 개정이 되었고, 보청기 제조에 있어서는 사전 제조는 더 이상 위반행위로 치부되지 않게 되었다. 심 대표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며 배운 바도 크다고 말한다.
“행운의 여신은 질투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질투를 피하려면 남에게 좋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겸손을 배운 계기가 되었달까요.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는 이유도 그때 배운 겸손의 미덕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 심상돈 대표는 경영하는 목적을 기본적인 이윤추구뿐 아니라 나눔에서도 찾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국가적 지원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식을 다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소리사랑 나누기 봉사단을 통해 소외된 이웃과 장애인을 직접 찾아가 청력검사 및 보청기 무상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한국장애인부모회 후원회 공동대표를 맡으며 적극 지원하고 있다. 특히 단순한 봉사 활동을 넘어 보다 넓은 차원에서 국가적인 정책 사업과 연계할 수 있는 각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치매에 대한 그의 생각이 특히 그러하다.
“치매는 사후 관리도 중요하지만 청각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사전 관리도 중요합니다. 청각 기능이 악화되면 치매 속도가 가속화되기 때문이죠.”
이러한 다방면의 노력은 궁극적으로 그가 가고자 하는 글로벌 미션과 연결되어 있다. 전 세계에서 병마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의료 지원 사업을 할 수 있는 그룹을 만드는 것의 그의 꿈이다.
현재 대한난청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심 대표는 사단법인 위코노믹스를 만들어 2년째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CEO로서 그는 기업이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닌, 환경, 노동자의 권리, 사회 복지 등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요즘 금수저 흙수저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요. 상속을 되물림 하면 금수저가 되어 좋은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결국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평등의 시작이 되는 셈이죠. 다른 사람들은 능력이 있어도 발휘를 못하는 상황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어느 정도까지는 유산으로 인정해주되 부의 되물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적인 제도가 뒷받침 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좀 파격적인가요? 하하”
파격적이라면 파격적일 수 있지만 부에 대한 그의 철학이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경영하는 철학자
심상돈 대표는 25년 CEO로 역임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15주년 실적 평가 때이다. 매년 1위를 했지만 그날은 특별했다. 전 세계 500여 명이 모인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40분간 강연을 했기 때문이다. 마케팅 성공 비결을 공유하는 강연이었다. 40분 강연을 위해 두 달간 준비했다.
“영어도 서툴고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강연을 한다는 것도 낯선 일이었지만 2분마다 청중들을 웃기겠다는 생각으로 준비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죠. 강연이 끝난 후 기립 박수를 받았어요. 서툰 영어로 강연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연 평가 중 1위를 했고요. 열심히 준비했고 노력했기 때문에 오래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입니다.”
그의 성공이 단순히 운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심상돈 대표는 사소하지만 작은 철칙을 가지고 있다. 바로 ‘밥’과 관련된 것이다. 심 대표는 ‘사람들을 만나면 밥은 내가 사자’고 결심한 이후 34년 동안 자신과의 약속을 변함없이 지키고 있다. 밥값 걱정 없이 부담 없이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자기만의 약속이었다.
심상돈 대표는 본인 스스로에 대해 ‘특별히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특별히 똑똑할 게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세상을 신뢰’한다. 그러하기에 겸손, 긍정, 감사, 사랑이라는 키워드는 심 대표가 마음속에 새겨 놓고 있는 말이다.
“처음부터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었고 삶을 통해서 긍정을 훈련시켰습니다. 어떠한 상황을 만나더라도 ‘나는 잘 될 거야’, ‘나는 부자가 될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살다보면 어려운 순간을 만나기도 하는데 최악의 경우를 상상으로 체험하면 어려움이 닥쳤을 때 긴장을 하지 않고 침착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죠. 심지어는 노숙자가 되는 상상도 한 적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힘든 것은 한 순간이거든요. 상상으로라도 체험을 먼저 하고 들어가면 침착해질 수 있고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죠.”
‘세상을 신뢰한다’는 것은 어쩌면 심 대표가 경험을 통해 깨달은 인생의 진리가 아닐까 싶다. 
팬데믹 상황이지만 리더는 위기 속에서 더욱 강해져야 한다고 믿는 심상돈 대표. ‘철학’이라는 말로 거창하게 포장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그이지만, 분명 그는 ‘경영하는 철학자’였다. 어쩌면 경험과 인생을 통해 배운 철학을 몸소 실천한 것이 심상돈 대표가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CEO의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었던 토대가 되지 않았을까.   

Editor 장정현  Photographer 권용구   

 

CEO& March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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